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만년 적자 공기업을 단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비결은?
입력 2012-08-29 10:35  | 수정 2012-08-29 10:35
최근 공기업 재무구조 악화 문제가 한창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이제 공기업도 혁신해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4년 전부터 공기업 혁신에 힘써온 CEO가 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남동발전(주) 장도수 사장입니다.

그는 무려 1,400억 원이나 되는 적자에 시달리던 기업을 단 1년 만에 2,116억 원의 흑자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런 그를 두고 ‘턴어라운드(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의 황제라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턴어라운드의 황제, 한국남동발전(주) 장도수 사장을 만나 성공비결을 들어보았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아   래>


Q. 2008년에 한국남동발전 CEO로 취임을 하시고, 단 1년 만에 1,400억 원의 적자를 2,116억 원의 흑자로 전환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문득 전직이 궁금해지는데, 취임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A. 삼성코닝에서 근무했었습니다. 1976년에 입사했는데, 그곳에서 2008년까지 근무했죠. 사원으로 입사해서 과장, 팀장, 부장 등을 거쳐 부사장까지 올랐습니다. 소위 ‘삼성맨으로 33년을 근무한 거죠.


Q. 사원에서 부사장까지 승진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직장인들의 로망을 몸소 실현하신 분이시네요. 어떻게 그렇게 승승장구하셨습니까?

A. 겉으로 보기엔 승승장구한 것 같이 보이지만, 무릇 직장생활이 그러하듯 설움과 힘겨움도 많았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직속 상사가 저를 무척이나 싫어했어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아니꼽게 보였나 봐요. 집에 샌드백을 가져다놓고 밤마다 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죠.

하지만 결국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려 3년의 시간 동안 16번의 자격증 시험을 치렀습니다. ‘내가 이기나 니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어떤 오기심 같은 것이었죠.

결국 3년의 공부 끝에 전기관련 자격증부터 품질관리 기사자격증까지…. 모조리 1급으로, 총 5개의 자격증을 땄습니다. 오기로 시작한 공부였는데, 이 것이 제 삶의 전환점이 되어주었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TPM 활동 등 혁신 운동에도 앞장서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운이 좋게도 컬러TV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회사 규모가 커졌고 저도 덩달아 과장으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과장이 되어서도 혁신 활동은 계속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제가 이끌었던 부서는 늘 회사 전체 평가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승진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든,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Q. 자기 혁신에서 부서 혁신까지. 그때부터 혁신 활동들을 이끌어오셨군요. 그곳에서 부사장까지 하셨는데, 그만두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A. 2002년은 삼성에서 40인치 LCD TV를 출시했던 해인데요. 이 말인 즉슨, 곧 컬러TV에 쓰이는 브라운관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필 당시 제가 맡은 것이 ‘컬러브라운관 총괄 본부장이었거든요. 프로덕트 라이프 사이클(Product Life Cycle)로 따지면 쇠퇴기에 접어든 부서에 발령을 받은 것이죠.

제 아무리 뛰어난 천재가 온다 해도, 제품이 뜨고 지는 흐름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가라앉고 있는 배의 선장을 맡은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렇게 죽어가는 부서의 장이 됐으니, 실적 또한 좋을 리 없겠죠. 결국 제게 떨어진 명령은 4,000여 명의 직원들을 구조 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30년 넘게 현장에서 동고동락해온 직원들을 제 손으로 내보내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전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구조조정을 다 하고 난 뒤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부하를 다 떠나보낸 장군이 살아남아서 목숨을 다시 구걸하는 것이 구차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사람으로서, 나간 사람들을 위해서도 도리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Q. 한국남동발전 사장이 되신 이후에도 고생을 좀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문화는 전혀 다르잖아요...?

A. 네, 맞습니다. 공기업은 규정 중심이며, 아무래도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이 우선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민간기업은 그 반대입니다. 공익성보다는 수익성이 먼저이니까요. 제가 한국남동발전 사장에 공모해서 선발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 두 문화의 충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취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죠. 하지만, 저는 공기업과 민간기업 이 둘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기만 하거나 이질적으로 겉도는 게 아니라 두 문화의 장점을 지혜롭게 이용하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첫 취임식 날에는 ‘낙하산은 물러가라.며 노조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제가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직원들은 ‘저러다 말겠지...라고들 생각했었습니다. 저를 곱게 보는 시선이 없었으니, 당연히 초반에는 힘들었죠.


Q. 그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A. 제가 이곳에 처음 와서 느꼈던 세 가지 문제점은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 원가 절감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것, 목표의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세 가지 전략을 세워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그 세 가지란 직원들에게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주고, 파격적으로 권한을 위임해주며, 서번트(servant)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살짝 귀띔해드리면 이 세 가지만 제대로 발휘하면 직원들이 따라오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실제로 비전 2020이라고 해서 구체적인 비전을 직원들에게 제시해주었고, 소사장 제도를 통해 직원들에게 철저하게 권한을 위임해주었고,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직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소사장제는 ‘쇼사장제라며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고, 현장을 찾는 것도 ‘보여주기 식에 그칠 것이란 시선도 많았지만 저는 묵묵하게, 꾸준히, 계속해서 실천하고 보여줬습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직원들이 따라오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 개개인들의 마인드도 변하기 시작했고, 한국남동발전도 만년 적자 기업이 아닌 단연 1등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변화와 혁신을 잘 이뤄내려면 위로부터의 혁신과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가도록 시너지를 유발하는 것. 그것이 핵심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A. 지금까지는 민간기업의 효율성을 정착해 공기업의 단점을 극복하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공기업의 장점을 더욱 확장하고 부각시키는 데에도 힘쓸 예정입니다.

예컨대 사회공헌, 동반성장, 양질의 전기 공급 등과 같은 일들 말이죠. 또한 저희가 공기업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또 고객인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남은 임기동안 더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직원 입장에서는 눈 뜨면 달려가고 싶은 회사,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할 테고요.

또한 지금 현재 제가, 우리 직원들이 하고 있는 변화와 혁신이 공기업의 좋은 롤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인생 제 3막을 준비해야죠. 제 인생의 1막이 삼성맨, 2막이 한국남동발전 CEO이었다면, 3막은 무엇이 될지... 저도 궁금하네요. 지금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야죠.



인터뷰 후, 장도수 사장이 이렇게 혁신적인 CEO로 거듭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장도수 사장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CEO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될 때까지 한다.는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될 때까지 해보고, 될 때까지 혁신하고, 될 때까지 찾아가는 등의 노력들 말입니다.

덕분에 장도수 사장은 공기업과 민간기업, 이 둘의 문화의 장점을 지혜롭게 잘 이용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업의 문화를 이곳, 한국남동발전에서 탄생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이 ‘될 때까지라는 것은 성공의 열쇠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인생 제 3막 또한 심히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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