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펀드가입 막는 `은행꺾기 규제`
입력 2015-03-22 18:05 
A은행 고객인 중소기업 대표 박 모씨는 2월 중순 국내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다. 저금리 상황에서 예·적금에만 의존해서는 노후자금 마련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6일 회사 직원 급여 지급을 목적으로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일명 '꺾기'로 알려진 구속행위 규제 기준에 걸려 대출이 안 된다는 얘기를 창구 직원에게 들었다. 대출 전후 1개월 내 펀드 가입은 꺾기 행위로 간주돼 가입자는 이 펀드를 해지해야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부랴부랴 환매 신청을 했지만, 주식형 펀드의 경우 해지까지 3일이 걸리는 바람에 월급을 며칠 늦게 줄 수밖에 없었다. 가입한 지 3개월이 안 되기 때문에 환매수수료도 내야 했다.
박 대표는 "기준금리 인하 여파로 '금리 쇼핑'만으로는 자금을 제대로 굴릴 수 없어 펀드 같은 금융투자 상품 가입이 필요한데, 꺾기 규제 때문에 투자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못 짠다"고 토로했다.

대출 신청자에 대한 은행 구속행위를 막으려 도입한 규제가 소비자들 재테크를 제약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구속행위를 갑을(甲乙) 관계를 이용한 실적 올리기 행위로 보고 규제를 강화해 왔다.
우선 여신실행일 전후 1개월 이내에는 대출자가 수신상품 가입을 원하더라도 상품의 월환산액이 여신액의 1%를 초과할 경우 가입을 제한했다. 신규·갱신·전환대출 모두 해당된다.
지난해 초에는 대출자 본인뿐만 아니라 대출자가 법인인 경우 관계인(대표이사·등기임원)까지 구속 대상에 포함시켰다.
펀드,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상품 판매) 등의 경우 금액에 상관없이 여신실행일 전후 1개월 이내에는 가입이 불가능하게 했다.
그 밖에 법인이 선불카드, 상품권(온누리상품권 제외) 등을 사서 직원에게 선물로 줘도 대출이 제한된다. 실제 시중은행인 B은행과 거래하던 중소기업 등기임원 최 모씨는 최근 직원 선물용으로 은행에서 상품권을 약 100만원어치 샀다가 상품권 구입이 구속행위로 분류되면서 대출 재약정을 못하는 일을 겪었다.
문제는 이 같은 꺾기 규제가 금융투자 및 대출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상품 가입을 통한 재테크가 필수인데, 대출 취급을 위해 펀드 및 예·적금을 중도 해지하면 손실은 소비자가 고스란히 진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문제 삼았던 꺾기 관행은 전체 은행이 아닌 지점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출 취급 지점에서만 구속행위를 규제하고 다른 지점 거래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 등 특정 기관에서 소비자가 가입한 예·적금 및 펀드가 대출과는 관련이 없다는 확인서를 발급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 규제가 은행의 '꺾기' 관행을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출 때 불편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지만 규제를 완전히 풀어야 한다는 데는 반대"라며 "중소기업이 불편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 개선 방안을 검토해 금융당국에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용어 설명>
▷ 은행 구속행위 : 기업 명의로 은행 대출을 받을 때 일정액을 예·적금에 넣도록 하거나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으로 일명 '꺾기'라고도 한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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