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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3년차’ 염갈량의 노트도 진화한다
입력 2015-10-08 06:01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지난 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앞서 여유 있는 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김영구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절반의 실패입니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넥센 히어로즈의 수장 염경엽 감독은 지난 2년간의 가을야구 성과에 성공이 아닌 실패를 먼저 논했다. 우승을 이루기 전까지 만족할 수 없는 염 감독의 진심이었다.
넥센은 2013년 창단 이후 최초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좌절했다. 지난해에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벽에 막혀 우승의 꿈을 접었다. 넥센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찬사를 받기 충분한 성적이었다.
넥센은 올해도 가을야구 초대장을 얻었다. 이젠 VIP 고객이다. 최근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룬 팀은 삼성과 넥센 두 팀 뿐이다. 넥센은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한 뒤 ‘2015시즌 가을야구를 착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쳤다. 거창하지 않은 소박한 각오였다.
하지만 이 문구 속에는 진지함이 담겨 있다. 염경엽 감독이 ‘실패라는 단어를 꺼낸 속내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염 감독은 학구파 사령탑으로 유명하다. 별명도 ‘염갈량이다. 넥센이 지난 2년간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꾸준히 발전을 이룬 것도 실패를 거듭하지 않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넥센은 지난 2년에 비해 전력이 약화됐다. 강정호가 빠졌고 선발진 불안에 마무리 손승락도 하락세다. 다만 넥센이 더 강해진 것은 경험이다. 선수들이 포스트시즌을 대하는 자세도 더 진지해졌다. 그 안에는 절실함이 있다.
지난 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연장 11회까지 명승부 끝에 넥센이 SK를 5-4로 이겼다. 연장 11회말 2사 만루서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상대 실책이 유발된 머쓱한 승리였지만, 1승의 여유가 있었던 넥센의 포기 없는 뒷심이 만들어낸 값진 승리였다. SK보다 더 절실함이 느껴진 1승이었다고 해도 반론의 여지가 없다.
넥센이 얼마나 준비된 팀이었는지 그 고민의 흔적이 경기 내용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SK 킬러 고종욱을 2번 선발로 배치하고, ‘가을 사나이 브래드 스나이더는 승부처에서 대타로 기용했다. SK를 흔든 고종욱은 3타수 1안타 1볼넷 1타점 2득점, 연장 11회말 극적인 4-4 동점 2루타를 때린 스나이더는 3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대타 히든카드로 투입된 윤석민도 존재감만으로 끝내기 실책을 불러일으킨 영웅이 됐다.
염 감독의 지략은 불펜 운용에서 빛났다. ‘변칙 운용의 모험수가 재역전승의 발판을 만든 한 수였다. 마무리 손승락을 선발 밴헤켄에 이어 먼저 투입해 단 한 타자만 승부하도록 했고, 조상우를 3이닝 동안 썼다. SK에 약했던 한현희를 어쩔 수 없는 막판 카드로 꺼냈으나 1이닝을 끝까지 믿고 맡겼다. 결과적으로 SK와의 마운드 싸움에서 이긴 절묘한 수였다.
넥센 선수들은 시즌을 거듭하며 경험이 자산이 되고 있다. 발전된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그 뒤에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염갈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넥센은 이제 첫 단추를 채웠다. 10일부터 두산 베어스와 5전3선승제로 준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이틀의 시간을 번 염 감독의 노트에는 ‘두산용 수 싸움이 그려지고 있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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