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71번째 무료강의 시작 ⇛ 식민사관=괴광사관의 역사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후고구려 역사를 이은 대진국=진국=발해의 역사가 정립이 된다. 설명
■ 전체 제목: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 71번째 주 내용: 식민사관(植民史觀)=괴광사관(怪狂史觀)의 역사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후고구려 역사를 이은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渤海)의 역사가 정립이 된다. 설명
■ 일자: 신축년(辛丑年) 단기 4354년 서기 2021.6.24.목요일.(음력 5.15.)
■ 장소=등재한 곳: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
■ 강의자(講義者):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여러분께서 사업과 직장에 초석이 되고 밑바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무료강의는 1마당에서 13마당으로 되어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무료강의를 올리겠습니다.
정정당당한 미래를 위해 우리 젊은 후손들에게 대홍익역사(大弘益歷史)배움터와 천지학당(天地學闛)터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힘찬하루 보내세요.
제11마당 설명 중 71번째 무료강의 시작
◐ 식민사관(植民史觀)=괴광사관(怪狂史觀)의 역사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후고구려 역사를 이은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渤海)의 역사가 정립이 된다
▣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의 북쪽의 후고구려를 이은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渤海) 역대왕조.
남북국시대의 시작은 668년 고구려가 마지막으로 라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 멸망한 해부터이며 즉 신라 30대 문무왕(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맏아들) 8년부터이다.
신라가 남쪽에는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북쪽의 진정한 후고구려와 이를 이은 대진국(발해)은 통일을 하지 못하였다. 그 후 고려를 세운 왕건(王建)이 우리민족이 자력으로 대진국(발해)과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곧 북쪽에 대중상의 후고구려를 서기 667년에 세우고 난 후 225년 후에 견훤이 후백제를 892년에 세우고 그리고 1년 후에 궁예가 남쪽에서 893년에 일어났다.
즉 남북국시대인 북쪽에 대중상이 후고구려를 32년간 다스리고 그 후 대중상의 아들 대조영이 국호를 개명한 대진국=진국(발해)과 남쪽의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를 왕건이 통일하였다.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大仲象)이 고구려가 라당연합군에게 멸망하기 직전에 고구려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후고구려를 세운 해는 서기 667년이다.
그 후 서기 668년 9월 21일에 고구려는 28대 보장왕은 라당연합군에게 멸망했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대가 합세하여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하여 고구려 마지막 28대 보장왕으로 고구려 멸망하기 한해 전인 서기 667년이며 또한 당나라가 우리나라 땅에서 축출되기 9년 전에 이미 북쪽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역사를 재조명하여야 한다. 라고 봅니다.
즉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인 이 시기는 엄연히 북쪽에 이미 발해 즉 대진국의 나라가 이미 세우고 있었으므로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라고 하여야 한다.
곧 발해고(渤海考)를 지은 문화유씨인 유득공(柳得恭)의 말씀대로 이 당시는 남북국시대가 맞는 것이다.
결국 북쪽에 후고구려를 이은 발해 즉 대진국=진국의 역사를 빼버린 것은 일본의 왜곡, 변절, 단절한 야비한 짓이다.
이러한 남북국시대인 이 시기에 역사를 보면
북쪽에는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이 후고구려를 서기 667년에 세우고 32년간 재위하고 그가 붕어하고 난 후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국호를 개명하여 발해 즉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이라 하고 나라를 서기 698년에 시작하여 일으켰다.
대중상이 북쪽에 후고구려를 세우고 난 뒤 225년 후에 남쪽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서기 892년에 왕이 되었고
궁예는 그 다음해인 서기 893년에 고구려 뒤를 일으켜 왕이 되어 궁예는 처음에는 기훤(箕萱: 죽주지방 유랑민의 우두머리)에게 투항했으나 인정하여 주지 않자 양길(梁吉)의 부하가 되어 크게 활약하다가 독립하여 서기 901년에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자처 하였다.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의 역사에서 북쪽에 후고구려와 이를 이은 대진국(발해)과 남쪽의 신라와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멸망의 순서를 보면
■ 서기 893년에 궁예(弓裔)는 국호를 후고구려 라고 하고 904년에는 국호를 마진(摩震) 서기 911년에는 국호를 마지막에는 태봉(泰封)으로 하였으며 그리고 연호를 무태(武泰) 성책(聖冊) 수덕만세(水德萬歲) 마지막에는 정개(政開)로 하였다.
