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대박 유혹` 옵션, 중소 증권사 홀린다
입력 2013-12-20 08:44 

◆ 파생상품 주문 사고, 이대로 좋나 上 ◆
지난 12일 증권 시장에서는 평소 보기 힘든 현상이 관찰됐다. 옵션만기일인 이날 개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콜옵션, 풋옵션에서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거나 높은 가격에 매물이 나온 것이다. 결국 이 현상은 한맥투자증권의 주문 실수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고 460억원대의 손실을 유발하는 사건으로 비화됐다.
놀라운 것은 이같은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지난 1월 KB투자증권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으며 6월에도 KTB투자증권이 비슷한 사고로 100억대 손실을 봤다.
증권가에서는 이에 대해 '옵션'이라는 상품이 가진 특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레버리지, 즉 적은 돈으로도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특히 중소형 증권사들이 달려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옵션 거래를 하는 대다수 증권사들이 고유 계정, 즉 위탁이나 신탁 자금이 아닌 회사 자본을 갖고 거래하기 때문에 수익이 나면 그대로 회사 실적으로 이어진다. 발품 팔아가며 고객들을 유치해 돈을 빌려 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특성 때문에 이번 사고는 예고된 인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몸집 작아 날랜만큼 넘어지면 더 아파
옵션 거래는 국내 증권업계에서 대형사보다는 중소형사들에게서 더 빈번하다. 대형사의 경우 중개 수수료와 신탁 관리, 운용 등만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인 옵션 상품에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국내 증권가에는 옵션 부문에서 이른바 '선수'라는 직군이 형성돼 있었다. 이들은 증권사를 옮겨가며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자금을 갖고 옵션, 선물 만기날 집중적으로 거래함으로써 수익을 올린다. 고유계정을 통해 거래를 하기 때문에 거래 수익은 바로 회사 수익이다. 선수들의 몸값은 이 수익에 대한 인센티브다. 거래에 따른 손실이 큰 만큼 이들의 작업은 높은 스트레스와 집중력을 요한다. 이번처럼 한번의 실수가 수백억원대 손실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흔하진 않아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 무대가 바로 중소형 증권사다. 신탁 관리, 주식 중개 매매 등에서 이미 피라미드 구조가 고착화된 이상 중소형 증권사의 먹거리는 그닥 많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옵션 거래다. 거래 시스템과 빠른 매매를 체결할 수 있는 전용선, 그리고 정통한 고수만 있으면 투입되는 자금에 비해 짭잘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번의 거래 실수는 바로 치명타가 돼 돌아온다. 한맥투자증권의 이번 주문 실수는 입력상의 오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테면 100을 입력해야 하는데 1만 입력한다든가 1000을 입력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같은 실수는 은근히 흔해 지난 2010년에도 모 증권사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생기는 일은 그야말로 '나비효과'에 빗댈 수 있다. '0' 하나 입력 실수로 수백억원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특히 자기자본 규모가 작은 중소형사에게는 회사 존폐가 걸린 일로 비화한다. 한맥투자증권의 경우 잘못된 거래로 총 570억원 규모가 체결됐으며 이 중 돌려받거나 취하한 것을 빼면 약 460억원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거래소가 대신 결제한 상태이며 거래소는 한맥투자증권에 구상권을 신청했다.
◆중소형 증권사 "시스템 보완으론 문제 해결 불가"
해마다 터지는 옵션 주문 사고에 대해 관련 증권사들은 어떤 입장일까. 일각에서는 시스템적 보완을 거론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옵션 거래의 특성상 시급을 요하는 경우가 잦은데 2중, 3중 확인을 한다는 것은 거래를 하지 마라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옵션 사고로 피해를 본 모 증권사 관계자는 "사고 전에도 위험 준수 교육을 했고 이후에도 똑같은 교육을 하고 있다"며 "IT 시스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리스크를 관리할 수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사고 이후에도 옵션 거래를 특별히 줄이거나 하진 않았다"며 "왜냐면 이런 옵션 사고야말로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중소형 증권사들의 옵션 거래에 대해 책임만을 묻기보다는 알아서 위험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전 증거금 요구나 주문 수량 제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중소형 증권사들의 먹거리가 발굴돼야 옵션 거래에 대한 유혹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피라미드 형태가 고착화된 주식 중개, 신탁 관리 시장에서 중소형 증권사들의 입지는 날로 좁아지고 있다. 이들이 고위험 고수익의 유혹에 매혹되지 않도록 금융투자시장의 선진화와 다각화가 진행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김용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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