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의 탈을 벗겨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1.45년 동안 너무 억울하게 살아왔습니다.
눈앞에 있는 자식들을 만나지 못하여, 보고 싶은 애절한 마음에
두서없이 이글을 올립니다.
저는 2남3녀 중 두 살 위인 오빠 아래로 장녀입니다.
13살 때부터 병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을 대신하여 홀 아버님과
3살 된 막내 남동생을 돌보느라 학업도 중단하고 가족들에게 헌신하였습니다. 저희가정은 주로 어머니가 사업을 진전하셨고 아버님은 어머님을 내조 해주는 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모든 가세는 기울었지만 귀한 아들로 태어나 군림하며 살았던 두 살 위인 오빠는 그 기질이 폭력성으로 변하여 연년생인 여동생들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맞는 이유는 달리 없습니다. 그날그날 오빠의 기분에 따라 응징이 되었고 (예: 책을 똑바르게 놔두지 않았다, 물을 떠 오라고 하였는데 너무 작게 떠왔다 혹은 철철 넘치게 떠 왔다, 세수하는데 수건을 들고 옆에 서 있어야 되는데 손에 닿는 곳에 있지 않고 한발 멀리 서 있어서 눈감고 손에 닿지 않는다.)등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입니다.
무서움이 많은 저는 방구석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두들겨 맞다 보면 머리는 도깨비방망이가 되고 팔다리는 피멍 든 빨래판이 되어야 했습니다.
가부장적인 저의 집은 고아원을 했던, 터가 넓고 외진 집이라 오빠의 가정폭력은 암암리에 지속되었고, 세 자매는 아침마다 4-5세인 남동생에게 “만종아! 우리 오빠에게 오늘 맞나? 안 맞나?” 물어서 점괘를 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동생이 “오늘 오빠에게 맞는다!”라고 말하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맞게 되고 “오늘 오빠에게 안 맞는다!”라고 하는 날은 그릇을 깨트려도 안 맞게 되더라고요........
남동생은 우리 세 자매가 오빠라고 부르니 형님이라기보다는 오빠라고
불렀거든요.......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때리고 난 후에 “오빠가 미안하다!”라며 상처에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성추행인줄 몰랐습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성추행은 결국 성폭행까지 감행하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치마를 입지 않았고 오빠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2.
그렇게 견제하자 오빠는 오빠의 친구와 저를 의심하면서 “심XX랑 그런 관계이니 오빠를 멀리하는 것 아니냐!” 라며 다그쳤고, “그런 사실이 아니라고!” 말을 하니 “그런 것이 아니면 처녀막 검사를 해보자!”라며 강제로 처녀막검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수치심과 증오심에 몇 번의 자살 시도로 병원에 업혀 가기도 하였고, 연탄가스도 맡아보았고, 신경안정제로 좀비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반갑게 오빠의 신검통지서가 나왔습니다.
신검통지서를 받은 후 오빠의 성추행은 더욱 잦아졌고, 음흉한 눈빛으로 눈만 마주치며 키스를 하였습니다. 오빠는 신검통지서를 받고 군 면제를 받기위해 48키로 체중감량을 하였지만 고의로 굶어서 체중감량을 한 것으로 간주 되어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제대 할 때까지 다른 남자 만나지 말고 오빠를 기다려라!” 라는 정신 나간 간곡한 부탁을 하며 키스를 하였고 그 시점에 심하고 이상한 입 냄새가 났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굶어서 위에서 올라오는 냄새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유로워지나 했는데 3년은 짧았습니다. 제대할 날은 다가오고 불안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아빠를 만나 임신한 몸으로 제대한 오빠를 맞았고
당연지사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트라우마로 부부생활은 유지되기 힘들었습니다. 몸이 굳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잦은 다툼으로 이어졌고 2년 만에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르렀지만, 아들과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사한 집까지 찾아와서 성폭행을 시도하였고 완강하게 거절하자 “날 버리고 다른 놈 만나 살더니 꼴(이혼)좋다!” 라며 문을 “꽝!” 닫고 나갔고, 그런 일이 있은 후 저는 친정집으로 전입신고를 해 놓고 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객지로 떠나야 했는데, 그런데 오빠는 주민등록 말소까지 시키는 파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중매한 여동생 내외와 저는 아들과 평온한 날을 지나던 중,
아버님 교통사고 소식으로 병간호를 하기 위해 고향을 다시 찾았(93년2월)고 아버님이 사고 후유증으로 돌아가시자
오빠는 아버님의 교통사고 보상금과 이미 받은 아버님의 철거 보상금
그리고 남은 보상금과 아버님 장례비용 남은 것들을 독식하고 사라져
3.