즉 연호를 여러 번 바꾸고 서기 918년에 부양(斧壤)에서 피살되고 왕건(王建)이 고려(高麗)를 건국하였다.
■ 대진국(발해)의 시작은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이 서기 667년에 후고구려 라고 시작하여 대중상의 아들이며 태자인 대조영은 서기 698년에 국호를 진국(震國) 즉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으로 개명하고 멸망은 후고구려를 세운 대중상을 고조로 시작하여 마지막 16대 애제(哀帝)인 대인선(大諲譔)이며 총재위는 260년간으로 서기 926년에 거란=요나라에게 멸망하였다.
■ 사로(斯盧) 즉 신라는 처음에는 나라 이름이 사로(斯盧)이며 시작은 BC 73년(삼국사기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에는 기준을 잡을 수가 없으며 곧 BC 57년으로 기록하고 있음. 삼국사기 진본을 확인하여야 하며 재조명 하여야 함)이며 신라 라고 국호를 고치기는 22대 지증왕 4년인 503년에 국호를 정식으로 신라(新羅)라고 확정하였으며 신라가 멸망하기는 마지막 56대 경순왕으로 서기 935년이다.
■ 후백제 견훤은 서기 892년에 시작하여 서기 935년에 아들 신검(神劍)에게 금산사에 강제로 감금되었으며 이곳에서 탈출하여 935년 6월에 고려 왕건에게 망명하여 우울한 여생을 보냈다. 황산의 절에서 별세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신검은 다음 해인 서기 936년에 고려 왕건에 항복하였으며 살해됐다.
고려 왕건은 고려를 세운지 19년 만인 서기 936년에 남북국(南北國)시대인 북쪽의 후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과 신라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 남북국을 통일하였다.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大仲象)이 국호를 후고구려(後高句麗)라 하고 연호를 중광(重光)이라 하고 나라를 시작하기를 서기 667년이다.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이 국호를 대진국(발해)으로 고치고 698년에 시작하여 발해가 거란=요나라에게 멸망된 926년까지 대진국(발해)의 역사이다.
▣ 남북국시대 북쪽 후고구려=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渤海) 역대왕조(歷代王朝)
대진국=진국=발해의 역사는 후고구려를 세운 시조 대중상을 시작으로 16대까지이며 곧 국호(國號)는 후고구려에서 대진국=진국=발해이며 16대로 총재위기간은 260년간이다.
■ 1대 시조 묘호(廟號): 세조(世祖) 서기 667년~698년 재위함.
[시호(諡號) 진국열황제(震國烈皇帝) 성명 대중상(大仲象) 후고구려 건국. 연호 중광(重光)]
■ 제2대 태조(太祖): 698년~719년.
[시호 고왕(高王)=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 성명 대조영(大祚榮) 국호를 대진국(大震國)으로 개명함. 연호(年號) 천통(天統)]
■ 제3대 광종(光宗): 719년~737년.
[시호 무왕(武王)=무황제(武皇帝) 성명 대무예(大武藝) 연호 인안(仁安)]
■ 제4대 세종(世宗): 737년~793년.
[시호는 문왕(文王)=광성문황제(光聖文皇帝) 성명 대흠무(大欽茂) 연호(年號) 대흥(大興)]
■ 제5대 묘호 시호가 없다.(포악하여 폐위됨): 793년~794년. [성명 대원의(大元義)]
■ 제6대 인종(仁宗): 794년~795년.
[시호 성왕(成王)=성황제(成皇帝) 성명 대화흥(大華興) 연호 중흥(中興)]
■ 제7대 목종(穆宗): 795년~809년.
