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역사와 각 나라 역사란? 전쟁 후에는 평화가 오고 평화 후에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들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곧 평화가 깨어지면 또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이 역사다. 고로 평화로울 때 군사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나라가 일어설 길이 없다.
◈ 전임대통령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라는 혼란이 온다.
각 나라 지도자들은 어느 누구나 전쟁 대신에 평화를 누리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다. 곧 힘이 약한 나라는 항상 침략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명언이 있다. 약한 나라의 정문에는 전쟁이 끝나질 않는다. 라고 했다.
그러하다면 전쟁 대신에 평화를 원한다면 자국의 힘을 길러야 한다.
자국의 힘에는 경제력의 힘과 군사력의 힘을 키워야 한다.
세계평화를 원하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하여는 과거의 잘못된 사건들에 대하여 진정한 반성과 사과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평화가 계속되면 좋겠지만 역사는 말하기를 평화가 오래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고로 평화가 깨어졌을 때 우리는 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현명하다면 평화분위기를 만들어서 전쟁이 않일어나면 더욱 좋겠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백성들의 안전을 위하여도 그 대비책을 동시에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비책이 없이 평화만 불우짖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각 나라 지도자는 자기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지 어찌하여 현재 대통령은 자기 백성, 자기 부모, 자기 전임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이 보다 더 못한 취급을 하고 있다. 과연 전임대통령이 북한이 저지른 만행보다 더 나쁜 만행을 했단 말인가!!!!!!!!!!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면 고생하신 전임대통령의 노고를 생각하여 김정은이 보다는 더 대우를 해주어라. 그런 후에 전쟁 대신에 평화를 논하여라.
평화를 논하기 전에 먼저 6.25전쟁 이후에 일어난 북한의 만행에 대하여 반성과 사과를 받아라.
➜ 6.25전쟁이후에 일어난 북한의 만행들에 대하여 몇가지만 올리고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 1968년 청와대 기습사건.
-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 1987년 KAL기(대한항공) 폭파사건.
-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
- 2008년 금상산 피격사건.
- 2010년 천안함폭침사건(5.24조치는 천안함폭침사건에 대한 대응조치)과 연평도 포격사건.
북한의 온갖 만행에 대해 현재 문재인정부는 상기와 같이 이러한 만행들에 대하여 무조건 덮어주고자 하고 이에 따른 대응조치에 대하여 한마디도 없고 평화만 외치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그리고 왜 교황초청 문제를 당연히 북한 김정은이가 해야 되는 일을 왜 우리나라에서 거론을 하는지 도대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시급히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국의 어려운 일들을 먼저 해결을 해나가면서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나 지금의 정치는 아주 저급 중에서도 저급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제 생각으로는 제일먼저 해야할 일로는
- 국보 제1호를 한글 또는 더 유서깊은 걸로 바꾸어야 하는 일.
- 고속도로 외 일반도로에서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돈을 받는 것을 다 폐기해야 하는 일.
- 그 외 청년실업자를 빠른 시일 내에 직장을 구하는 일.
여기에 6.25전쟁에 대하여 그 당시 배경을 말하고자 합니다. 곧 북한이 노린 배경이란 남침을 했을 때 그들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하여 그 당시 남한의 정세를 완전히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 6.25전쟁=한국전쟁의 그 당시 배경.
- 1950.6.25~1953.7.27.까지의 3년 10개월간의 남북동족간의 전쟁을 말한다.
-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원자폭탄으로 무조건 항복하여 그 통치지역 이였던 한반도는 군사적인 편의에 따라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이 미소양군에 의하여 분할점령 되었다.
- 해방된 4개월 후인 1945년 12월에 미영소 3국외상은 모스크바에서 한반도를 5년간 신탁통치를 실시할 것에 합의하였다.
- 남한의 한국민은 반탁(反託)하고 북한의 좌파세력은 소련의 지령에 의하여 찬탁(贊託)으로 정치적인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다.
- 1947년 9월에 미국은 소련의 반대를 뿌리치고 한국문제를 일방적으로 유엔에 제기하여 11월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 1948년 5월에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사령관은 거절하여 남한만 선거를 행하여 7월 17일에는 헌법을 제정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고 하였고 8월 15일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 즉 이승만(李承晩)이 당선되어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해 12월에는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 북한에서는 김일성(金日成)을 중심으로 하여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실시하여 1948년 9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공산국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 광복을 맞이하여 또 남북한으로 각각 별개의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분단의 정권이 수립 되었다. 이로써 38선은 군사분계선이 아닌 남북한의 각각 별개의 정부를 수립한 국경선이 되어버렸다.
- 북한은 1949.3.17.에는 소련과 조소군사비밀협정이 체결되어 계획적으로 군사력증강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 1949년 3월에는 중공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중국공산군과 군사력을 갖추게 되어 38선에 13만명을 배치하고 또 예비군 10만명을 완료하였다.
- 김일성은 국내외정세를 파악하여 즉 이때의 정세는 1949년 10월에 중국이 공산화되었고 미군이 1949년 6월에 철수하였고 1950년 1월에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이 극동방어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시킨다는 성명이 있었다.
- 1949년 말경에 김일성이 스탈린을 방문하여 무력침공계획에 승인을 받았고 또 김일성은 남한에 남로당이 붕괴되어 인민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 하여졌고
김일성은 민족해방을 위한 투사로서의 경쟁에 있어서 박헌영(朴憲永: 공산주의 운동가이며 김일성에게 실권을 빼앗겼음)을 압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남한에는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상태에 있었고 남한은 국군의 병력과 장비가 열세하였다.
- 이러한 것을 파악한 김일성은 무력통일을 구상하게 되어 김일성은 침략계획을 은폐하기 위해 북한공산당은 남북통일 최고입법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다고 하여 통일정부수립을 주장하는 평화공세를 벌이는 한편 군사력이 빈약한 남한의 정세를 파악한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38선 전역에 걸쳐 전면 남침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역사를 가르치고 알아야 하며 그 외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해야하는 데 즉 국보를 바꾸는 일 외 시내도로에서 돈을 받는 것을 폐기하는 등 이라도 해놓고 북한을 도와주는 정책은 어느정도 이해를 하나 지금의 행위들은 너무나 저급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곧 자국의 어려운 일들을 먼저 해결은 않하고 남의 나라 일인 북한이 해야 할 일들인 현재의 교황초청문제나 그 외 북한의 만행들을 무조건 덮어두고자하는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일들을 보아서는 과연 문재인정부는 우리나라 대통령인가 아니면 김정은의 비서실장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한지요.
아아 역사를 알아야 만이 세계무대에서 또 우리나라 한반도에서 우리의 당당한 주장을 하여 전쟁 대신에 진정한 평화를 위하는 정책을 펼쳐 나갈 수가 있다고 봅니다.
잘못한 만행과 사건들에 대하여 반성과 사과 없이 무조건 평화로만 이끌고 갈려면은 미래가 위험하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아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의 넋이라도 위로해주어야 한다.
아아 위대한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아아 평화는 희생 없이 이루어진 나라는 없다.
우리농사 우리가 지어보세.
힘찬역사 우리가 만들어 보세.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무술년(戊戌年) 서기 2018.10.22. 월요일.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辭)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자료실 또는 홍보실) 첫 글인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