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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에따 러시야! 그리고 김연아의 눈물
입력 2014-02-21 16:31  | 수정 2014-02-21 16:37
피겨여왕 김연아가 2014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의 복병 아들레나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아쉽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도 있다. 어차피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러시아 선수 몫이었단 주장이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에 한 누리꾼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을 날렸다. "소치 올림픽이 아니라 수치 올림픽이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쳐 있는 유라시아 국가다. 러시아는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러시야닌(Россиянин)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강조한다. 즉, 러시아는 다른 나라 특히 유럽·미국과는 다른 민족성과 정서를 갖고 있다.
러시아는 무려 240년간(1240~1480년) 몽골의 지배를 받아 침략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자신들이 아시아와 유럽에 둘러쌓여 있어 영토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갖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는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결혼과 출산율이 급격하게 낮아져 2050년에는 러시아인의 인구가 50%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란 분석도 있다. 반면 극동 지역에서는 중국 인구가 늘어나 러시아 인구를 추월하고 중부 지역에서는 이슬람 인구가 러시아인 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이래저래 ‘러시야닌(Россиянин)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러시아의 노력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외부 세력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과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러시아 사람이나 한국인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최근엔 참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느냐 물어보면 ▲모스크바가 많이 발전했다 ▲생활이 윤택해졌다 ▲사람들이 친절해졌다 등의 답변을 한다.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도 많이 바뀌어 친절해졌고 ▲공항의 출입국 절차도 대폭 간소화됐다는 자랑을 한다.
하지만 지난 10일 미국 UPI 통신사가 전한 뉴스는 러시아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콘랜던 네덜란드항공의 아틸라이 우슬루 사장이 러시아 소치에 있는 블리디미르 푸틴 대통령 별장에서 노상방뇨를 하다가 군인들에게 1시간동안 문초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실소를 한 것은 우슬루 사장이 풀려난 뒤 지갑을 확인하니 미화 1364달러가 없어졌다는 것 때문이었다. 러시아 사람들 말대로, 에따 러시야!(이게 러시아다)”
필자는 러시아 유학 시절 항상 지갑에 미화 5달러짜리 지폐를 2~3개씩 보관하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교통경찰이나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새벽에 조깅 갈 때에도 여권과 비자를 챙겨나갔다. 경찰이 외국인 거주지역에 몰래 숨어 있다가 트레이닝복 차림의 외국인을 불심검문해 돈을 뜯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가 우리 김연아의 금메달 획득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2010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 3개, 은 5개, 동 7개로 세계 11위를 차지했다.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는 홈그라운드의 이점과 편파판정 논란 속 현재 세계 4위(20일: 금 7개, 은 7개, 동 7개)를 달리고 있다.
올림픽 개최가 국가에게 가지는 의미 차원에서 본다면 소치올림픽은 1988서울올림픽과 매우 닮아있다. 당시 대한민국은 금 12개, 은 10개, 동 11개로 소련·동독·미국에 이어 종합 4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984 LA올림픽에서 종합 10위였다) 홈그라운드 이점과 편파판정 논란 속에 무려 2배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1988년 노태우 정부는 올림픽의 성과를 통해 국민대통합을 추구했고, 2014년 푸틴 정부도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구소련의 영광을 재건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륜기(비정상, 편파판정)가 김연아에게서 금메달을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달 2014 유럽선수권에서 소트니코바의 종전 개인 최고 점수는 202.36점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러시아 소치올림픽에서 224.59점을 받았다. 무려 22.23점이나 뛰어올랐다. 55조원을 투입한 러시아는 본전 생각에 금메달이 절실했던 것이다.
러시아는 그것을 ‘러시야닌(Россиянин)이라고 쓰지만 전세계는 그것을 ‘후진성이라고 읽는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한 김연아는 경기 후 금메달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연아 금메달을 확신했던 영국 BBC는 믿을 수 없다. 김연아, 금메달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NBC방송의 2014 소치동계올림픽 공식 트위터는 "김연아 은메달, 소트니코바 금메달. 결과에 동의하십니까?"고 불만을 표출했다.
러시아 텃세와 편파판정에 의해 김연아가 금메달을 빼앗겼지만 전세계는 김연아를 진정한 ‘피겨 여왕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아디오스 김연아, 아디오스 퀸 연아(Adios Queen Yuna!)' 러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는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알고 있다.
에따 러시야!, 영화 '친구'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고마해라. 금메달 마이 묵으따 아이가."
글 =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본 칼럼은 외부인의 기고문으로 매경미디어그룹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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