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번째 무료강의 시작 ⇛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단군님의 업적 중 마지막 제5탄 41대 음차단군 ~ 47대 고열가단군님까지 업적에 대하여 설명
2021.06.03 황효상
글쓰기: 68번째 무료강의 시작 ⇛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단군님의 업적 중 마지막 제5탄 41대 음차단군 ~ 47대 고열가단군님까지 업적에 대하여 설명

■ 전체 제목: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 68번째 주 내용: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단군님의 업적 중 마지막 제5탄 41대 음차(音次)단군 ~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님까지 업적에 대하여 설명
■ 일자: 신축년(辛丑年) 단기 4354년 서기 2021.6.3.목요일.(음력 4.23.)
■ 장소=등재한 곳: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
■ 강의자(講義者):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여러분께서 사업과 직장에 초석이 되고 밑바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무료강의는 1마당에서 13마당으로 되어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무료강의를 올리겠습니다.
정정당당한 미래를 위해 우리 젊은 후손들에게 대홍익역사(大弘益歷史)배움터와 천지학당(天地學闛)터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힘찬하루 보내세요.


제11마당 설명 중 68번째 무료강의 시작


◐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단군님의 업적에 대하여(마지막 제5탄)
세계에서도 자랑할 수 있고 세계역사의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는 단군조선역사는 마지막 제5탄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아래에 47대까지 단군님의 2096년 동안의 단군왕조를 꿋꿋하게 지키는 동안 세계역사는 어떠한 사건이나 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총평을 올려놓았습니다. 여러분의 사업에 직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41대 음차(音次)단군 시대에 업적 < BC 491년~BC 472년 >
■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성어가 나왔으며 마라톤이 올림픽에 등장하였다. 등의 역사가 있다.
庚戌元年(경술원년): 경술년이며 재위 원년에 즉 BC 491년에 재위를 시작하였다.
사마천의 사기 연표에서 BC 473년에 월왕 구천(句踐)이 오왕 부차(夫差)를 멸망시켰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음차단군 무진년이며 재위 19년이며 BC 473년이다. 즉 공자가 BC 479년에 운명한 후 6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이때에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되었다.
이에 부차는 자신의 죄책감과 후회를 한 나머지 스스로 칼로 목을 잘라 자결하고 말았다. 그 후 월나라는 구천(句踐)의 탁월한 영도아래 그 당시 가장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였다.
이때 월나라 재상 범려(范蠡)는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한 다음에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갔다. 왜냐 월왕 구천은 그 사람됨이 목이 길고 입이 까마귀 부리처럼 나왔음으로 가히 환난(患難)은 함께 할 수는 있어도 안락(安樂)은 함께 할 수는 없다 하고 떠났다.

□ 41대 음차단군 시대에 주요인물은 다음과 같다.
■ 자사(子思): BC 483년~BC 402년이며 공자(孔子)의 손자(孫子)이며 중용(中庸)을 지음.
■ 묵자(墨子): BC 480년에 태어남. 춘추시대 사상가 논리학자이다. 이름은 적(翟)이며 인간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겸애의 설을 주장함. 근로와 절약을 강조하고 비전론(非戰論)을 주장함.
■ 공자(孔子) 사망: BC 479년.
■ 부차(夫差) 자결: BC 478년에 오왕(吳王) 부차(夫差) 자결하고 오(吳)나라는 멸망함.
월왕 구천(句踐)은 10년 동안 경제생산을 발전시키고 재력을 쌓고 10년 동안 백성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무장하고 약 20년 동안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마침내 월왕 구천(句踐)은 주나라 25대 원왕(元王) 4년인 BC 473년에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즉 사마천의 사기의 연표에서 BC 473년에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BC 473년은 무진년(戊辰年)이며 단군조선의 41대 음차(音次)단군 재위 19년이다. ≫
이에 오왕 부차는 자신의 죄책감과 후회를 한 나머지 스스로 칼로 목을 잘라 자결하고 말았다.
■ 서시(西施): 출생미상~BC 478년이며 오왕 부차(夫差)가 총애하는 여자.
저라산 근처에서 나무장수의 딸로 태어났다고 하였다. 월(越)나라 미녀 서시(西施)가 본래 얼굴도 예쁜데 가슴이 아파서 통증으로 눈썹을 찡그리고 가녀린 모습으로 걸어갔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고 함.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여인이며 즉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를 말하고 있음.
오(吳)나라에 패망한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충신 범려(范蠡: 춘추시대 말기의 월나라 재상)가 월왕 구천을 살리기 위해 미인계의 계책을 이용하여 서시(西施)를 데려다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침. 이에 오왕 부차(夫差)는 서시(西施)의 미색에 빠져 오나라를 결국 멸망하게 만듦.
■ 헤로도토스: BC 480년경~BC 425년경이며 그리스의 역사가이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등을 여행하고 역사책 9권을 저작하였다. 그의 업적은 서양의 역사를 최초로 기록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서양에서 그를 서양의 역사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 헤로도토스의 역사 책에 대하여
세계역사는 단군조선 제41대 음차(音次)단군 시대에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 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역사(historiae=history)의 주요 내용
그리스는 인류에게 많은 문학과 예술의 업적을 남겼다.
그리스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호메르스의 작품으로 장편 서사시가 있다.
그 장편 서사시는 와 이다.
일리아스 라는 극은 BC 1300년경에 일어난 트로이전쟁을 BC 800년경에 문학자인 호메로스가 극작으로 남기게 되어 그 당시의 그리스와 트로이(터키 북서쪽) 도시국가 간의 전쟁을 극으로 저작하여 당시의 그리스가 전쟁에 승리한 역사를 우리에게 남겼다.

