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9주년, 독립후손의 오늘은...
“다녀오겠습니다.”
“오기는 지랄하러 와?”
티격태격. 모르는 사람은 입씨름을 한다고들 하지만, 구판장의 주인인 황금옥(75세/지체장애4급) 할머니와 손자 유청민(21세/뇌병변 장애1급) 군에게는 아주 정겨운 인사법입니다. 특히 할머니는 손자 청민이가 외출을 할 때마다 매번 입으로만 퉁을 주는데요. 청민이를 태운 차 뒤꽁무니를 끝까지 쫓던 눈길을 거둔 할머니가 구판장 한쪽의 작은 방으로 들어설 때면, 왠지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조용한 방 안에서 할머니를 맞이하는 것은 손자 청민이의 몇 가지 사진들과 ‘황만우’ 선생님의 국가 유공자 증서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하니 ‘그런가 보다’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유공자증서도 주고 하니까 그때부터 자부심이 느껴졌지
그저 먹고살기가 바빠 국가 유공자의 자녀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부심을 잊고 살았던 할머니. 무궁화 꽃 무성하게 핀 8월에 만난 황금옥 할머니는 그렇게 말문을 텄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구판장을 하며 두 아들을 키운 할머니. 그런데 큰아들이 낳은 손자 청민이가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으면서 점점 가세가 기울었다고 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감당하지 못한 며느리는 처가로 도망 가버렸고, 그 충격에 큰아들마저 밖으로 나돌았는데요. 청민이를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할아버지마저 후두암으로 돌아가시자, 남겨진 것은 뇌병변 장애 1급의 손자와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병원 빚이 전부였습니다.
2014년도 8월 15일, 벌써 69주년 광복절이 다가왔지만 독립 유공자의 후손인 할머니는 여전히 가난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구판장은 점점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수입이 20만 원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 작은 구판장이 유일한 수입원이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독립후손이라 해서 지원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뇌병변 장애 1급의 손자가 생계에 도움이 될 리도 만무한 것이 현실. 그나마 손자 청민이와의 툭탁거림만이 할머니의 헛헛한 마음을 헤아려주는 유일한 위안이지만, 점점 나빠지는 몸으로는 이런 정겨운 인사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할머니의 우묵한 눈에는 오늘도 걱정만 가득 고였습니다.
1919년 3.1만세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신 ‘황만우’선생님의 자녀, 황금옥 할머니.
이제 겨우 독립후손이라는 자부심은 되찾았지만,
두 손엔 여전히 가난만 들려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MBN 소나무에서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