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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마이 라띠마’, 감독 유지태가 바라본 한국의 단면
입력 2013-06-09 10:40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 수영(배수빈)과 여자 마이 라띠마(박지수). 남자는 서른 살 남짓, 여자는 스무 살을 갓 넘었다. 남자는 한국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것 같은데 백수다. 엄마는 ‘너도 다 컸으니 알아서 살자며 그를 떠났고, 주변에는 그에게 도움을 주는 이도 없다.
여자는 외국인이다. 태국 이주여성.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넘어왔을 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비롯해 시댁 식구들은 그에게 살갑지 않다. 공장을 운영하는 아주버니는 불황을 핑계로 여자의 고향에 부칠 돈을 몇 개월째 주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체류 연장 허가도 안 해주려 한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신경질을 내며 라띠마와 다투는 아주버니. 길을 가던 수영이 라띠마를 구한다.
일면식도 없이 다른 곳에서 살던 두 남녀인데 비슷한 처지라 서로에게 끌렸는지 동행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이 어색하지만 답답한 현실에 고통받고 있는 마음이 통했을 것 같다. 수영을 만나고 포항에 바다가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는 라띠마. 세상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산 건 수영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수영은 라띠마의 손을 잡고 서울로 올라온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은 수영은 수중에 가진 돈을 몽땅 털리고, 라띠마와 폐지를 줍고 편의점에서 남은 음식들을 훔쳐 연명한다. 재개발 건축지역에서 잠을 해결하고 안타까운 삶을 사는 이들. 삶의 최저층에서 사랑을 키우는 두 사람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무엇이라도 일을 하려는 남자는 술집으로 향하고, 팜파탈 호스티스 영진(소유진)의 손을 잡아버린다. 호스트바에서 일하게 된 수영, 자신을 지켜줄 이를 잃어버린 마이 라띠마. 이들은 어떤 결과를 맞게 될까.

‘마이 라띠마는 수영과 마이 라띠마의 성장이야기다. 벼랑 끝에 몰린 두 사람이 거대한 세상과 부딪히는 모습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 특히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다 망쳤다”고 울부짖는 수영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한 번은 내뱉었을 그 대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5년을 넘게 이 이야기를 품에 안고 있던 유지태는 이주여성과 백수, 노숙자, 호스티스 등 다양한 군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제대로 담아냈다. 시종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도 엿볼 수 있다.
배우 유지태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를 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사회의 단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본 통찰력과 섬세한 연출 솜씨가 눈길을 끈다. 제15회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신예 박지수의 발탁도 큰 수확이다.
다른 영화들에 스크린수는 밀려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흥행 기록으로만 좋고 나쁨을 따질 영화는 아니다. 126분. 청소년관람불가. 현재 상영중.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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