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모두 실패자 만드는 ‘사교육 치킨게임’ 멈춰야 대한민국 산다
입력 2015-09-29 18:18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 모처럼 공연장을 찾았다.
약간 빠른 노래가 시작되자 맨 앞줄의 관객이 갑자기 일어섰다. 그 뒷자리 관객이 따라 일어서고, 또 그 뒷자리 관객이 일어서니 결국 나도 일어 설 수 밖에 없다.
앉아서 공연을 즐기고 싶어도, 눈 앞에 보이는건 앞 사람 뒷모습 뿐이니 일어서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앞 사람이 앉지 않으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힘들게 서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교육이 딱 그 꼴이다. 정확히는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사교육에 올인하는 모습이 그렇다.

아이의 능력과 성향,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한민국 부모들은 자녀의 학업에 매달린다. 아이의 성적이 마치 자신의 성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 달리고 있다.
지친 아이의 어깨를 보면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다 너를 위한 것이라는 마음으로 애써 외면한다. 가계부 걱정도 우선은 접어둔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수십년간 다양한 처방전이 나왔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교육문제는 답이 없다는 자조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비정상적인 사교육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매일경제가 ‘사교육 1번지 대치동 24시를 기획보도한 이유이기도 하다.
비정상적 사교육은 뿌리 뽑아야 한다.
초등학생이 밤 1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미분·적분을 풀고, 토플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불법을 저지른 학원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 이름만 바꿔 다시 문을 열지 못하게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 소설 쓰듯 자기소개서를 써주고 고액 컨설팅으로 학부모를 현혹하는 사교육 업체도 엄단해야 한다.
이 같은 단기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시제도를 단순화하고, 자주 바꾸지 않는 것이다.
툭하면 손을 대, 복잡해진 입시제도는 사교육이 파고들 틈을 만들었다.
오죽하면 학부모들이 ‘입시제도 변경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겠는가. ‘공포 마케팅을 하는 건 학원이 아니라 정책이라는 목소리를 정부는 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만들어진 대학입시의 큰 틀이 200여년 이상 유지되는 프랑스처럼 100년 이상 가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려면 일반고를 살리는 것도 필수다.
한 두가지 시혜적인 정책만으로는 일반고를 살릴 수 없다. 시스템과 함께 학교·교사가 달라져야 한다.
대입 원서를 쓸 때 제출할 학생부가 옆집 아이는 20장인데, 내 아이는 달랑 3장뿐라면? 옆집아이는 학교에서 공부는 물론 다양한 동아리 활동까지 하는데, 내 아이 교실에서는 절반 이상이 자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특목고와 일반고의 차이이고, 초등학교때 부터 특목고 입시에 매달리는 이유다. 공교육이 경쟁력을 갖추면 사교육 거품은 빠질 수 밖에 없다.
대학에 목매지 않는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대학의 서열이 존재하고,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는 남보다 앞서가야 하는 현실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것은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대학정원과 고교졸업자수가 거의 같고,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다. 이렇게 4년제 대학을 마친 학생들은 생산직을 기피하고,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찾지 못해 고학력 실업자가 된다.
‘SKY ‘인서울도 모자라 ‘서성한중경외시를 외울 정도의 대학 서열화는 너무 많은 아이들을 ‘실패자로 만든다.
공부할 아이들과 기술을 배우거나 다른 재능을 살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나눠질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유학기제가 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은 부모들이 할 일이다. ‘사교육 중독을 끊을 용기를 내야 한다.
사교육은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깊숙히 뿌리를 내렸다. 아이들에게 학원은 학교 만큼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과도한 사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학을 보내지 않을 용기도 부모가 먼저 내야 한다.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 복잡한 대입전형, 변별력 없어진 수능 등등 탓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다.
하지만 부모가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무용지물이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공부하는 기계가 이끌어가서도 안된다.
[사회부 = 이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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