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에서] 촛불집회 강경진압 했더라면?
입력 2018-06-29 11:34  | 수정 2018-06-29 11:45

60살 정년을 채우고 약 2년간의 임기를 마친 이철성 경찰청장이 오늘(29일) 퇴임합니다.

역대로 임기를 다 채운 경찰청장이 2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 청장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퇴임일 겁니다.

이 청장의 퇴임을 바라보는 경찰의 시선은 엇갈립니다. 지난 2년간 경찰이 편파 시비에 시달리지 않고 균형점을 잘 잡았다는 평가와 정권의 눈치만 보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평가가 맞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출입기자로서 옆에서 지켜본 이 청장은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를 바꾸는 '촛불혁명'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했던 경찰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달라진 경찰

지난 2016년 10월 29일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늦은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대와 대치하던 경찰은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귀가하길 부탁드립니다"란 말을 되풀이합니다.

당시 종로경찰서장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한 발언인데, 사실 이 문장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청장이었습니다.

자칫 참가자들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 본인이 직접 해산명령 문구를 작성해 알린 겁니다.

■ "촛불집회 강경진압했다면?"…'오싹'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강경하게 해서라도 집회를 막아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이 돌았고, 당시 야권에서는 계엄령 선포에 대한 우려가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만약에 경찰이 강경 진압을 했더라면 참가자들의 대응도 이어졌을 테고, 전 세계가 감탄한 평화적 촛불시위는 폭력에 따른 유혈사태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청장은 "이번 집회는 민심의 흐름을 담은 평화집회"라고 연신 당부하면서, 사복을 입고 직접 촛불집회 현장을 방문해 상황을 살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바뀐 정권에서 유임…수사권 독립 첫발

이런 뚝심이 인정받은 덕분일까요.

이 청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경찰청장 직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순경에서 시작해 경찰의 모든 계급을 다 거쳐본 유일한 청장 출신답게 이 청장은 집회 현장에서 살수차·차벽 퇴출, 수사 경찰 독립성 확보, 보안경찰 개혁 등 경찰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뚜벅뚜벅 실천했습니다.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이 청장의 임기 동안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나오며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점도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그러나 칭찬만 받은 건 아닙니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현장 의견을 무시한 채 경찰 개혁안과 수사권 조정안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이 청장은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재임 기간 잘한 일을 묻자 오히려 "잘한 일이 없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자신을 낮춰야 할 때를 아는 '감각'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라는 기록들을 세우며 정년퇴임을 하는 것이겠지만요.

그가 어떤 경찰청장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두 평가가 다르겠지만, 촛불집회의 숨은 주역이자 73년 경찰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것 하나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 김한준 기자 / beremoth@hanmail.net ]

◆ 김한준 기자는?
=> 현재 경찰청 출입기자.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친 뒤 2016년 4월부턴 사회부 사건팀에서 경찰청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를 비난하면서 과거를 찬미하는 나쁜 습관을 버리기 위해 모든 사안을 밝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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