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다리 아내와 길 위의 남편
도심 속 아파트 뒤편, 높은 언덕에 자리한 건물 지하에 노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백년가약을 맺은 지 어느새 60년이 된 정명섭(82세, 호더스 증후군) 씨와 그의 아내 왕영임(76세, 신장병) 씨입니다. 하지만 아내 영임씨는 건강이 좋지 못합니다. 20년 전, 3번에 걸친 자궁암 수술 후유증으로 신장병을 갖게 된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보다 무려 3배 이상 부어있습니다. 이렇게 다리가 부은 지 어느덧 15년.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왔을까요? 그런데 부어 있는 왼쪽 다리보다도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저장기능을 상실한 채 늘 줄줄 새는 소변입니다. 언제,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 소변 때문에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하는데요. 30분마다 한 번씩 갈아줘야 하는 기저귀 때문에 집 밖을 나서는 것이 가장 두렵다는 영임 씨. 당신의 건강도 좋지 않은데 그녀의 신경은 항상 밖에서 일을 하는 남편에게 가 있습니다.
“멀쩡한 물건을 다 버리잖아요.
그거 보면 아까워서 다 가지고 오는 거예요“
무척 더웠던 올 여름. 폭염주의보에도 남편 명섭씨는 집 밖에 나가 폐지와 공병을 줍고 있습니다. 주운 만큼의 대가를 받는 일이기에 가끔은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는데요. 그가 집에 올 때까지 아픈 아내는 당뇨가 있는 남편이 혹시라도 길에서 쓰러지진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픈 다리를 이끌고 집 밖에 나가서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 보면 사람이 한 사람이 눕기에도 빠듯할 만큼 짐들이 쌓여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짐은 명섭씨가 가져다 놓은 물건들입니다. 5년 전까지 30년을 일했던 아파트 경비원 직업. 당시 일하면서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들을 아깝게 여겨 집에 가지고 와 쌓아둔 겁니다. 은퇴 후에도 옛 습관 그대로 밖에서 쓸 수 없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집안에 쌓아두는데요. 그로인해 늘 영임씨와 언성을 높이곤 합니다.
“(아내 힘들어 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어쩔 때는 눈시울도 붉어지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바깥에서 폐지를 줍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걱정스러운 아내의 만류에도 남편 명섭 씨는 고집을 부리면서 오늘도 길 위로 나섭니다. 사실 그도 이젠 편히 쉬고 싶지만, 아내의 기저귀값이 한 달에 20만원 가까이 들어가니 일을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정부에서 나오는 노령연금으로만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도 신청을 해보고 싶지만, 10년 넘게 행방불명된 아들이 부부의 거주지에 함께 올라와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주민센터에서는 행방불명된 아들의 호적을 말소시키면 정부보조를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게 당신들 살기 위해 혹시라도 살아있을지 모를 아들의 호적을 말소 처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주변의 아무런 도움 없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힘든 노년을 보냅니다. 내일은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큼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말이죠.
자궁암 수술 후유증과 신장병으로 인해 코끼리 다리를 가진 아내 영임 씨와
아내의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길 위에서 폐지를 줍는 남편 명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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