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기업어음, 대우조선 CP금리 年 18% 넘어
입력 2015-09-21 17:12 
◆ 시장분석 / 기업어음 ◆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어음(CP) 금리가 연 18%까지 치솟았다. 연 15%를 넘는 고금리 CP가 등장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으로 시장에선 '신용경색(credit crunch)'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장외 매도 호가 기준 대우조선해양 CP 금리는 연 18%까지 상승했다. 대규모 투자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팔겠다는 매도자는 많지만 매수자는 많지 않아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CP 금리가 연 20%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당시 대림산업 두산건설 등 일부 건설사들의 CP 금리가 연 15%를 넘었다.
대우조선해양 CP 금리가 급등한 것은 최근 대규모 영업손실로 신용등급 하락이 가파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A1으로 최고 등급이었다. 그러나 업황과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신용등급은 1년 만에 5계단 하락해 A3까지 떨어졌다.

국내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리스크 통제를 위해 신용등급 A3+ 이하 기업어음, BBB+ 이하 회사채에는 투자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미 투자하고 있던 기업어음이나 회사채의 경우에도 신용등급이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3개월 내 보유 물량을 매도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 하락이 너무 빨리 진행되는 바람에 기관들이 매도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 하락은 지난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원칙상으론 신용등급이 A3+ 이하로 떨어진 지 3개월 이내, 즉 오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기관투자가들이 CP와 회사채 보유분을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CP는 9200억원으로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한 시장 관계자는 "신용등급 하락 후 3개월 이내 매도가 원칙이지만 기관 내부 승인이나 고객 협의를 통해 매도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면서도 "대우조선해양에 투자한 기관들이 단기간 내 상황 호전이 쉽지 않다고 보고 한시바삐 보유분을 처분하려고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유 물량을 털어내고자 하는 기관들의 매도 수요가 늘면서 CP 가격은 폭락하고 금리는 폭등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연 2~3%대에 발행된 대우조선해양 CP 금리가 10%를 넘어서면서 투자 손실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신용경색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는 추세다. 국고채 금리는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지만 일부 신용도가 약화된 기업들을 중심으로 아무리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필요 자금을 조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BNK캐피탈 사태 이후 기업어음·회사채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는 위축되고 투자행태는 보수적으로 변했다.
기관투자가들이 '안정성' 위주로 전략을 바꾸고 투자 리스크가 작은 은행채 공사채로만 몰리면서 공사채와 일반 회사채 간 금리 차이는 2013년 이후 2년 만에 최대치까지 벌어졌다.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도 자금이 몰리지 않는다. 최근 신용등급 A-인 한진이 800억원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을 실시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들이 매수주문을 내지 않아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다. 실적 우려가 존재하는 AA등급에서도 수요예측 미매각이 빈번히 발생했다. GS에너지가 발행하는 10년 만기 회사채에는 1000억원 모집에 75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일각에선 시장 유동성 공급을 위해 하이일드 펀드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형호 채권투자자문 대표는 "현재 기관들의 운용 규정은 투자 리스크를 통제하는 긍정적 면도 있지만 대우조선해양 사태처럼 신용등급이 떨어진 CP나 회사채를 일률적으로 쏟아내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고 손실을 확대하는 부정적 면도 있다"며 "단기적으론 기관투자가들이 운용규정을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하이일드 펀드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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