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박 대통령 '1호 행사' 망친 '1호 인사' 윤창중 대변인
입력 2013-05-10 14:38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행사를 '1호 행사'라 부릅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부르지 않지만, 언론사에서는 청와대 출입기자를 '1호 기자'라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1호'라는 말은 그만큼 상징성이 크고,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하는 국가가 미국입니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이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취임 후 두 달 만에 미 워싱턴을 가장 먼저 찾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미 상하원 합동 연설까지 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니 굳이 북한식으로 얘기하자면 '1호 행사'이고, '한미정상회담' 역시 그 중요성에 비춰보면 '1호 행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끝날 무렵,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워싱턴에서 오늘 새벽 날아들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윤창중 대변인을 전격 경질했다는 겁니다.

이남기 홍보수석이 워싱턴에서 직접 한 브리핑입니다.

이남기 / 청와대 홍보수석
- "박근혜 대통령은 9일 윤창중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경질하기로 했습니다. 경질 사유는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류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경위는 주미대사관을 통해 파악 중이며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투명하게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통령을 수행한 대변인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현지에서 전격 경질했다니요?

불미스러운 일이란 윤 대변인이 현지에서 수행 비서 인턴으로 채용한 교포 여성을 한밤중 호텔에서 성추행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경찰이 수사하고 있고, 윤 대변인은 경찰 신고 직후 옷가지와 짐을 모두 남겨둔 채 줄행랑치듯이 홀로 귀국했다는 겁니다.

사실 관계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만,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통령 옆에서 항상 대통령의 말과 의중을 전달하는 대변인이, 그것도 가장 중요한 '1호 행사' 도중에 그런 행동을 했다니 정말 당황하기까지 합니다.

박 대통령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경찰 수사가 끝나지도 않았고, 귀국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지에서 전격 경질했을까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박 대통령이 여성이라 특히 더 격노했을 법합니다.

박 대통령이 격노했을 이유는 또 있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은 바로 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가장 먼저 선임한 '1호 인사'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윤창중 대변인의 인사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윤창중 / 당시 인수위 수석대변인(12월25일)
- "개인적으로 지독한 고뇌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돕기로 했습니다. 이번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정부를 바로 세워서 가장 성공한 정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제 나름대로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책무의식을 절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출발하는데 작은 밀알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저의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책무의식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책무의식'이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런데 결국 그는 애국심은커녕 나라 망신을 시켰고, 박 대통령을 돕기는커녕 큰 누를 끼치고 말았습니다.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는데, 아침 아침에 퇴색해버린 꼴이 됐습니다.

윤 대변인은 인수위 대변인 시절에도 노란 봉투를 꺼내 들고 인사를 발표해 '밀봉인사'라는 말을 낳았고, 기자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아 '불통인사'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런 비판에도 박 대통령은 윤 대변인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다시 임명했고, 미국에도 데려갔습니다.

그만큼 신뢰가 두터웠던 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 됐습니다.

정치권도 할 말을 잊었습니다.

▶ 인터뷰 : 민현주 / 새누리당 대변인
- "대통령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그 성과에 대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자 국가적 품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다. 그나마 청와대가 사건을 빨리 공개하고 대처한 것은 적절했다고 평가하며…"

▶ 인터뷰 : 배재정 / 민주당 대변인
- "더욱이 윤창중 대변인은 민주당과 국민이 반대했음에도 강행한 오기 불통인사의 대표격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잘못된 인사가 불러온 국격 추락을 깊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 이렇게 대통령 행사를 망치고, 나라를 뒤흔들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셈입니다.

윤 대변인 개인의 처신 문제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역시 인사 시스템이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 대변인은 억울하다는 견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실 관계가 좀 더 밝혀져야겠지만, 본인의 억울함을 떠나 이런 일에 연루된 것 자체가 이미 할 말을 잃게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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