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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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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매주 월~금 오후 5시
재방 익일 새벽 1시, 새벽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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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개 변호사
▶ 안녕하십니까.
- 반갑습니다.
▶ 대선 출마 하셨다가 중간에 뜻을 접으셨는데.
- 저는 그동안에 공직생활과 국가 속에 생활하면서 제가 분석하고 국가 개혁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정권의 병폐와 새로운 한국에 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아직도 저는 제가 주장하는 새로운 국가의 길에 개혁 방안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데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서 그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 지난번에 출마했었죠.
▶ 10. 26, 문세광 저격사건, 당시 수사 검사였잖아요. 어떤 상황인지.
- 문세광이 저격 사견은 우리 치한 역사에 있어서 사건이었고 저는 문세광이를 사형 집행을 너무 빨리 하지 않았느냐, 좀 더 철저하게 수사를 해서 책임도 더 묻고 잘못된 것을 찾아냈어야 하는데 서둘렀고. 그 다음에 문세광 사건 근본 원인은 그 당시 경호실이 너무 막강했습니다. 너무 막강해서 보조하는 경찰 경호 업무가 너무 경호실에 절대적인 권한에 연속되다보니까 자율적인 업무 집행이 안 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예로해서 독점권한을 개혁해야 한다, 주장을 하는 책도 썼습니다만 많은 국민들이 알고, 역사에 기록되다시피 많은 경찰관들이 100여명 이상의 경찰관들이 현상에 투입,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세광이 총을 뽑아서 첫 발을 오발하고 땅 소리나면서 나머지 여섯 발을 계속 쏘면서 나갈 동안에 아무도 현직 경찰관 아무도 누구도 앞에서 막지 않았고 그리고 최소한 뒷덜미를 잡아서 저지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 워낙 경호실 중심이어서 경찰이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네요.
- 경찰이 자율적으로 공무 집행을 하고 현행범을 잡아야죠. 총 쏘는 사람이 연단에 VIP가 계셨는데 연단을 향하면서 계속 나갈 동안에 의자마다 전부 양쪽에 현직 경찰관이 있었어요.
▶ 뭐 했습니까.
- 글쎄 말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불행한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나 아무도 과거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을 생각을 안 하고, 장점을 배울 생각을 안 하는데 저는 그 사건에 있어서 저는 경호실 막강한 권한이 큰 원인이었다, 그리고 원칙적인 경찰에 업무 집행을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10. 26문제, 직접 수사하셨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 10. 26도 사실 문세광 사건 후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심적 타격이 컸어요. 그러다보니까 핵심 참모가 정보를 단순화 시켰어요. 사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정보의 다원화를 희망했습니다.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서너군데 이상으로부터 보고를 받으면서 충돌되는 보고를 좋아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본인이 마지막으로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걸 좋아하셨는데 그런데 그 당시에 박 대통령을 모시던 모 핵심 참모가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 그 사람의 명예를 위해서 말을 안 하겠는데 정보를 단순화 시켰어요. 한 가지 사항에 대해서 좋은 보고가 됐든, 나쁜 게 됐든 한 가지만 보고해라, 좋은 보고가 올라간 것이 저는 10. 26의 원인이 됐고 10. 26도 충분히 그 당시 비서실장, 정보부장, 그리고 차지철 경호실장, 내무장관 네 사람이 양파로 갈려서 싸우는 것은 육영수 여사님이 게셨다면 충분히 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을 거고 또 정보를 다원화했다면 충분히 보고됐을 겁니다.
▶ 문세광 저격에 연장선상으로 봐야겠네요.
- 그 영향이 있다고 봐야합니다.
▶ 당시 김재구 부장이죠? 총을 쏠 수밖에 없는 상황?
- 저는 김재규 부장이 매우 잘못한 거죠. 그 분이 차지철 경호실장에 대한 사적감정으로 그렇게 된 겁니다. 공적인 국가 개혁이나 이런 것을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 그 문제도 시간을 가지고 면밀히 조사가..
- 그 때 10. 26사건은 면밀히 수사했습니다.
▶ 이번에 박 당선인이 경호실을 장관급으로 한다고. 혹시 그런 우려가 재연될 수 있지 않을까.
- 저는 그렇게까지 안 되리라보고 특히 안보상황, 북한의 테러 위험, 이런 것을 대비해서 경호실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 그러나 그 당시 문세광 사건 당시 경호실처럼 그와 같이 경찰을 대처하게 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부친인 이용문 장군을 떠올리는데. 이용문 장군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주 막역한 관계.
