사회
17년 만에 법정에 선 패터슨…고개 떨군 피해자 부모
입력 2015-10-08 13:49 
"피고인 준비됐으면 출석시키시지요."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자 서울 서초구 법원청사 417호 법정의 왼쪽 문이 열렸습니다. 수의를 입은 백인 남성이 성큼성큼 들어섰습니다. 175㎝가량의 키에 검고 짧은 머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와 검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긴장한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았습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17년 만에 한국 법정에 선 순간이었습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패터슨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법원 청사에서 가장 넓은 대법정에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재판 20분을 앞두고 100자리가 넘는 방청석이 꽉 찼습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법원 경위도 10명이 넘게 투입됐습니다.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부모, 패터슨과 사건 현장에 있었던 에드워드 리(36)의 아버지도 법정에 왔습니다. 리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패터슨은 지금도 안 했다고 하는 데 나쁜 사람"이라며 "이번 기회에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패터슨은 법정에 입장하고 나서 자신을 보러온 방청객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는 매우 조금 알아듣는다고 영어로 답했습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으며 패터슨이 어떻게 조씨를 살해했는지를 말하자 조씨의 아버지는 괴로운 듯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가 다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기도 했습니다.

패터슨은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건 당시엔 리가 단독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패터슨은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1998년 사면됐습니다. 그리고 검찰이 실수로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달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패터슨의 변호인인 오병주 변호사는 당시 범행은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질렀으며, 이후 교묘하게 진술을 바꿔 패터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접견 중 항소하고 대법원까지 가면 재판이 몇 달 이상 걸린다고 답하자 패터슨이 깜짝 놀라며 '석 달 안에 무고함이 밝혀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패터슨이 감옥에서 어머니의 성경책을 넣어달라고 하고 기도도 해달라고 했다"며 "패터슨은 한국인 홀어머니가 키운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리와 패터슨에 대한 앞선 재판기록을 참고하되 백지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패터슨의 재판을 6개월 내에 끝내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이달 22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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