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도체 기술로 만든 콤팩트에 로레알도 반했다
입력 2015-05-21 16:10  | 수정 2015-05-22 09:19
박혜린 회장이 라미화장품의 대표 제품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 라미화장품>

올해 3월 박혜린 바이오스마트 회장(47)은 거의 매일 밤 잠을 설쳤다. 5년간 공들여 키운 화장품 사업이 중대한 터닝포인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 그 터닝포인트는 바로 세계 최대 화장품기업 로레알과의 거래 성사 여부. 바이오스마트 계열사인 라미화장품 제품이 우수하다는 소문을 들은 로레알이 지난해 먼저 접촉해왔고, 이후 6개월 가량 까다로운 검증에 돌입했다. 납품 여부를 최종적으로 조율하던 시기가 바로 그때였던 것. 20년 이상 기업을 운영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박 회장이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는 합격. 그렇게 해서 라미화장품은 요즘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로레알 납품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바이오스마트(신용카드), 옴니시스템(계량기) 등 다수의 제조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박 회장이 화장품 사업에서도 ‘대박을 예고하고 있는 대목이다. 최근 서울 성수동 사옥에서 만난 박 회장은 일반적으로 로레알은 ODM 업체를 선정할때 오랜 기간 까다로운 검증과정을 거치는데 (라미화장품의)6개월은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이라며 우수한 품질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미화장품이 로레알에 납품하는 제품은 ‘콤팩트다. 기초화장용 파우더가 담긴 이 제품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방 속에 하나씩 넣어다니는 필수 아이템이다. 보통 콤팩트는 파우더 가루가 뭉쳐 있는 내용물을 금형으로 한번에 찍어내지만 라미 콤팩트는 가루를 한겹한겹 적층해 만든다. 이른바 ‘BI(Back Injection) 공법이라 불리는 이 제조법으로 만든 콤팩트는 적층되는 층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돼 피부에 바를때 밀착력이 뛰어나게 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파우더가 피부에 얇고 고르게 잘 밀착될 때 여성들은 화장이 잘됐다”고 표현한다. 박 회장은 우리 콤팩트는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공법과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서 만든다”며 경쟁사에서 유사한 제품을 만들려고 해도 만드는 과정에서 내용물이 깨지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로레알 공급 말고도 성과는 더 있다. 클렌징크림 ‘야채가 대표적. 라미화장품이 국내에서 30년간 판매해 온 이 제품은 최근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내용물과 케이스를 업그레이드 했는데, 아직 공식적으로 판매가 시작되지도 않았음에도 선주문으로 초도 생산물량이 모두 예약됐다.

그녀의 화장품 사업은 2009년 토종 화장품 제조기업 한생화장품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중국에서 한차례 한국 화장품 열풍이 불고 난 후 가장 경쟁력 있는 극소수의 제품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 판단했다. 당시 한생화장품은 재무제표가 엉망이었지만 1961년부터 50여년을 이어온 ‘전통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었다. 모회사(한국신약) 덕분에 축적된 원재료 관련 특허가 많았던 점도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제품이 박 회장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그는 여자라면 누구나 화장품의 원재료에 신경쓰는데 한생화장품은 고급 원재료만 고집하고 있다”며 지난 5년간 한생화장품만 썼더니 피부가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한생화장품을 통해 기술적 기반을 갖추고 나니 유통플랫폼이 아쉬웠다. 때마침 라미화장품이 매물로 나와 있었다. 라미화장품 역시 1976년 설립 이후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1세대 화장품기업이었다. 동아제약 계열사였던 덕분에 기술력은 물론 판로도 다양했다. 이미 매출의 40%를 수출로 거두고 있었고 자체 브랜드 ‘카타리나 지오는 중동·러시아·동남아 등에서 명품으로 통할 정도였다. 한생화장품과 시너지를 기대해 박 회장은 인수를 결심했다. 그는 한생화장품은 스킨·로션 등 기초화장품이 강한 반면 라미화장품은 색조화장품과 유통에 강점이 있다”며 라미화장품의 ‘야채 클렌징크림 역시 한생화장품 기술력을 토대로 성분을 대폭 업그레이드해 내놓은 전략이 주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미화장품의 콤팩트 생산공장은 이미 올해 추가 주문을 받기도 힘든 상황이다. 로레알 물량만 소화하기도 벅차기 때문. 박 회장은 여주에 4만㎡ 규모 부지를 확보하고 한생화장품과 라미화장품이 입주할 공장을 신설 중이다. 박 회장은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공장을 만들어 올 4분기부터는 늘어나는 고객의 주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미화장품은 지난해 120억원이던 매출이 올해 대폭 늘 것으로 보고 있다. 한생화장품 역시 자체 한방 브랜드 '린(璘)'을 출시하고 본격적인 성장을 시도한다.
박 회장은 "전국 홈플러스 매장에서 '보급형 한방화장품' 콘셉트로 5월 중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라며 "중국에서도 판매가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정순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