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은집, 부녀의 소원
“아내는 당뇨 합병증이 심해서 입원해 있어요”
강원도 강릉시에 자리한 작은 바닷가 마을. 이곳에서 그물 손질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최상옥(66. 시각장애 중증) 씨를 만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35년 전에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 함동숙(62. 정신지체장애 중증) 씨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최희연(33. 지적장애 중증) 씨 이렇게 단 세 식구입니다.
그런데 4개월 전, 아내 동숙 씨가 당뇨합병증으로 쓰러져 현재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남편 상옥 씨가 병문안을 갈 때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과자나 라면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아내. 당뇨합병증이 심각해 1년 전에 이미 엄지발가락까지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그녀지만, 지적장애 때문인지 당뇨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데요. 그 모습에 애써 담담한 척했던 상옥 씨는 끝내 뒤돌아서서 눈물을 보이고 맙니다.
“다행히 딸내미가 음식 만드는 걸 즐겨 해요”
나무가 바람 때문에 못 잔다는 말처럼, 상옥 씨는 평생 딸 희연 씨 걱정하느라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세 살 때 홍역으로 인해 고열을 앓게 되면서 지적장애를 갖게 된 딸. 지금까지 그녀는 한글과 숫자를 온전히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입원해 있는 요즘엔 어설프게나마 반찬을 만들어 밥상 위에 올려놓는데요. 오로지 간장과 고춧가루만 넣어 만든 생선조림이 싱거워서 아빠가 따로 소금 간을 해야 하지만 “실패가 아니야, 자꾸 하면서 배우는 거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딸을 격려해주는 상옥 씨입니다.
“수술 시기를 놓쳐 두 눈이 곧 실명할 겁니다”
이렇듯 딸을 지켜주는 울타리이자, 딸의 세상의 전부인 아빠 상옥 씨. 하지만 요즘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미 어렸을 때 사고로 왼쪽 눈이 실명한 그는 2년 전에 또다시 찾은 안과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단지 오른쪽 눈이 침침해져서 안약을 처방받기 위해 찾았을 뿐인데, 그곳에서 5년 안에 오른쪽 눈마저 실명한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겁니다. 시신경에 손상된 범위가 너무 큰데다가 녹내장과 황반변성이 동시에 진행된 건데요. 더욱 안타까운 건 수술을 하기에도 너무 늦은 상태라는 말을 듣고 상옥 씨는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절망만 할 순 없었습니다. 본인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거친 세상에 남겨질 아내와 딸이 걱정인 그는 애써 힘든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지적장애가 있는 딸에게 살림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는데요. 행주를 빨고 너는 방법과 세탁기를 작동하는 법까지 딸이 이해할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해서 알려줍니다. 언젠가 본인이 앞을 보지 못할 때, 그리고 더 나아가 저세상에 가게 됐을 때, 혼자 남겨질 딸의 앞날을 위해섭니다.
“제가 아빠 밥 차려주고 심부름하면 돼요”
아빠 상옥 씨는 아직도 딸을 보면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희연 씨는 앞으로 아빠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요. 아빠가 마음 아플까 봐 본인이 알고 있다는 걸 내색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딸에게 아빠가 앞을 보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제가 아빠 밥 차려주고, 씻겨주고, 심부름하면 돼요”라고 희연 씨는 자신 있게 답합니다.
여기 바닷가 작은집에 사는 부녀가 있습니다. 거세게, 때론 잔잔하게 밀려오는 인생이란 파도에서 서로가 있기에 단단해지는 가족.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는 이들의 소원. 그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아빠 최상옥 씨와
마냥 해맑게 웃는 딸 희연 씨.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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