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유산 그리운 어머니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일평생 서로의 다리가 되어준 형제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체 장애를 안고 살아온 두 사람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함께 나누며 고단한 날들을 버티는데요. 목발 없이는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들지만, 자신보다 아픈 형을 먼저 생각하는 김창덕 씨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가 있었는데, 여건이 안 돼서 치료를 포기했어요.
나이가 드니까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마비가 와요...“
이슬이 내려앉은 아침, 창덕(52) 씨는 양쪽에 목발을 짚고 묵묵히 길을 걷습니다. 다리 근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30분씩 산책을 한다는데요. 맑은 공기를 마시면 모든 잡생각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운동을 마친 그가 들어선 곳은 50년이 넘은 낡은 시골집. 군데군데 깨지고 갈라진 벽, 임시방편으로 고쳐 쓴 흔적이 곳곳에 가득합니다. 높은 싱크대 대신 바닥에 앉아 버너로 요리하는 창덕 씨. 간신히 부친 계란프라이와 잘게 자른 반찬을 쟁반에 담아 옆방으로 향하는데요. 그곳엔 창덕 씨의 유일한 가족, 형 성엽(71) 씨가 있습니다. 원폭 피해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소아마비를 앓은 형제는 30여 년 전, 나란히 지체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팔다리 마비 증세가 심해져 지금은 엄지손가락 힘만 겨우 남은 성엽 씨. 화장실에 가려고 방 문턱을 넘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는데요. 엉덩이로 밀고 가다 앞으로 고꾸라져서 동생을 애타게 부르는 일도 잦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고 싶어도 외출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 보니 하나뿐인 동생에게 몸을 의탁하는 신세인데요. 창덕 씨는 그런 형을 위해 식사를 챙기고 몸을 씻겨주는 등 온 힘을 다해 돌봅니다.
“걸어 다니는 아들 하나 있는 게 부모님의 소원이었어요.
어머니 장례식도 못 가고 방에 혼자 앉아서 한참을 울었죠...”
도와줄 가족 하나 없는 성엽 씨와 창덕 씨 형제. 아픈 다리 외에도 두 사람이 함께 짊어진 무게가 또 있다는데요. 바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입니다. 외롭고 쓸쓸해질 때마다 두 형제는 방 한편에 고이 간직해둔 부모님의 사진을 종종 꺼내보곤 합니다. 평생 자식들의 건강만을 바라셨던 어머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성엽 씨를 위해 40년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밥을 지어 나르셨다는데요.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거동을 전혀 할 수 없었던 성엽 씨는 장례식에도 못 가고 혼자 방에서 울음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산소에 올라갈 수 없는 건 창덕 씨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엔 산 아래에서 산소 옆에 심은 목련 나무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더욱 시리게 다가오는 겨울, 두 형제는 오늘도 서로의 아픔을 위로합니다.
“형님과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것이 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지키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던 성엽 씨. 처음으로 어머니의 산소에 가게 되었는데요. 설레는 마음으로 어머니께 드릴 국화꽃도 준비했습니다. 휠체어를 탄 성엽 씨, 그 옆에 목발을 짚고 함께 걷는 창덕 씨. 멀리서도 어머니의 목련 나무를 금세 찾아냅니다. 하지만 성치 않은 다리로는 높고 험한 산길을 오를 수가 없는데요. 제작진이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봅니다. 형제의 소원은 오직 하나, 남은 세월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서럽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성엽 씨와 창덕 씨는 서로의 곁을 지켜줍니다. 그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일 테니까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고단한 인생길을 함께 걷는 형제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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