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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이상화, 어릴때부터 보인 무서운 의지력
입력 2014-02-14 09:23 
이상화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사진(러시아, 소치)=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쓴 ‘빙속 여제 이상화(25·서울시청).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평정했다.
한국 빙상계의 자랑이자 희망인 이상화다. 그가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스스로를 강하게 다스렸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한 그는 여장부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상화는 고비를 맞았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두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이상화는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린 선수가 이겨낸 첫 번째 고통
이상화의 오른 볼과 턱 사이에는 흉터가 있다. 어린 이상화가 이겨낸 첫 고통이었다.
서울 은석초등학교 1학년이던 이상화는 훈련 도중 스케이트 날에 얼굴을 베었다. 스케이트장의 평균 실내온도는 0~6도. 스피드용 스케이트 날은 얇은 강철로 돼있어 아무리 살짝 베었다 하더라도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상화는 한 고비를 넘겼다. 당시 훈련장과 가장 가까웠던 병원은 동네의 한 산부인과였다. 이상화은 마취를 하지 않고 꿰매면 흉이 덜 생긴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마취 없이 총 9바늘을 꿰맸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이상화는 ‘악 소리 없이 참아냈다.
어린 나이에도 의젓한 모습을 보인 이상화를 본 아버지 이우근 씨는 그때부터 (이)상화는 뭐든 하면 되겠구나”라고 확신했다. 이후 그가 스케이팅 선수로서 성장하는데 전폭 지원했다.
이상화는 초등부 선수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사진=천정환 기자

‘금메달이 아닌 ‘결승선
한창 어리광 부리고 투정 부릴 10살. 하지만 이상화는 또래들과 달랐다. 이미 ‘금메달 획득을 목표로 정한 이상화는 승부욕을 불태웠다.
전국대회를 휩쓸던 이상화가 경기 도중 미끄러져 처음으로 2등을 한 날이었다. 대회를 마친 이상화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어찌나 많이 울었으면 어머니 김은순 씨가 집까지 엎고 왔다.
어머니 등에서 한참 울던 이상화가 처음 꺼낸 말은 엄마, 미안해”였다. 김씨는 상화가 2등을 하면 스케이트 선수가 못 되는 줄 알았었나보다”라며 어린 아이의 단순함에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이후 이상화는 모든 대회에서 완주를 목표로 삼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효과는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와 1000m 참가자 가운데 가장 빠르게 100m를 통과한 후에도 그의 페이스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정상은 금메달이 아닌 마지막 ‘결승선이었던 것이다.
이상화 가족(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머니" 김은순 씨, "친오빠" 이상준 씨, "친할머니", "아버자" 이우근 씨)은 올림픽 기간 동안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사진=천정환 기자

경기장에서는 '여장부', 집에서는 ‘해결사
이상화의 별명은 ‘빙상 여제다. 경기 중 날카로운 카리스마와 스피드로 상대를 압박한다. 하지만 집에서는 한 없이 따뜻한 막내딸이다.
이상화에 대해 그의 가족은 이구동성으로 ‘효녀라고 말했다. 어머니 김씨는 상화는 고민 해결사다. 상화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후련하다. 상화는 친구같은 딸”이라고 설명했다.
고된 훈련으로 지칠 법도 하지만, 이상화는 집안일도 척척 해냈다. 부지런한 성격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그를 도왔다.
이상화의 강한 의지와 승부욕이 경기장을 불태운 ‘선수였다면, 집에서는 사랑으로 가족들을 녹이는 따뜻한 ‘딸이었다.
이상화는 허벅지까지 하지정맥류가 올라왔지만 올림픽 출전을 위해 수술을 미뤘다. 사진(러시아, 소치)=옥영화 기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현재 이상화는 부상과 싸우고 있다. 허벅지까지 하지정맥류가 올라왔으나, 이상화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수술을 미뤘다.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상화는 훈련 후 귀가하면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얼음찜질을 했다. 옆에서 어머니 김씨가 마사지를 해주며 그를 도왔다.
2011년 아시안게임 이후 이상화의 무릎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종 대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에 수술시기를 미뤘다. 결국 부상이 악화돼 직접적으로 성적에 악영향을 끼쳤다.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오해가 야속했다. 아버지 이씨는 소치올림픽을 마치고 수술하기로 약속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이씨는 올림픽 준비 때문에 당장 수술을 받을 수 없으니 대신 훈련량을 늘려 자신의 기량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라며 안타까운 사실을 어렵게 털어놓았다.
이상화는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의 새 역사를 썼다. 사진(러시아, 소치)=옥영화 기자

국민과 가족의 ‘기쁨
이상화의 인생에 있어 가장 첫 번째는 가족이다. 평소 이상화는 그의 부모에게 내가 성공해서 아버지, 어머니를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것이 그의 꿈이라고 말했다.
딸의 이 한 마디는 부모에게 희망이었다. 어머니 김씨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자신의 몫을 다 해내는 상화를 볼 때마다 뿌듯하다”라며 이상화를 자랑스러워했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라길 바란다. 하지만 스포츠 선수인 이상화의 발에는 거듭된 훈련으로 인해 생긴 굳은살과 끊임없이 부상과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김씨는 상화는 매일 트레이닝복만 입는다. 가끔은 또래와 같이 예쁜 옷을 입히고 싶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러나 이는 불평이 아니었다. 아버지 이씨는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씨가 또 한 번 큰일을 해내 우리는 울고 웃었다. 상화는 국민과 가족의 기쁨이다”라고 덧붙였다.
[gioia@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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