[시호 강왕(康王)=강황제(康皇帝) 성명 대숭린(大崇璘) 연호 정력(正曆)]
■ 제8대 의종(毅宗): 809년~813년.
[시호 정왕(定王)=정황제(定皇帝) 성명 대원유(大元瑜) 연호 영덕(永德)]
■ 제9대 강종(康宗): 813년~817년.
[시호 희왕(僖王)=희황제(僖皇帝) 성명 대언의(大言義) 연호 주작(朱雀)]
■ 제10대 철종(哲宗): 817년~818년.
[시호 간왕(簡王)=간황제(簡皇帝) 성명 대명충(大明忠) 연호 태시(太始)]
■ 제11대 성종(聖宗): 818년~830년.
[시호 선왕(宣王)=선황제(先皇帝) 성명 대인수(大仁秀) 연호 건흥(建興)]
■ 제12대 장종(莊宗): 830년~858년.
[시호 화왕(和王)=화황제(和皇帝) 성명 대이진(大彛震) 연호 함화(咸和)]
■ 제13대 순종(順宗): 858년~870년.
[시호 안왕(安王)=안황제(安皇帝) 성명 대건황(大虔晃) 연호 대정(大定)]
■ 제14대 명종(明宗): 871년~893년.
[경왕(景王)=경황제(景皇帝) 성명 대현석(大玄錫) 연호 천복(天福)]
■ 제15대 위해(瑋楷): 893년~906년. [성명 대위해(大瑋瑎)]
■ 제16대 묘호는 없음. 애왕(哀王)=애제(哀帝): 906년~926년.
[성명 대인선(大諲譔) 연호 청태(淸泰)]
▣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 대하여.
나라가 힘차게 살아가는 것은 나의 역사와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역사 속에는 훌륭한 분이 많으며 이러한 역사서와 문화를 우리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나의 부모형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역사서는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발해고(渤海考)를 지으신 유득공(柳得恭)선생님께서 발해고 외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도 지으셨습니다.
이십일도회고시는 단군조선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4,000년에 걸쳐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의 21개 도읍지의 전도(奠都: 제사 지낸 도읍지 즉 수도) 및 번영을 읊은 43편의 회고시에는 거듭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민족의 주체의식을 되새겨보려는 즉 민족주체의식을 확립 하여야 한다는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 대하여
조선 후기의 문인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단군의 왕검성에서 비롯하여 고려조의 송도에 이르기 까지 21개의 왕도(王都: 나라 수도)를 읊은 한문으로 된 시(詩)로 된 작품이다.
유득공이 31세였던 1778년(조선 22대 정조 2년)에 동국지지(東國地志)를 읽고 한수 한수 틈틈이 지은 것이다. 이는 어린아이와 어린 계집종조차 듣고 외울 정도로 마음을 썼다고 한다.
제작 당년에 연경에 들어갔던 박제가(朴齊家)와 이덕무(李德懋)에 의하여 반정균(潘庭均) 같은 청조의 문사들에게 소개되어 그들의 감탄을 받았으며 이정원(李鼎元) 나빙(羅聘) 심심순(沈心醇)과 같은 시인들로부터 제찬(題贊)까지 받았다.
시의 앞에는 시의 내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여놓고 있다.
그리고 시의 뒤에는 시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으며 중국사의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시의 분량은 칠언절구 43수에 불과하나 전체적인 규모는 38장 1책에 이른다.