- 굉장히 가까우셨고 저희 아버님께서도 인간 마음에서 우러나서 굉장히 가깝게 지내셨고 저희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참모 총장을 하면 참모총장 할 수 있는 사람은 박정희 장군밖에 없다고 그렇게 항상 말씀하셨고. 인사이동 다니실 때마다 두 분이 같이 다니셨어요. 항상. 그래서 제 아버님이 작전국장하면서 가셨고 또 부사단 가지면 참모장으로 같이 가셨고.
▶ 박 전 대통령이 아버님을 멘토로 생각하셨겠네요.
- 두 분이 심적으로 굉장히 의기투합하셔서 그 당시 군에서는 이용문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께서 비주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좋아하는 주류가 있었고 비주류였습니다.
▶ 그러면 더욱 더 의기투합 할 수 있고.
- 군에서는 불후한 입장. 제 선친께서 정보국장 하실 때에 6.25 터지기 직전입니다. 그 당시 국방부장관이 정보국장을 부르셔서 정치인 국회의원 미행을 특별 지시했습니다. 이용문 장관께서 아니, 군인이 정치인을 미행하느냐, 안 됩니다, 반대하니까 그 다음 날 즉각 군 학교로 종벌 시켰어요. 그리고 나서 6.25 터졌거든요. 그리고 후퇴만 하면 되는데 전투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저희 아버님께서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전투 경험이 많으시니까 그 당시 참모총장께서 6.25 터진 후 3일 후에 일선 지휘관으로 발령 내셨습니다. 그래서 수도 서울을 끝까지 지키셨어요. 전부 후퇴했는데 안 하시고..
▶ 저 사진은..
- 정보국장 때 사진.
▶ 왼쪽이 아버지, 오른쪽은 박정희 대통령.
- 네.
▶ 이용문 장관이 순직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충격이 컸을 듯. 그리고 5.16 이후에 이용구 장관의 묘소를 이장하는 것이었다고.
- 네.
▶ 당시 유가족에게 어떤 말을 했던 가요?
- 5.16 혁명 후, 5일 만에 제가 대학교 학생 교복을 입고 어머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최고의 부위장실을 방문했습니다. 중국 소설에 장풍이 있지 않습니까. 바람에 사람이 날아가는. 그 소설을 보고 이건 거짓말이다, 했는데 박 대통령 모습을 보고 장풍이 가능한 걸 느꼈어요. 아마 66억 인구 중에 이런 걸 본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겁니다.
▶ 무슨 얘기?
- 부의장실을 들어갔는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창밖을 내다보고 계시는데 돌아셔셨는데 제가 거짓말 안 보태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개 서리 때문에 모습이 안 보이셨어요. 그 당시 5.16을 하셨지만 미국에서 인정할 수 없다, 또 사령관이 인정할 수 없다, 풍전등화였습니다. 본인이 독하게 마음먹고 하신 마음의 의지가 얼굴 밖에 비치신 거. 그래서 독기 살기를 해서 커튼이 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앉으시오, 해서 계속 말씀하시면서 혁명에 대한 반응이 어떠냐, 쭉 말씀하셨는데 제가 제 나름대로 답변을 했는데 끝날 때쯤에 그 때도 커튼이 들어왔다, 나갔다. 얼굴이 안 보이는 거예요. 정말입니다. 그래서 끝날 때쯤 해서 저희 어머님께서 건개 어머님, 하니까 얼굴을 확 웃으시는 거예요. 그 때 제가 제일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 무슨 선물?
-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자네 아버님은 정말 인간적인 폭이 넓었다,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얼굴을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보고 가슴이 뜨거운 걸 받았습니다.
▶ 청와대 비서관으로 부르셨잖아요. 변호사님을 특별히 아끼셨을 듯.
- 저는 제 젊은 마음에 박 대통령께서 정치를 잘 하셔야겠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많은 정책 건의를 했습니다만 특히 직언을 좋아하셨어요. 어떻게 좋아하셨느냐. 사실은 제가 보고 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열 흘 정도 제가 안 들어가면 육영수 여사님이나 박 대통령이 저를 찾으세요.
▶ 그 때 어떤 자리에 있을 때?
