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피해자, 경기보조원으로서 만일의 상황 대비했어야…일부 책임"
자신이 친 골프공에 캐디가 얼굴을 맞아 피범벅이 된 채로 응급 이송됐음에도, 사과 없이 캐디 교체 후 경기를 마친 고객에게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지난해 2월 경남 의령군의 한 골프장에서 30대 여성 A씨는 50대 남성 동창생 일행 4명의 경기를 보조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객 B씨가 친 공이 해저드(물웅덩이)에 빠졌고 캐디 A씨는 B씨에게 "가서 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친 공이 해저드에 빠졌으니 공이 빠진 지점까지 앞으로 이동해서 다음 샷을 치라'는 것이었는데, 캐디의 말을 들은 B씨도 A씨의 말을 이해한 듯 "가서 칠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갑자기 엄청난 속도와 충격으로 골프공이 날아와 A씨의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B씨가 돌연 그 자리에서 다른 공을 꺼내 풀스윙을 했고, 이 공이 날아와 A씨의 얼굴을 정면으로 때린 것이었습니다. 당시 A씨와 B씨 간 거리는 10m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씨는 각막과 홍채가 손상되며 안압이 급격히 상승해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강속으로 날아온 골프공에 얼굴이 피범벅이 돼 긴급 출동한 119에 의해 응급실로 이송됐습니다.
30대 초반이었던 A씨는 이 사고로 코뼈가 내려앉았고, 가격당한 부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미간이 움푹 패였습니다. 이후 A씨는 트라우마로 일하던 골프장을 급하게 떠나 타지의 한 골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B씨 일행이 피투성이가 된 A씨에게 한 행동은 상식 밖의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A씨에게 사과를 건네며 병원에 동행하기는커녕 '캐디를 바꿔달라'며 이후 3시간 동안 18홀 경기를 모두 마치고 귀가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A씨의 법적대리인으로 고소 진행을 대리한 황성현 변호사는 "B씨에 대한 엄벌만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B씨의 행위는 5시간 내내 힘들게 고객의 경기를 보조하는 캐디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동반자로 여기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황 변호사는 "골프 고객의 갑질 횡포로 언젠가 또 생겨날지 모를 추가 피해자를 보호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에 해당 사건을 맡은 창원지검 마산지청에서는 B씨를 '과실 치상' 보다 높은 단계인 '중과실 치상'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과실치상'의 경우에는 벌금 500만원이 최고형이지만, '중과실 치상'의 경우에는 5년 이하 금고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3일, 법원에서는 B씨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내렸습니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3단독 양석용 부장판사는 "평균적으로 18홀에 100타 이상을 치는 등 골프 실력이 미숙한 피고인이 피해자의 안내에 따라 경기를 진행하고, 골프 규칙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며 그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이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인정했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피해자의 치료비 역시 지급했다"며 "피해자 역시 경기보조원으로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과실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자신의 과실로 사람이 피범벅이 됐는데도 경기를 지속한 B씨 일행과 A씨에게 경기보조원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해 일부 과실이 있다고 판결한 법원에 공분했습니다. 누리꾼들은 '만약의 상황을 어떻게 대비하라는 거냐. 캐디가 헬멧이라도 쓰고 일해야 하냐', '캐디 교체 후 끝까지 라운딩한 걸 보면 반성이 없는건데 왜 중과실치사 법정 최고형을 안 내린 거냐', '자기가 친 공에 사람이 맞아 피 흘리는데 아무 감정도 못 느끼냐'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권지율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wldbf99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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