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통째 뒤집어 놓을 것이라고 했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오늘로 딱 열흘이 지났습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이러다가 다 망한다 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었죠. 김영란법 시행 전에는 다 죽을 것 같이 울쌍이었기에 우선은 다 비오는 그림으로 나타냈습니다.
실제로 그런지, 먼저 골프장부터 살펴볼까요.
골프장은 이 법이 시행되면 손님이 없어 바로 문을 닫아야할 것처럼 우는 소리를 냈었지요.
수도권에 있는 고가의 회원제 골프장들, 법 시행 전보다 예약률이 1,20%씩 떨어진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골프장들이 발빠르게 할인 행사를 벌이면서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30% 이상 빌 것이라던 골프장들은 지난 주말 여전히 사람이 북적거렸습니다.
한창 성수기에 할인을 해줬으니 김영란법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죠. 약간 흐림 정도로 수정하겠습니다.
그런데, 골프장 앞 고급 식당들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수도권 OO골프장 인근 식당
- "100만 원, 150만 원, 140만 원 이달 들어와서 맛이 완전히 갔어요. 9월 28일부터…. 요렇게 (하루에 30만 원도 못 팔면) 하면 한 달에 1,000만 원하기 어려울겁니다. 월세 한 달에 150만 원. (직원은) 두 분"
장부까지 들춰 보여주는 음식점 사장님….
그럼 도심 한정식집들은 어떨까요?
이들은 생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단가를 낮춘 이른바 김영란 세트 같은 3만 원 미만의 메뉴를 개발하며 버틸 방법을 찾고 있는거죠.
기상도는 흐림 으로 일단 바꿔보겠습니다.
그럼 갈비세트나 굴비세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시다시피 이번 추석부터 소비가 크게 줄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소값이나 굴비값이 떨어졌느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선물세트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평소 먹는 게 줄어든다든지 하는 변화는 적어도 아직은 없다는거죠.
기상도는 갬 정도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큰 대형 쓰나미에 직격탄을 맞은 곳도 있습니다.
각 기업의 인사이동 철이지만, 요즘 어디에도 축하난 구경하기가 쉽지 않죠. 사람들이 당장 없어도 사는 데 이상이 없는 꽃이나 화분 같은 것부터 줄인겁니다. 연장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텅 비어 버린 양재동 꽃시장.
손님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 인터뷰 : 고은빈 / 서울 양재동
- "너무 급작스럽게 (법 시행) 하다 보니까 꽃시장이 확 죽은 것 같아서 (걱정돼요.)"
경조사 부조금 상한선은 10만 원.
7만 원짜리 화환을 주문하면, 현금은 3만 원으로 제한됩니다.
상황이 이렇자 꽃부터 줄이는 겁니다.
심지어 김영란법 대상자가 아니어도, 꽃 배달은 일단 거절부터 합니다.
꽃 하나 받았다 괜한 구설에 말리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 인터뷰 : 이상택 / 꽃가게 주인
- "10만 원에 해서 내보내고 있어요. (반송되면) 최소한 제작 단가인 6만 원 이상을 손해 본다고 봐야죠."
가을 대표품목인 국화는 김영란법 시행 1주일 만에 입찰 가격이 3분의 2정도로 떨어졌고, 이전 주에는 전혀 없던 유찰률도 44%가 발생했습니다.
유찰된 꽃들은 모두 버려집니다.
▶ 스탠딩 : 연장현 / 기자
- "한 개에 오천 원에 팔리는 분화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모두 폐기처분 대상이 됐습니다."
꽃가게들에 김영란법은 예상치 못했던 태풍과 쓰나미로 다가왔습니다.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꽃시장에선 산업구조 변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MBN뉴스 연장현입니다.
지금까지 시장 상황을 살펴봤고요.
그럼 지금부터는 소위 접대를 받던 사람들과 접대를 해야했던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취재진이 만나 본 사람들 중엔 김영란법에 대한 불만 보다는 세상 편해졌다 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중학생을 둔 학부형들이 가장 반기고 있었습니다.
길기범 기자가 만났습니다.
【 기자 】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교 정문에 물품 보관함 이라고 적힌 상자가 설치됐습니다.
▶ 스탠딩 : 길기범 / 기자
-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은 자신의 소지품은 물론 이렇게 작은 음료수 병까지 모두 맡겨야만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음료수는 물론 떡이나 빵까지 모두 반입금지됐습니다.
어색한 느낌도 잠시 뿐입니다.
▶ 인터뷰 : 초등학생 학부모
- "솔직히 상담가거나 그럴 때 확실히 부담이 없긴 하죠. 엄마들도 사실 학교 가는 게 더 편해졌다고 얘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선생님들도 오히려 마음은 편합니다.
▶ 인터뷰(☎) : 초등학교 교사
- "서로 부담없이 만날 수 있어서, 조금 더 핵심적인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잘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김영란법은 이른바 저녁있는 삶 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접대를 받는 사람도, 해야하는 사람도 저녁자리가 줄면서 취미란 걸 생각하게 됐습니다.
