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오응서 디디치킨 대표 "유명 슬로건까지 다 바꿨다"
입력 2015-01-07 17:30 


어려웠던 회사를 기사회생시킨 CEO가 있습니다. 마케팅, 제품, CI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단 기간에 극적으로 기업을 성공시킨 DD치킨의 오응서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가맹점들의 폐점이 줄줄이 이어지던 상황을 역전시켜 지금은 전국에 200개의 가맹점을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오응서 대표. 끊임없이 마케팅을 공부하며 효과적인 경영을 위해 배워왔던 그. 이제는 그 경험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성공을 이루기까지 다사다난했던 그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성공다큐 최고다(최고경영진의 다섯 가지 비밀)이 찾아갔습니다.


Q 사업에 대한 꿈이 있으셨나요?

저는 늘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하림에 입사할 때부터 마케팅부에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턴이라는 신분으로 담당 임원에게 5개의 리포터를 제출했죠. 회사가 크기 위한 앞으로의 방향성에 관한 리포터였습니다. 젊은 패기라고 생각한 임원은 다행이도 저의 그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었습니다. 그런 용기 덕분에 저는 마케팅부에 입사를 할 수 있었죠. 제가 원하는 일을 하며 저는 마케팅에 더 많이 배우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면서 회사가 처한 현실과, 나아가야할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업에 대한 전체적인 구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업가 기질 때문에 몇 번을 과감한 도전을 하곤 했습니다.


Q 과감한 도전이라면?

36세 때 였던 2006년, 돌연 회사를 박차고 나와 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도전 의식으로 창업을 했었죠.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였던 하림도 프랜차이즈 쪽에 많이 도전하고, 투자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보며 제가 직접 도전해 사업을 성공시키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넘쳤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저는 처음부터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려는 목적으로 치킨 가게를 창업을 했습니다. 디자인 등 여러 제반사항을 프랜차이즈 가게처럼 번듯하게 꾸미고 가게 문을 열었죠. 당시 저는 그렇게 문을 열기만 하면 잘 될 줄 알았습니다.


Q 위기가 찾아왔나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마케팅 일을 하며 이론적으로 알고만 있었던 사업과 현장은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저는 주방일과 배달에 신경을 쓰느라 마케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 겨울 배달을 하면 어떤지 아십니까? 찬 겨울바람에 볼이 찢어져 피가 납니다. 치킨 가게에 가장 중요한 기름 정제기도 몰랐으니 얼마나 어수룩했는지 말 다했죠. 지금에 와서야 1달이라도 예행연습을 했다면 조금 상황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패기 있게 도전했던 저는 반 년 만에 항복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권리금 내고 들어간 가게는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나왔고 모든 집기들을 고철 값으로 넘겨야했죠.



Q 사업 실패 후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심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특히 가족에게 많이 미안했었죠.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저는 실패에 쓰러질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하림에 다시 재입사했습니다. 재입사를 결정하는 일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박차고 나갔던 회사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일이었으니까요. 저는 사업에 실패했다고 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경험들이 지금 DD치킨 사업을 하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경험을 통해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공감하게 되었으니까요.


Q 한 번 실패하였던 치킨사업. 어떻게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재입사해 다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제게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다른 부서로 발령을 가야 했을 때 제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업부와 DD치킨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저는 DD치킨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하림 계열사 중 하나였던 프랜차이즈 업종 DD치킨은 상황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림에서도 외면하고 있는 계열사 중 하나였고요. 때문에 상사는 제 선택에 반대를 했습니다. 실적이 있는 일을 해야 승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상사의 조언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에 DD치킨을 선택하였죠.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버리고 위험한 길을 선택한 과감한 도전이었습니다.


Q 위험한 길이었던 DD치킨... 당시 회사의 상태는 어땠나요?

당시 DD치킨은 수익 구조가 말이 아니었죠. 제가 오자마자 15개 점포가 폐점하고 판매량은 반 토막이 난 상태였습니다. 가맹점은 본사를 불신하며 욕했고 직원들은 회사에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회사의 상태를 보고 우선 목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직원회의를 열어 발표했습니다. 세계지도를 화면에 띄우고 시카고를 가리키며 여기가 우리가 곧 갈 곳이라고 말했죠. 몇 년 안에 시카고에 우리 매장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하며 저는 무조건 될 거니까 해!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웃더군요. 망해가는 상황이었느니 그런 반응도 이상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사가 살아나기 위해선 직원들의 정신 상태를 바로잡는 것부터가 첫 번째라 생각하고, 매일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무조건 되니까 하라고. 그리고 직원들이 볼 수 있게 회사에 사훈을 붙였습니다. 안 된다고 하기 전에 방법을 찾아라.” 라고요.


