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5년동안 우리는 ‘고도’를 기다렸다
입력 2015-03-29 15:13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 위에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다. 황량한 벌판에서 남루한 행색을 한 두 남자는 하염없이 ‘고도(Godot)를 기다린다. 시간을 견디지 못해 횡설수설하고 헛짓거리만 해댄다. 에스트라공이 낡은 구두를 못 벗어 바둥거리면 블라디미르가 도와준다. 의미 없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보지만 영혼은 더 황폐해진다.
무료함이 극에 달할 때 늙은 하인 럭키의 목에 매단 줄을 끌고 포조가 등장한다. 포조는 하인을 짐승처럼 다루면서도 훌륭한 짐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졸렬한 계산”이라고 빈정댄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공허가 찾아오자 에스트라공은 나무에 목이나 매어볼까”라고 말한다. 허리띠가 끊어져 그 마저도 쉽지 않다. 너무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소년이 찾아와 고도씨가 오늘밤 못오고 내일 오겠다고 전하래요”라고 말한다. 허탈하지만 그들은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50년째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공연 시간 160분. 관객도 배우도 진이 빠지는 기다림이다. 뚜렷한 스토리 없이 파편 같은 대사만 날리는데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극이 국내 공연 45년 역사를 쓰고 있다. 1969년 처음 무대에 올린 임영웅 연출(79)이 2000여회 공연을 이어왔다.

고도를 기다리는데 동참한 관객은 50만명을 넘겼다. 일본·아일랜드 등 4개국 5개 도시 무대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임 연출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연극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버린 작품이다. 45년 동안 동거동락해왔지만 완전히 다 했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지난 12일부터 서울 소극장 산울림에서 45주년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객석 70석이 금새 동나 매표소에서 보조석 밖에 없습니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불편한 자리를 감수하고 하루 평균 100명이 관람한다. 임 연출은 위대한 작품이니까 생명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초연할 때부터 관객이 붐볐다. 그 해 원작자인 사무엘 베게트(1906~1989)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덕분에 티켓이 동났다.
등·퇴장 거의 없이 160분 동안 고도를 기다리려면 연기파 배우는 필수 요소다. 기승전결 없이 진행되는 극에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면 안된다. 45년 동안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김인태 등 배우 41명이 작품의 깊은 울림을 전해왔다.
올해 무대 역시 그 동안 숱하게 이 작품을 공연한 배우 정동환, 정재진, 이호성, 박용수, 송영창, 안석환, 이영석, 한명구, 박상종,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김형복 등이 채우고 있다.
그들이 수없이 무대에서 기다린 고도는 도대체 누구일까. 기독교에서는 신이라고 해석하지만 베게트는 부인했다.
임 연출은 사람들이 각자 기다리는 그 무엇인가”라고 분석했다.
1994년부터 이 무대에 올라온 블라디미르 역의 한명구(55)는 희망과 기대다. 형무소에서 공연할 때 고도는 자유와 빵”이라고 했다.
1990년부터 이 작품과 인연을 맺어온 에스트라공의 박용수(59)는 누구나 꿈꾸는 좀 더 나은 순간,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는 큰 힘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만 안 오는게 고도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이 극은 왜 관객의 발길을 끌까. 한명구는 조리가 없는게 매력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 사실 조리가 없다. 내일 정확하게 출근해야지 하면서도 10분 늦는다. 극 중에서 기다림 자체가 굉장히 힘드니까 끊임없이 놀이를 한다. 현대인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 단순한 코미디나 비극과 달리 현대인에게 숙제를 준다”고 했다. 공연은 5월 17일까지. (02)334-5915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