▶ 인터뷰 : 김복희 / 배드민턴 동호회 회장
- "전에보다는 좀 사람이 늘어난 것 같아요. 아무래도 회식이나 이런 것들이 좀 줄었지 않았나 싶어요."
헬스장이나 외국어 학원에도 문의가 늘었습니다.
▶ 인터뷰(☎) : 유재승 / 이얼싼중국어학원 대표
- "요즘 들어서 직장인들이 문의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고요. 또 일부는 (직접) 오셔서 등록하고 있습니다."
MBN뉴스 길기범입니다.
해마다 1월이면 나타나는 금연족 , 영어학원족 들 처럼 반짝 현상으로 그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요.
김영란법과 파파라치를 합친 란파라치 라는 신조어도 생겼죠. 포상금이 억 단위라고 알려지면서 아예 이걸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많았었는데요, 실제로 가능할까요.
불법 렌터카에서부터 보험사기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공익신고를 해온 전문 파파라치와 함께 정수정 기자가 현장에 가봤습니다.
【 기자 】
일명 란파라치 들이 반드시 확보해야는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바로 영수증입니다.
서울의 한 구청 인근 중식당.
점심 시간, 몰래카메라를 달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인터뷰 : 15년차 공익신고자
- "렌즈가 틀어졌어요. 일자로 딱 세우세요."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나가고, 영수증을 한 장 더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 인터뷰 : 식당 주인
- "일행이 아닌 다음에야 드릴 수는 없는 거죠. 드릴 수가 없어요."
어렵게 영수증을 구했다 하더라도 알 수 있는 건 일부 카드번호 뿐.
이름과 소속, 연락처에 주소까지 신고 요건에 맞게 인적사항을 적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인터뷰 : 15년차 공익신고자
- "오래 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거는 거의 일반인이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말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경제성이 없다, 다른 일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사실상 같이 밥을 먹은 내부자가 아니라면 신고가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자칫하다가는 신고자가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인터뷰 : 탁경국 / 변호사
- "타인간에 이뤄지는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규율하기 때문에…."
영수증을 발행하는 입장에서도 영수증을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 주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입니다.
학원까지 등장하며 불어닥친 란파라치 열풍 .
억 소리 만 요란했지 실제 대박 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MBN뉴스 정수정입니다.
김영란법 시행 열흘. 어찌보면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죠. 법 적용을 받는 대상자 400만 명을 비롯해 그 주변 사람들에게서까지,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 별의 별 소리가 다 나오고 있지요.
공무원 뿐 아니라 기자들 역시 눈 여겨봐야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기자들에게 제공되던 티켓이요. 이게 없으면 현장 기자들은 1,20만 원씩 하는 공연표를 전부 자기 돈으로 사서 보고 기사를 써야하거든요.
처음에 권익위는 기자들에게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대형 공연장에 들어가는 표를 제공하는 것도 안된다고 했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기자들이 발급 받는 프레스티켓과, 이른바 깜깜이 초대권 을 권익위가 구분하지 못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지요. 혼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국프로 축구연맹이 얼마전 취재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입니다. 앞으론 주차권도 줄 수 없다. 심지어는 마시는 물도 제공하지 않겠다.
그런데, 청와대 기자단에선 좀 다른 내용의 메시지가 돌았습니다.
주차장은 물론 체력단련장 같은 기존 시설을 청와대 직원들과 함께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요.
또 취재를 위한 목적이라면 마시는 물은 물론이고 컵라면이나 즉석밥 같은 간단한 간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 겁니다.
자, 물 한 잔을 놓고 달라진 해석.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권익위원회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1. 기자나 공무원들에게 주차권도 주면 안 되는겁니까.
2. 주차권 발급은 가능하다는 얘기네요. 그럼 공연장에 취재하러 간 기자들은 티켓을 다 자기 돈을 내고 사서 봐야합니까.
3. 프레스티켓 문제도 해결된 것 같구요. 마지막으로, 진짜로 선생님께 따뜻한 캔커피 하나도 드리면 안되는겁니까.
천만 명이 봤다는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입니다. 결코 영화처럼만 보이지 않는 불법 청탁과 금품수수.
애초 김영란법은 이런 사람들을 잡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요. 하지만, 현실에선 보신 것처럼 물 한 잔을 줄 수 있다 없다를 두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첫 신고 사례로 교수님께 캔커피를 드리가 적발된 대학생의 뉴스가 나왔겠습니까.
권익위의 말을 정확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에게도, 물 한 잔에 밥 한 끼 대접해 보내던 게 우리 민족의 정서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런 걸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는 거죠. 그럼 좀 더 비싼 원두커피는? 아이스커피는? 이런 식의 말장난은 필요치 않겠죠.
김영란 전 대법관은 김영란 법을 누가 가장 반길까라는 질문에 공무원들일거라고 답했습니다. 거절을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고 말이지요.
김영란법에 너무 기죽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편하라고 만든 법이거든요. 권익위도 조만간 오해가 낳은 사례들을 모아 바로잡을 건 바로잡겠다고 하네요. 오죽하면, 저희 특별취재팀이 처음에 정했던 오늘 기사의 제목이 쫄지마 대한민국 이었겠습니까.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