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많은 이분법으로 나뉘어 있다. 자연과 인간, 남성과 여성, 유한성과 무한성, 흑과 백이 그렇다. 그림에서도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는 구상과 이렇다 할 형상이 없는 추상으로 나뉜다. 그러나 정말 세상은 둘로 똑같이 나눌 수 있을까.
여기 추상과 구상을 하나의 세트로 그리는 작가가 있다. 영국 출신의 스타 작가 무스타파 훌루시(44)다. 그는 풍경 중에서도 곧 떨어질 듯한 빨간 사과와 능금, 감귤 등을 극사실적으로 그린다. 꽃을 그리더라도 만개한 상태의 꽃을 그린다. 유한성을 지닌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는 것이다. 그것은 곧 떨어지고 말, 혹은 시들고 말 존재의 유한성을 상징한다. 그 옆에는 사물을 보고 작가가 느낀 이미지를 기하학적 추상으로 풀어낸다.
최근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국내 두번째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작가는 꽃이 만개하고 과실이 탐스럽게 맺힌 모습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완벽한 순간을, 추상화에 쓰인 패턴들은 영원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가 세상의 두 가지 이면을 한 작품에 담는 것은 결국 본질은 하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치 이슬람과 기독교의 뿌리가 하나인 것처럼. 작가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왜 이분법적인 주제에 집착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고대부터 열강들의 싸움터가 된 키프로스 이민자 출신인 데다 종교는 무슬림이지만 기독교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영국에서 자랐고 서방식 교육을 받았다. 개념미술이 강세인 영국 골드스미스대에서 순수미술과 비평을 전공했고 왕립미술대학원에서 사진을 배웠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을 방문해 전국을 여행하며 자신이 보고 느낀 자연 풍경을 회화로 풀어냈다. 동백과 철쭉 능금 감귤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극사실 회화로 재현했으며 왼쪽에는 그것의 본질을 추구하는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짝을 지어 선보인다.
전시에선 작가의 13세 조카와 키프로스에서 찍은 사진을 보정작업한 뒤 여섯 조각의 알루미늄판 위에 나눠 작업한 작품을 비롯해 작가 개인의 경험을 반영한 작품도 전시된다. 기하학적 문양과 다양한 색채로 구성된 타일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구작과 신작 등 다양한 작품 30여점이 나와 다채로움을 준다.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과 최고의 딜러이자 컬렉터인 찰스 사치, 프랑수아 피노 PPR 회장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 (02)3447-0049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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