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산의 인생 방학
자연인 정봉기
깊은 숲속에 홀로 움직이는 검은색 호스, 시공간이 뒤틀어진 듯 거꾸로 설치된 문과 어딘가로 연결된 비밀통로. 마법 같은 공간이 가득한 통나무집에, 백발 머리를 늘어뜨리고 천장에 매달리는 게 일상이라는 자연인 정봉기(68) 씨가 산다.
“계속 움직여야죠. 한 번 늘어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늘어지거든요”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도 온화한 목소리로 ‘한 번 더’를 외치는 자연인, 그가 24시간 내내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고향 산의 모든 것이 다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라는데. 할 일이 넘쳐나는 산중 속에서 자신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정봉기 씨의 하루가 펼쳐진다.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자연인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컸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밭 갈기를 하거나, 소에게 먹이를 주며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는데. 초등학교 졸업 후 농사일만 하는 자신과 달리, 산골을 떠나 도시에 취직한 형과 동네 친구들이 늘 부러웠단다. ‘농사만 짓다간 성공은 꿈도 못 꾸겠다’는 생각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가기로 결심했다!
홀로 타지에 발을 내디딘 나이, 16살. 그는 처음 취직한 이발소에서 머리 감겨주는 일을 했다. 하지만 이발소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적응하기 힘들었고, 월급이 적어 형편도 안 좋았단다. 이후 정비소나 용접 공장 등 다른 직장을 전전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는데.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일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사소한 실수에도 거칠게 대우받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기술을 배우며 경력을 쌓아나갔다는 자연인. 그런 노력 끝에, 해외 취업이라는 좋은 기회를 얻어냈다!
중동 국가 예멘에서 전기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는 자연인. 해외에서 지내는 생활은 고달팠고, 해발 2,500m의 고산 지대에서 지내다 보니 하루에 한 번씩 코피가 나는 게 일상이었을 정도로 몸이 점점 쇠약해졌다. 하지만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일에 몰두했다. 그 덕분에 그의 가족은 하루 세끼 국수만 먹으며 지내야 했던 형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가장의 책임을 가지고 공장을 운영했던 자연인,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인해 몇 년 되지 않아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이스 피싱을 당해 3,000만 원을 사기당하기까지... 점차 나이가 들면서 세상사 고달픔에 몸과 마음 모두 지쳐가던 중,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고향 산이었다. ‘60세가 되면 어릴 적 뛰어놀던 산골로 가야지’라는 꿈을 실천에 옮긴 지금. 제대로 살맛 나는 인생을 마주했다!
인생에 가장 해로운 벌레는 바로 ‘대충’이라는 자연인! 성실함 하나로 이 산중을 가득 메운 정봉기 씨의 하루는 누구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호두나무의 건강을 위해 예방주사(?)를 놔주고, 가을에 할 표고목 관리를 위해 수원지 보수를 하고, 장작을 미리 쌓아 놓는 등 언제나 다음을 계획하고 움직이는 성격 덕분에 이번 겨울나기는 벌써 준비 완료! 그의 꼼꼼함은 요리할 때도 어김없이 나타나는데. 도리뱅뱅이의 각도와 간격을 철저하게 맞추고, 국수에 올릴 고명 또한 대충 놓는 법이 없다.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재빠르게 해결하는 그만의 대처법이 있기에, 산골에서의 생활은 늘 완벽하다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행복을 설계해 낸 자연인 정봉기 씨의 산골 생활이 궁금하다면 2023년 8월 23일 수요일 밤 9시 10분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