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기운 노부부의 인생
대구의 오래된 임대아파트. 방에서 불과 몇 발자국 안 되는 거리의 화장실에 가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한 부부가 있습니다. 바로 정옥 씨(70), 재열 씨(75) 부부인데요. 남편 재열 씨는 25년 전 사고로 인해 다리에 30번이 넘는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만성 골수염으로 번져버린 재열 씨의 왼쪽 다리.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운 재열 씨는 엉덩이로 바닥을 기어서 이동을 해야만 합니다. 양치하거나 세수 할 때도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아서 해결해야 하는 재열 씨. 아내 정옥 씨는 그런 남편이 혹여나 넘어지기라도 할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화장실 문 앞을 우두커니 지키고 서 있습니다.
“한 번의 사고가 제 인생 전체를 망쳐버렸어요”
거동이 불편해 일은커녕 외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재열 씨. 원래는 전기공사 일을 하며 아내 정옥 씨랑 오붓한 나날을 보냈었는데요. 25년 전 재열 씨에게 일어났던 오토바이 사고는 이 모든 나날들을 앗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리뼈가 다 부서져 심각한 골수염 또한 앓게 된 재열 씨의 왼쪽 다리는 3년 전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뼈가 잘 붙지 않아 반대편 다리에서 뼈를 떼어다 붙였기에 재열 씨의 양쪽 다리는 모두 성치 못한 상태. 아내 정옥 씨의 도움이 없으면 싱크대에서 수저를 꺼내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옥 씨의 건강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데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절뚝이며 집안일을 하다 이내 통증을 못 참고 허리를 두들기는 정옥 씨. 오른쪽으로 심각하게 굽은 허리는 정옥 씨를 밤낮으로 괴롭히는데요. 정옥 씨는 류머티즘 관절염과 더불어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습니다. 한 곳의 통증이 몸 전체의 통증으로 느껴지는 섬유근육통은 정옥 씨의 허리와 다리 구석구석의 통증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아픈 몸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남편 재열 씨 대신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정옥 씨. 수리 비용이 부족해 고치지 못한 세탁기는 몇 년째 무용지물이라 정옥 씨는 굽은 허리로 손빨래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만 보아야 하는 재열 씨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습니다.
“저희 부부는 해 질 때의 노을과 같아요”
계속 재발한 재열 씨의 왼쪽 다리 만성골수염 때문에 진행한 수술만 서른 번. 넉넉했던 살림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이제는 갚아야 할 빚만 산더미처럼 남은 상황. 쉰 김치만 올라오는 밥상에 정옥 씨는 뭐라도 더 얹어주고자 조용히 집을 나섭니다. 정옥 씨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공병을 주워다 팔고 있는데요. 얼마 되진 않지만 이렇게 병을 주워 삼백 원어치 콩나물을 사다가 끓여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엔 그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은데요. 그렇게 말없이 동네를 돌고 오면 허리는 어김없이 더 아파옵니다. 고통을 호소하며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재열 씨. 슬그머니 현관을 나섭니다. 엉덩이로 복도와 계단을 기어내려 휠체어가 있는 1층까지 도착한 재열 씨. 늦은 밤이지만 아파하는 아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약국으로 달려와 파스를 삽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기대어 살아가는 부부. 서로가 있기에 황혼의 시간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습니다.
만성골수염으로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한 재열 씨,
류머티즘 관절염과 섬유근육통으로
온몸이 아파오는 정옥 씨,
지금처럼만 함께하고 싶은
부부의 소중한 바람을
MBN 소나무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