부모님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배제 시켰습니다.
오빠는 남동생이 저에게 빌려 간 8천만 원을 가로채어 사업자금으로 유용하면서 저는 파산 하게 되었고, 빌려 간 원금의 절반이라도 갚아달라고 사정을 하자 남동생을 시켜 마약복용자로 검찰에 고발하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저는 파산을 하고 비싼 사채 이자를 갚느라 하루 16시간 이상의 노동으로 손발이 다 닳도록 밤낮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남동생(대한화재대리점)이 남용한 고객들 돈(보험료)들을 막기 위해
지인(손님)들에게 빌려서 빌려준 돈, 카드론 등으로 매달 막기 시작했고
다음 달이면 나온다고 한 달만 쓴다고 빌려서라도 빌려 달라하던 돈은 끝내 천 원도 돌려받지 못하였습니다.
사채업자들은 식당에 와서 하루종일 앉아 있기도 하였고 아들이 근무하는 동대에 까지 찾아가서 괴롭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낯에는 식당일, 밤에는 카페 노래방일, 주중에는 가사도우미일, 주말에는 주말 알바, 투잡, 쓰리잡으로 하루 16에서 20시간 이상의 노동으로 노예 아닌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개 한 번 들고 하늘을 볼 시간도 없었고 화장실도 제 때에 못 가고 참아가며 손에 물마를 날이 없이 죽도록 열심히 일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화장실 갓 시간도 없이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저는 과로와 수면부족, 심한스트레스로 지병(뇌종양)을 얻게 되었고
수술대에 오른 저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는 정말 간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쉴 수밖에 없는 저의 처지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물론 제게서 수천만 원씩 뜯어간 형제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빠의 억압에 연락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수술 후 회복하면서 평생을 3 동생들 뒷바라지한 결과가, 홀로 쓸쓸하게 누워있는 자신을 되뇌이면서 머리 수술의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 육신과, 평생을 가족들에게 헌신한 씁쓸한 결과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내 눈에 보이는 병원 천정이 원망스러웠고, “정말 어려운 수술인데, 수술이 너무 잘 되었다!”며 해맑게 웃으시는 의사 선생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4.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구와 지인 두 사람이 릴레이식으로 여름휴가를 활용하여 병간호를 해주었고, 어렵게 친구의 카드로 병원비를 계산하고 퇴원한 저는 2년에 걸쳐 대납한 병원비를 갚게 되었고, 뇌수술한 몸으로 사채들의 독촉에 더듬거리며 어지러운 끌고 다니며 밤낮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평생을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만 살아 온 하찮은 저를........
그런 제가 살았다는 것에 기뻐하시던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고자 다짐하며 퇴원을 하였고 죽으려고만 하며 지내왔던 과거와는 달리 열심히 새로운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며 온갖 봉사단체에 돈을 남발하며 각 단체장과 감투를 쓰고 있는 오빠는 아버님이 고아원하실때에 주워 온 동생인데 말썽만 부리고, 정말 골칫덩어리 동생이라며 제게 주지도 않은 수 억 원을 병원비와 사업자금으로 줬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저는 오빠를 갉아 먹는 기생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오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습니다.
(부모님 재산을 독식하고 사라진 방00 는 각성하라!!
가정폭력,성추행,성폭력한 방00는 사죄하라!!!)라고.....
저는 그 1인시위에 관한 사건으로 명예훼손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성폭력 사실을 감추기 위해 남동생에게 제가 15살에 가출하여 20살에 집으로 들어왔다고 황당한 거짓 진술을 시켰습니다. 제가 15살이면 남동생은 5살에 불과하여 알지도 못하겠지만 제가 가출하여 중학교를 다닌 것이 됩니다.
그리고 남동생과 여동생을 앞세워 저의 자식들에게 찾아가 유년 시절에 마땅한 직업 없이 남자들을 홀리며 꽃뱀처럼 살아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동안 수억(4-5억)을 뜯겼으며, 2달 전에도 1억짜리 적금을 해지하여 올케언니 몰래 8천만 원을 주었는데 또 돈을 요구한다면서 버릇을 고쳐야겠다며 거짓말로 회유하여 진술서에 서명을 강요하였습니다.
여자들에게 빌려서 빌려준 돈은 언급하지 않고 남자들만 운운하면서 정말 구제받을 수 없는 남자를 밝히는, 화냥년으로 치부하였습니다.
5.
세상 어느 꽃뱀이 남자들에게 뜯어낸 돈 금액을 남동생에게 낱낱이 보고하며 쓰고 다녔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 돈들은 모두 남동생이 급하게 고객들의 보험료를 대납하고, 카드론을 못 갚아서 압류된다고 빌려달라고 사정하여, 빌려서 빌려준 돈 들입니다.
