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김주하의 '그런데'] 동방예의지국 어디 갔나…
방송 2021. 09. 24
  • +
  • 기사 스크랩하기
  • 기사 공유하기
내가 나이가 들면 신(神)이 내 삶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죠. 저였어도 늙은이의 삶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에서 늙은 보안관은 그의 경험과 이성이 무자비하고 잔혹한 악당 앞에서 무력해짐을 느끼고 쓸쓸히 은퇴를 합니다. 노인은 다만 나이가 들었을 뿐인데 빠르게 변한 세상이 그를 이방인으로 만든 거죠. 얼마 전 미국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국립공원 관리원의 100세 생일을 맞아 그녀가 평생을 살았던 마을의 중학교가 할머니 이름으로 학교 이름을 바꿨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에이브러햄 링컨 이나 마틴 루터 킹 처럼 위대한 지도자의 이름을 딴 학교는 많지만 보통 시민으로 살아온 평범한 생존 인물의 이름을 학교 이름으로 헌정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그저 성실하게 살아온 100세 어르신에 대한 공경과 예우를 표한 거죠.
우리는 어떨까요. 한때 동방예의지국으로까지 불렸것만, 노인에 대한 사회구조적 차별 은 OECD 15개 국가 중 2위, 아주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꼰대 , 틀딱 . 이런 노인 비하 용어가 버젓이 쓰이고 있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닐 겁니다. 얼마 전엔 101세 철학자에게 젊은 변호사가 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겼다, 로마시대의 귀족 남성들은 더 이상 공동체에 보탬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존엄사 했다. 고까지 했었죠. 오늘날 세태는 노인을 지혜가 많은 사람 보다 도움도 안 되면서 죽지도 않는 부담스러운 존재 로 여기는 건 아닐까요? 누구나 노인이 될 운명은 피할 수 없습니다. 어르신의 경험과 지혜를 우리가 무시하지 않고 현장에 적용했다면 우리 삶은 좀 더 시행착오를 덜 겪고, 그래서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노인에 대한 존중은 역사에 대한 존중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역사를 무시하는 민족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동방예의지국 어디 갔나… 였습니다.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

MBN 네이버 구독 배너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