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서해 NLL 공방'은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
입력 2012-10-18 11:58  | 수정 2012-10-18 17:2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NLL 발언과 관련한 진위 공방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문화일보가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을 넘겨주면서 정상회담 당시 대화록을 파기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이 보도를 근거로 문재인 후보를 압박했습니다.

▶ 인터뷰 : 이한구 / 새누리당 원내대표(10월17일)
- "노무현 대통령은 고인이 됐지만, 당시 문재인 지금 민주통합당 후보는 청와대 비서실장에 기록을 말살하는데 분명히 연관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기록을 말살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럼 문재인 후보는 기록 말살 관련해서 정말 알고 있었는지. 말렸는지 선도했는지 이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중요한 사안입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이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문 후보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10월17일)
-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 참여정부의 문서결재시스템, 문서관리시스템을 전혀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아시다시피 참여정부 때는 이지원으로 모든 문서가 보고되고 결재됐거든요. 그 이지원으로 이렇게 보고가 된 문서는 결재과정에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보고됐던 사실이 남게 되어 있어요, 문서와 함께. 이지원에서 문서가 폐기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뿐만 아니라 그 회담록들은 국정원에도 다 존재하지요. 국정원은 완성된 회담록 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여러 가지 기초자료들, 메모들 또 그때그때 방북 시작부터 내려올 때까지 전 과정 동안 기록했던 것들, 이런 것들이 다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다 자료가 되는 것이죠. 그런 것에 대해서 폐기를 지시한 일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

'이지원'이라고 하는 전자문서 시스템에 모든 것을 기록하기 때문에, 대화록만 따로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어쨌든 문 후보의 말대로 대화록이 삭제되지 않았다면 대통령 기록물 보관소나 국정원에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중앙일보가 정상회담 내용을 남측도 녹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조명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관이 휴대용 디지털 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했고, 정상회담에 배석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메모한 내용과 합쳐 대화록을 만들었다는 당시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역시 모든 메모자료와 대화록은 국정원과 청와대로 제출됐다고 전했습니다.

대통령 기록물 보관소나 국정원, 어딘가에는 이 대화록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현행법상 1급 비밀은 정상회담 대화록은 20~30년 뒤에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야 의원 2/3가 찬성하면 볼 수 있습니다.

어제 뉴스 M에 출연했던 새누리당 정옥임 정치쇄신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옥임 /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
- "국회의원들이 3분의 2가 합의를 하면 열람할 수 있고 전체 내용을 다 열람하지 않더라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열람을 해서 따져보자는 거니까요, 어찌됐든 이것은 새누리당이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고 할 수 없는 상당히 북한도 연루되고 또 문재인 후보의 발언도 있었고 이런 문제도 있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문제도 아닌 영토의 문제입니다."

법적으로 열람하는 방법은 있지만, 그것을 열람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또 있습니다.

세계 많은 나라가 그러하듯, 정상들 간의 회담 내용을 공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고, 또 정상회담을 한 상대국가와 외교를 파탄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NLL 논쟁을 끝내려면, 대화록을 열람하고 노 전 대통령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가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민주통합당은 내심 자신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밀 녹취록은 없고, 녹취록이 아닌 대화록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없다는 겁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노무현 김정일 두 사람의 단독 대담은 없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단독 회담이 없었는데 녹취록이 어떻게 존재합니까? 없습니다. 정문헌 의원이 가지고 있는 것은 합의사항이 아닌 당시 설명한 자료에 불과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의원들도 자신감을 갖기 바랍니다. 앞으로 얘기가 나와도 확신을 두고 얘기를 하기를 바랍니다."

민주통합당은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대화록 열람에 동의해달라는 새누리당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이 사실이라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박근혜 후보도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양쪽 모두 책임의 범위를 후보직 사퇴까지 보는 걸까요?

만일 그렇다면, 대화록이 공개되면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해당 후보나 그 소속 정당에도 재앙이겠지만, 국민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 대통령 후보가 과거 대통령의 발언 하나로 사퇴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닐까요?

대화록을 공개하지 않고 이 논란을 끝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합니다.

먼저 처음 의혹을 제기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이 대화록을 어디서 봤는지 밝히면 됩니다.

정 의원은 그러나 밝힐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 인터뷰 : 정문헌 / 새누리당 의원
- "(그러면 지금 정 의원께서 얘기하는 건 노 전 대통령의 영토 포기 발언이 있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근데 그걸 언제 보신 겁니까?)
그건 제가 정확하게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통일 비서관 하셨잖아요. 추측을 한다면 그때 보신 게 아닌가?)
네. 근데 정확하게 확인해 드리기는 어떤 식으로 제가 이 부분을 알게 됐는지 그 경위에 대해서 정확하게 확인해 드리기가 지금 이 시점에서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정상회담에 배석한 사람도 있습니다.

조명균 당시 청와대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이 배석했는데, 김 원장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했고, 조명균 비서관이 확인해주면 됩니다.

조 비서관이 정상회담 내용을 녹취까지 했다고 하니, 조 비서관의 얘기를 들어보는 게 순리일 것 같습니다.

또 정상회담 두 달 전 서해 NLL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에서 최종 회의가 있을 때 여기에 참석했던 김관진 당시 합참의장과 김 의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김장수 국방장관이 말을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에서 국방 관련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의 얘기입니다.

▶ 인터뷰 : 김종대 / 국방전문가(당시 청와대 행정관)
- "그날(남북 정상회담 앞두고 열린 8월18일 청와대 회의) 김장수 국방장관이 눈병이 나 참석 못했어요. 대통령에 전염될까 봐. 당시 김관진 합참의장이 대신 참석했습니다. 김관진 합참의장이 그 회의에 참석해 국방부로 되돌아가서 김장수 장관에게 보고하길, 청와대 회의 가보니 NLL 경계선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되겠다. 우리 국방부 입장이 청와대에 잘 전달돼 남북정상회담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겠다 이렇게 보고를 한 겁니다."

이 분들이 모두 얘기를 하고, 그래도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면 기록물을 열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이 문제의 본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NLL 포기 발언을 했느냐보다는 서해 NLL이 정말 우리의 영토선이냐 하는 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새누리당은 우리의 영토선이고, 생명선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1953년 미군이 임의로 그은 선이라며 남북이 그걸 그냥 지켜왔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헌법에는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적고 있습니다.

바다는 영토에 속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지난 연평도 포격 사건과 연평해전에서 보았듯 NLL을 놓고 남북은 교전까지 벌였습니다.

현실적으로는 NLL이 영토선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NLL은 영토선으로 지켜줘 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육지의 휴전선처럼 그렇게 엄격히 지켜지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북한의 어선이 NLL을 넘어왔다는 이유로 우리 해군이 강제로 나포하는 일은 드뭅니다.

경고방송을 통해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게 일반적입니다.

서해 NLL의 이런 이중적 성격 때문에 논란은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대선은 이제 60일 정도 남았습니다.

서해 NLL 논란의 진위를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고, 이제 과거의 문제는 좀 덮고 미래 정책대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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