Q 회사를 살리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우선 부정적이었던 직원들의 자세를 바로잡고 문제가 있었던 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경쟁력이 없었던 제품의 가격을 변경했습니다. 처음엔 가격 경쟁력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갔던 DD치킨이 제품가격을 인상하니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긴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보통 마리당 판매되고 있는 치킨을,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을 위해 중량 단위로 판매하는 것을 시도했죠. 치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꾼 거죠. 그리고 CI도 변경하였습니다.


Q 브랜드 이미지인 CI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이유가 있나요?

당시 CI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읽기 힘든 영어였던 CI를 한글로 변경하였죠. 또한 치킨 대통령이라는 문구를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DD치킨이라는 이름보다 치킨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더 크게 쓰여 있느니 소비자들이 상표에 혼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DD치킨이란 이름보다 치킨 대통령이 진짜이름인 줄 아는 소비자들도 있었고요. 그렇게 되면 브랜드가 2개로 나눠지니 홍보를 하려고 해도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요. 치킨 대통령을 없애는데 점주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저는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케팅은 브랜드 인지도를 떨어트린다고 확신했죠. 그런 강행군이 있고 1년 뒤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화하며 지금은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Q 노력의 결실이 보였나요?

매출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가장 큰 변화는 점주들이었습니다. 본사 직원들이 점주들에게 끌려 다니던 예전과 다르게 우리가 점주들을 이끄는 영업방식으로 저는 가맹점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도 한 번의 사업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이 생계인 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했죠. 그런 제 노력들이 점주들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 같습니다. 본사도 가맹점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죠. 신제품이 출시되면 전에는 영업사원이 가서 사정해 겨우 바꿔 6개월이 걸리던 일이 지금은 1~2달 만에 신제품을 출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직원들이 찾아가면 싫어하던 반응도 지금은 반기며 좋아하고 있고요. 본사에 신뢰가 생긴 거죠. 70개였던 가맹점도 현재는 200개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DD치킨은 6개월 만에 흑자를 내며 회생의 불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Q DD치킨이 올해 독립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분사를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위기였던 회사였기 때문에 본사에선 저희 DD치킨을 신뢰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희 프랜차이즈 사업이 본사의 매인 사업도 아니었고요. 결제서 하나 서명받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무엇 하나 하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렸었죠. 저희 회사에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으니 광고하나 내지 못했고요. 올 해 분사를 하지 않으면 꺾인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본사에 독립제안을 했고 2주 후 감사팀이 왔습니다. 당시 본사는 다른 그룹의 프랜차이즈에 가능성을 보고 있었었죠. 저희는 그 그룹보다 떨어진다는 게 본사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저희는 흑자를 보고 있었고 다른 그룹은 적자였던 거죠. 깜짝 놀랐었을 겁니다.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회사가 흑자를 보고 있었으니까요. 4월 달, 직원 10명을 데리고 본사를 찾아갔습니다. 회사는 이익을 내야하는 의무와 점주를 보호해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게 제 마지막 말이었죠. 이익을 내고 있으니 이제 분사를 통해 점주를 보호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점주들과 DD치킨이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느린 시스템이 큰 걸림돌이었으니까요.


Q 마케팅뿐만 아니라 신제품 개발도 직접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케팅만 공부하던 제가 신제품을 개발까지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현장 평가를 위해 매장에 나갔던 직원들이 시무룩하게 들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바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죠. 직원들은 현장 평가를 하며 들은 말은 ‘맛이 없다였습니다. 맛있어도 될까 말까한 치킨 사업이었는데 맛이 없다니 저는 뒤통수가 띵하게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로 시중의 모든 치킨을 다 사와 직원들과 시식을 했습니다. 그렇게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DD치킨만의 맛을 찾기 위해 연구에 돌입했죠. 저희는 일반적인 후라이드 치킨의 맛과 다른 신세대적인 맛을 연구했습니다. 차별화 된 맛을 위해서였죠. 그런 연구가 효과가 있었는지 본사 회장이 찾아와 저희 제품을 먹어보고 칭찬을 했었습니다. 저희 제품이 제일 났다고요. 그렇게 개발 된 신제품은 매장에 직접 찾아가 시식회를 하고 손님들에게 맛 품평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시행시켰고요. 3개월 6개월에 한 번씩은 제품 수정을 하며 늘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제가 처음 직원들을 데리고 했던 발표가 생각나네요. 시카고에 저희 DD치킨이 문을 열 것이라는 말을 했었죠. 당시에는 모든 직원들이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또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저를 믿고 따라오는 직원들도 시카고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요. 경기도에서 시작했던 DD치킨은 지금 서울에도 수많은 매장을 열었습니다. 신세대적인 입맛으로 대학가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저희 브랜드는 세계에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새로운 맛을 찾기 위해 연구 중이고요. 세계시장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 젊은 흐름을 놓치면 안 되니까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은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이 제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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