- 검사할 때도, 청와대 있을 때.. 그래서 제가 가서 요즘 여론이 어떠냐 하면 좋습니다. 여론이 좋다는 얘기는 나이 먹은 사람한테 귀기 닳도록 듣는다, 자네 같은 젊은 친구는 내가 잘못한 걸 얘기해라, 그래서 박 대통령님, 이런 잘못한 점이 있습니다. 여론이 안 좋습니다, 하면 끝까지 들으시고..
▶ 안 좋은 얘기를 하면 호통치고 하지 않습니까.
- 아니. 쓴 약을 드신 것처럼 마지막에는 꼭 고맙네, 다음에 또 해 주게, 그러시고. 그런데 그것을 자주 그러셨어요. 그리고 제가 안 들어가면 육영수 여사께서 부르셔서 가고, 심하게 여론이 안 좋은 얘기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기 꺼리면 육영수 여사님께서 저를 박 대통령께 데리고 가서 제가 주저주저하면 제 옆을 찌르십니다. 말 좀 해.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가 5천년 역사를 창조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육영수 여사님의 역사적 사명이 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박 대통령도 탁월했지만, 육영수 여사님의 역사적 사명이 하늘에서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경제를 창조할 수 있지 않았느냐.
▶ 박 당선인도 곁에 있었을 텐데. 어린 시절에 박 당선인은?
- 그 당시는 학교 공부 열심히 잘 하는 얌전한 학생. 저하고 깊은 대화는 없었습니다.
▶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스타일을 비교분석하는데 어떤 장점을 닮았다고 보고 단점이 있다면?
- 저는 박 당선인이 박정희 대통령처럼 단호하고, 정확하고, 원칙에 충실하는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가 신뢰사회, 믿음의 사회로 전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선진 대국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으로는 제가 아직은 단점을 볼 수 없는데 앞으로 6개월, 1년 지나봐야 단점을 알 수 있을 듯. 일부 언론에서 소통이 안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언론과 박 당선인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보안 유지를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런 추측도 합니다.
▶ 인수위 활동도 그렇고 너무 철저히 보안이 되다보니까 검증이 안 돼서. 김용준 지명자 같은 파동이 아는 거 아니냐.
- 김용준 씨 경우는 제가 그 분이 독간 생활을 할 때 잘 아는데 그 분이 끝까지 가서 국회에서 표 대결을 해서 봐야 될 거 아니냐, 본인이 정말 무풍지대 살았기 때문에 언론 공격에 대해서 너무 위축된 거 아니냐, 김용준 씨가 사퇴하지 말고 끝까지 갔더라면 오히려 더 낫지 않았겠느냐.
▶ 박 당선이과 사전 협의를 했겠죠?
- 저는 모릅니다. 저는..
▶ 박 당선인의 지지율. 과거에 비해서 저공비행한다는 결과.
- 통계 숫자, 지지율이라는 건 허수니까. 지난 대통령들 초기에 지지도 있었고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 지난 번에 대선 출마했다가 사퇴하고 박 후보를 지지. 그러면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게 4자 회담을 하자,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 저는 확실하게 제가 역대 정권의 병폐와 새로운 방안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그럴 계획이었습니다.
▶ 후회는?
- 저는 그동안 유력 후보 세 사람에 대해서 메스컴이 집중 보도하고, 저는 덜 보도하기 때문에 페어 플레이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런 역경 속에서도 세 후보 다음으로 제가 지지도가 일등이었습니다.
▶ 언론의 불만이 많았겠어요.
- 그렇습니다.
▶ 지금 이동흡 지명자, 그 분은 어떻게 됩니까?
- 거기에 특정경비문제, 그걸 집중거론하고 있어요. 그 문제는 건국 이후에 지금 역대 장관, 국무위원들 그 이상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저는 선거 때 공약으로 하고 언론 기자회견 했어요. 까라고, 국민들한테 밝혀라. 그 문제에 대해서 그 분 혼자서 뒤집어 쓸 게 아니라 전부 공평하게 국민한테 공표하라, 그래서 사실은 복지 정책한다, 예산 부족하다고 하지만 예산이 세는 걸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막대한 예산이 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가차 없이 국민 앞에 공개하고 해야 하지 않느냐.
▶ 앞으로 정치 계속 하실 겁니까.
- 저는 제도권 정치는 아직 생각 없고, 국가 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계속 주장할 계획입니다.
▶ 박 당선인에게 바라는 점은?
- 그건 6개월 후에 얘기하겠습니다. 아직은 뭐.
▶ 아직은 이르다?
- 네.
▶ 오늘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