그 내용은
단군조선의 왕검성 1수(數) 기자의 평양 2수. 위만(번한)의 평양 2수. 한(韓)의 금마(金馬) 1수. 예(濊)의 강릉 1수. 맥(貊)의 춘천 1수. 고구려의 평양 5수. 보덕(報德)의 금마저(金馬渚) 1수. 비류(沸流)의 성천(成川) 1수. 백제의 부여 4수. 미추홀(彌鄒忽)의 인천 1수. 신라의 경주 6수. 명주(溟州)의 강릉 1수. 금관(金官)의 김해 1수. 대가야의 고령 1수. 감문(甘文)의 개령(開寧)의 1수. 우산(于山)의 울릉도 1수. 탐라의 제주 1수. 후백제의 완산 1수. 태봉의 철원 1수. 고려의 개성 9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나간 역사에 있어 그 시기의 도읍지를 찾아서 회고시를 지은 것은 주체적인 기상을 드높이며 민족적 자각을 하여야 할 시기에 명나라에 대한 의리 따위나 찾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문학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군조선에서 고려까지의 도읍지를 회고하면서 감문(甘文) 우산(于山) 탐라(耽羅)까지도 하나의 과거의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점을 통하여 잊혀져 있는 부분에까지 두루 관심을 가지고자 하는 의도가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결국 이 시(詩)는 우리 역사의 지나간 모습 즉 민족적 삶의 총체적 양상을 각국의 왕도(王都)를 통하여 제시함으로써 우리 것을 새롭게 인식하려고 하는 역사적 대응방식을 명쾌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단군조선의 장엄한 여명을 읊은 것과 고구려 사람들의 기상과 저력이 응집되어 있는 고주몽의 이야기를 민족의 발전과 생동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이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유득공의 참신한 역사의식이 강열한 시(詩) 의식으로 변용되면서 형상화한 것으로 내 것과 나를 찾으려고 하는 민족적 의식을 노래한 민족대서사시 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이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의 말씀은 단군조선의 위대한 역사와 광활한 강토와 문화를 찾아야 하며 아울러 단군조선의 훌륭한 홍익인간의 맥인 홍익학(弘益學)=홍익교(弘益敎)를 이어온 부여(夫餘)와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는 바입니다.
유득공의 저서인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한 그 진정한 내용은
대진국(발해)의 시작은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이 후고구려를 667년에 시작하여 32년간 재위를 하고 서기 698년에 운명하고 그의 아들 대조영이 후고구려의 국호를 698년에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 즉 발해(渤海)로 개명하여 나라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 대진국=진국=발해의 역사를 서기 926년까지 이어갔으며 총재위기간은 애제까지 16대로 260년간이다.
곧 북쪽의 대중상이 세운 후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이 멸망한 서기 926년은 고려태조 9년 7월이며 요(遼)나라는 즉 거란(契丹)은 발해의 103개성 모두 점령하여 대진국(발해) 멸망하였다. ≪ 이때는 당나라가 멸망한 후 오대십국시대로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우기 전의 역사이다. ≫
곧 우리나라의 남북국시대의 역사는 북쪽에 고구려가 668년에 라당연합국에 멸망하기 1년 전에 즉 667년에 북쪽에서 고구려를 이어서 후고구려(後高句麗)를 세웠다.
그리고 대중상이 세운 후 역사가 225년이 지나서 남쪽에 견훤이 892년에 후백제를 세우고 그리고 1년 후에 궁예가 893년에 후고구려를 세웠다. 그 후 고려 왕건이 우리민족인 자력의 힘으로 통일하였다. 곧 서기 936년에 고려 왕건이 통일하였다. 곧 고려 왕건 재위 19년에 남북국(북쪽의 후고구려와 남쪽의 후삼국인 신라와 후백제와 후고구려)을 통일하였다.
다시 말하여 괴광사관(怪狂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들의 그 당시 즉 일제괴광기(日帝怪狂期)=일제강점기시대에 왜놈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시대이므로 이제는 나라를 찾았으니 우리의 얼로 왜놈들이 왜곡하고 변절하고 조작하고 날조한 역사를 뛰어넘어서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즉 남북국시대의 역사를 바로세워서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71번째 무료강의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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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바보는 자기나라 역사를 연구하지 않는 자이다. 진실로 슬기로운 자는 자기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자이다. 식민사관=괴광사관들이여 이제는 제정신을 차려보아라.♬
신축년(辛丑年) 단기(檀紀) 4354년 서기(西紀)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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