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아버지와 서른여섯 살 아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모든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입장에서 마음 쓰이는 자식을 두고 말할 때 ‘아픈 손가락’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오늘 만나볼 이들은 올해 팔순이 된 아버지와 그에게 평생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는 서른여섯 살 아들입니다.
“철길 옆이라 불편한 건 많지만, 감사해하고 살아야죠“
강원도 강릉에서 동해를 오가는 영동선은 바다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서 여행객들에게 인기 많은 구간입니다. 그리고 여기 영동선 기차가 지나는 바닷가 철로 옆,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낡은 슬레이트집에 정연호(80) 씨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기차가 지날 때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진동이 거슬릴 만도 하건만, 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아버지 연호 씨. 이들은 20여 년 전, 강릉 시내에서 이곳 외곽으로 이사를 왔는데요. 이유는 아들 원교(36. 발달장애 중증) 씨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웃들의 반발과 당시 천만 원이었던 저렴한 집값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나이가 36살이지만, 아기처럼 키워요”
35년 전, 갓 돌이 지났을 무렵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된 아들 원교 씨. 남들보단 느리더라도 혼자서 걷고 앉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 밖에 보이는 행동은 두 살배기 아기 모습 그대로입니다. “엄마, 아빠”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물을 마시고 싶으면 본능적으로 그릇에 입부터 대고 보는 아들. 숟가락을 쥐는 것조차 하지 못해서 누군가 옆에서 밥을 떠먹여 줘야 합니다. 그리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태어나서 지금껏 기저귀를 하고 있는데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기에 언젠가 나이 든 부모가 죽고 나면 홀로 남게 될 원교 씨. 그에겐 형제자매가 없어서 장애인시설 입소가 정해진 수순이지만,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유는 원교 씨가 비활동성 B형간염 보균자이기 때문인데요. 그래서일까요? 현재까지 여러 시설에선 그의 입소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36년 동안 아들 돌보느라, 몸이 다 망가졌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껏 어머니 김학순 씨(72)가 아들을 보살폈습니다. 지난 36년 동안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돌봤지만, 이전보다 나아지기보다는 체격만 커졌는데요. 그런 아들을 품에 안아서 씻기고 먹이느라 어머니의 관절 마디마디엔 이상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돈이 없어서 무릎 수술 시기를 놓쳐 보행기 없이는 거동이 힘든 어머니. 설상가상 36년 동안 아들 걱정 때문에 마음 졸였던 탓일까요? 최근에 어머니는 치매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른여섯 살 된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는 일, 치아가 다 빠져버린 아들에게 반찬을 잘게 썰어서 먹여주는 건 이제 아버지의 몫이 됐습니다. 근래엔 한 달 만에 고추밭에서 풀 베는 일을 하게 된 아버지. 그가 밖으로 나갈 때마다 따라나서는 아들을 제지하느라 늦어진 건데요. 마치 아버지가 자신의 세상인 듯 졸졸 따라다니는 아들. 언젠가 부모가 한눈을 파는 사이, 혼자 집 밖을 나간 원교 씨가 시내에서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나쁜 일을 겪진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혼자 두고 가려니 걱정스럽죠”
어느덧 아버지의 나이도 80세,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몸이 불편한 아들을 돌보려니 무척 고되어 보입니다. 최근엔 밭에서 풀짐을 들고 걷다가 넘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기력이 약해졌는데요. 소원을 묻는 말에 아버지는 속내를 담담하게 내비칩니다.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혼자 남겨질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죽고 나면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36년 동안 노심초사하며 자식 걱정에 마음 졸여 온 노부부. 이들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서른여섯 살 아들을 돌보는 팔순의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아픔을 참고 견디는 어머니.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가족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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