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짱짱한 꼬부랑 할머니는 손녀바라기
경북 성주에는 바늘에 실 꿰기는 기본, 혼자서 천오백 평 밭농사까지 짓는 눈 밝고, 체력 짱짱한 아흔 살 이종남 여사가 산다.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꼬부랑 할매지만, 자전거에만 올라타면 어디든 단숨에 달려갈 수 있다. 아침 댓바람부터 산밭에서 고추 따고, 너른 참외밭까지 둘러본 후, 다시 어디론가 향하는 종남 여사. 한 마을에 사는 막내아들 노태경 씨(50세)네 집이다. 반백의 나이에 세 살배기 딸 지우를 둔, 늦깎이 아빠 태경 씨. 그 또한, 6남매 중 막내이자 늦둥이로 자란 터라, 늦은 나이에 저를 낳아 기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단다. 그의 아내는 베트남 출신인, 부이티 황린 씨(44세). 맵고 딱딱한 음식을 못 먹는 종남 여사를 위해 부드러운 반찬으로 상을 차려내는 마음씨 착한 며느리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종남 여사는 여든일곱 살이나 ‘젊은’ 손녀와 놀아주느라 여념이 없다. 손녀가 구르면 따라 구르고, 얼굴을 쥐어뜯어도 그저 허허실실. 허리가 굽어 안아주진 못해도 일명, ‘구루마’에 손녀를 태워 동네 드라이브로 아쉬움을 달랜다. 손녀바라기 할머니와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손녀 지우. 그리고 그런 둘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태경 씨 내외. 사실, 알고 보면 이들이 한 가족이 되기까지 굽이굽이 곡절이 많았다.
#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가족
태경 씨 부부는 성주 특산물인 참외 농사를 짓고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하우스 작업은 고행만 같다. 그래도 1월부터 시작된 참외 수확이 이제 끝을 바라본다. 평생 참외 구경 한 번 못해본 베트남 아내가 참외 농부가 되고, 작년부터 이장을 맡아 바빠진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애쓰는 게 태경 씨는 항상 미안하다. 그는 첫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술로 세월을 보내며 방황하던 무렵, 운명처럼 황린 씨를 만났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열여섯 살 때부터 신발공장에서 일했다는 황린 씨. 서로의 고운 심성에 끌려 가정을 꾸렸으나, 부부는 난임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천애고아가 될 뻔했던 베트남 아기, 지우를 만나면서 입양을 결심했고, 8번의 재판 끝에 대한민국 1호 외국인 미성년자 후견인이 되어 그토록 원하던 부모가 되었다. 종남 여사는 늘 마음 쓰였던 막내아들 곁을 지켜주는 며느리가 그저 고맙고 예쁘기만 하다. 게다가 귀하고 소중한 손녀까지 생겨 살맛도 난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땐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였지만, 함께 서로의 모난 부분을 메워주며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는 이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완벽한 가족이다.
# 가족은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며느리 황린 씨에게 고민이 생겼다. 지우를 친딸로 입양하기 위해서는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 하는데, 번번이 취득시험에 떨어지는 것이다. 농사일과 육아로 바빠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탓. 공부를 도와줘야 할 남편 또한, 이장 업무로 늘 시간이 부족하다. 이러다가 지우 초등학교 입학에도 문제가 생길까 황린 씨는 걱정이 많다. 모처럼 일이 없는 오후, 남편 태경 씨가 국적 취득 시험공부를 도와주기로 했다. 아내의 일일 선생님이 되어 문제를 내고 맞히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을까. 태경 씨에게 걸려온 전화. 또 마을 일이다. 마을 일 때문에 저와 지우는 항상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 황린 씨는 서운하면서도 화가 난다. 속상한 마음을 안고 홀로 참외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지우야, 지우 엄마!” 어디선가 황린 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 자전거를 타고 종남 여사가 헐레벌떡 달려오는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