저는 해바라기센터에 상담을 하였는데, 눈에 힘을 주며 도와줄 것처럼 하던 해바라기센터의 직원은 갑자기 윗선에서 승산 없는 싸움이라며, 포기를 권하였습니다.
성폭행피해로 상담을 하고 다니는 저를 의식했는지,
오빠는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변호사선임으로 자식들이 어미에게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유도, 주동하였습니다.
올바른 생각을 가진 자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며, 도대체 어떤 진실을 감추기 위해,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성을 잃고, 도덕성을 잃고 서슴없이 천륜을 끊는 행위를 가한다는 말입니까?
온갖 감투(자원봉사단체장,바르게살기협의회장,등)를 쓰고 선행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너소사이어티(부부X호)”등 고액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왜? 제 돈은 안줍니까? 왜? 평생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병들은 동생에게는 베풀지 못할까요?
물론 자기만의 마음입니다. 끝없이 미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지난날 오빠가 내게 행하였던 가정폭력! 성추행! 성폭행! 이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끊임없는 정신적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 제대할 때까지 다른 남자를 만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어겼다고 원한을 가지고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동안 여자들과의 관계를 내게 누누이 예기하였습니다. 자신의 신체에 관한 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언행들이 저의 질투심을 유발케 함이라는 것을 요즘에야 느낍니다. 저는 평생을 두려움과 괴롭힘에 살았습니다. 저는 오빠에게 당했던 수치심이, 깊은 트라우마로, 대인기피증이 있을 정도입니다.
친동생에게 가정폭력, 성추행, 성폭행, 처녀막검사라는 엽기적인 행위까지 행한 자가, 평생을 멍에를 짊어지게 한 자가, 대인기피증, 남자 기피6.
증으로 평생을 사회활동의 장애를 안고 살아온 저를 꽃뱀!!!
마땅한 직업 없이 남자들에게 금원을 뜯어 먹고 사는 꽃뱀?,
남자 없이 못사는 화냥년이라 표현하며 진술서를 .........
저는 세무서에 사업신고 자료만도 14개입니다.
그리고 알바는 수없이 하였고 눈뜨면 눈을 감을 때 가지 일만 하였습니다.
“삼인성호”라 하였습니다.
아들이 써준 진술서를 보고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하는 말, 평생 처음으로 호랑이삼촌이 밥 먹자고해서 만났더니 이모, 막내 삼촌 세 사람이 찾아와 밥을 먹고 나서는
“너희 엄마에게 2달 전에 1억원 짜리 적금을 해지하여 올케언니 몰래 제게 8천만 원을 두 달 전에 엄마에게 주었고, 그리고 그동안도 수억 원을 뜯겼으니 그 습관적인 버릇을 고쳐야겠으니 이미 써 놓은 진술서 사인을 해 달라!”라고 하더랍니다. “사인을 안 해주니 보내주지도 않아서 어차피 진실은 법이 가려 줄 것이라 여겨서 사인을 해주고 돌아오긴 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고 어머니에게 너무 실망스러워 만나지도 부르고 싶지도 않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 왔습니다.
저의 두 자녀는 무단횡단 한 번 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아이들입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아이들입니다.
듣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이 거짓으로 말하리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그런 일이 이후 저는 오늘날까지 아이들을 한 번도 만날 수 없었고. 지금까지 목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초바늘로 심장을 찌르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여나 울릴까 하는 작은 희망으로 전화기만 바라보고 부둥켜안고 살고 있습니다.
반려동물보다도 못한, 개, 고양이만도 못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7.
짐승도 이러한 행위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망가진 육신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죽기 싫은 사람 대신에 죽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명을 쓰고 죽을 수는 없습니다.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지난 과오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커녕 그 뻔뻔함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추악한 자입니다!. 정신병자입니다!
저는 하루도 그 악몽을 잊고 있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선행하며 여러 곳에 회장직을 맡고 있는 나쁜 오빠를 액면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들이 정상적이겠지요?
저는 오늘날까지 지난 악몽으로 수치심으로 나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뇌수술 후 저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일로 그냥 잊혀지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으로 몸부림쳐야 했으며, 이제는 천륜을 끊는 반인륜적인 흉악범죄 범보다 더 악랄한 방법으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지난날의 성폭행이 끝나지 않고 정신적 폭행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을 아십니까?
도와주십시오!
너무나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진실을 밝혀 떳떳하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부족한 문장력으로 억울한 사연 구구절절 표현하지는 못하였지만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염치없는 글을 올립니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르게살기를 하면서 천륜을 끊게하는 위선자의 민낯을 밝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