이극의 내용은 그리스왕과 영웅과의 사이에 아름다운 노예 미인을 놓고 다투는 사건으로 결국 영웅은 전쟁에서 물려나지만 마지막에는 다시 전쟁에 참여하여 트로이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오디세이 라는 극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서 그의 계책인 큰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터키)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귀환하던 중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었다.
그리스는 호메로스의 뒤를 이어 서양에서 처음으로 라는 책을 편찬하여 역사가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헤로도토스이며 그리스의 역사가이며 서양의 최초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역사책으로 서양의 역사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그 책이 바로 이다.
헤로도토스의 위대한 작품인 역사 라는 책의 주 내용은 BC 492년경~BC 448년경까지의 페르시아가 제국이 된 것과 그리고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2차례의 전쟁의 원인과 과정과 그리고 그리스의 어려운 역경에서도 내나라는 내가 지켜야 한다고 하여 합심하고 단결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 사실의 실록의 역사를 적어 그 당시의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게 하여 그리스가 전쟁에 승리한 역사를 기억하도록 하였다.

헤로도토스는 그 당시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역사 라는 책을 남겼다.
그는 그리스의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서양의 역사 라는 것을 남겼다.
헤로도토스의 서양의 최초의 역사책은 그가 살아있을 때 BC 425년경 이전의 역사를 저술 하였다.
헤로도토스의 이 역사책은 중국의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BC 91년에 완성한 것보다 약 300년 이전에 지었다. 그 당시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 할 때 헤로도토스의 역사 라는 책은 그리스에게 또 서양의 역사에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 BC 490년경에 마라톤의 역사에 대하여
41대 음차단군 때에 서양의 그리스에서 BC 490년경에 마라톤의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마라톤의 시작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스란 나라에는 아주 훌륭한 문화와 역사를 많이 남겼다. 그 후 역사는 로마로 넘어갔다.
우리는 좋은 역사 좋은 문화는 또 훌륭한 얼은 배워야 한다.

마라톤의 시작은 BC 490년경에 이루어진 역사에서부터입니다.
페르시아(이란)는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통일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는 전 세계를 차지하고 싶었다. 이에 바다 건너에 있는 그리스를 차지하려고 하였다.
페르시아왕은 그리스 아테네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은 자기 나라를 지키기로 다짐하고 싸우기로 하였다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절반도 않되는 군사로 자기 땅인 그리스의 마라톤 광야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한 병사(필리피데스)가 승리소식을 전하기 위해 약 40km나 되는 아테네까지 쉬지도 않고 달려가 승전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이 승리소식을 전하고는 그 병사는 이내 숨을 거두었다.
오늘날 올림픽 경기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은 바로 그리스의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의 승전소식을 전하고 죽은 이 병사를 높이 받들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 42대 을우지(乙于支)단군 시대에 업적 < BC 471년~BC 462년 >
■ BC 470년에 소크라테스가 태어났으며 천리경(天理經)을 저술하는 등의 역사가 있다.

□ 단군세기에서 을우지단군 재위 3년에 소크라테스가 탄생한 역사가 있다.
庚午元年(경오원년): 경오년이며 재위 원년에 즉 BC 471년에 재위를 시작하였다.
세계역사는 을우지(乙于支)단군 재위 3년경에 그리스의 지자인 소크라테스는 BC 469년경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는 BC 399년에 억울한 재판으로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즉 공자가 태어난 후 약 82년 지나서 소크라테스는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의 지자이며 현인 이였다.
그의 제자 풀라톤이 탈옥을 하라고 하였으나 탈옥하지 않고 결국 71세의 나이로 억울한 재판으로 독약을 마시고 죽게 되었다.
공자가 태어난 BC 551년의 동양의 역사에는 역경, 서경, 시경, 예기, 악기, 춘추 등을 편찬하였다. 그 후 약 82년 후에 그리스에서 BC 469년경에 태어난 소크라테스 시대의 역사는 나 자신을 알아라. 것 등으로 철학이 나왔다.
그러므로 동양의 역사는 서양의 역사보다 더 훌륭한 사서삼경이 나왔으며 더 유구하며 더 깊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 42대 을우지(乙于支)단군 때 천리경(天理經)에 대하여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기록이 없으나 단기고사(檀奇古史)에 기록한 것을 올리옵니다.
을우지단군 재위 첫 해에 맏아들 물리(勿理)를 태자로 삼았다. 이해에 정(鄭)나라 사절이 왔다.
3년인 BC 469년에 철인(哲人) 이일선(李一善)이 천리경(天理經)을 저술하여 단군(임금)께 받쳤다.
5년 BC 467년에에 백호돈(白好敦)이 지리학(地理學)과 광물학(鑛物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치고 아뢰기를 우리나라 안에 가는 곳마다 지하에 황금이 있습니다. 하였다.


➜ 43대 물리(勿理)단군 시대에 업적 < BC 461년~BC 426년 >
■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 위대한 아카데미 즉 대학을 세운 등의 인물의 역사가 있다.

□ 43대 물리단군 때 주요인물은 다음과 같다.
■ 플라톤: BC 427년 5월에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BC 347년에 펜을 손에 쥔 채로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동안 혼인(결혼)을 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를 떠난 지 12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국력이 쇠약해진 것을 한탄하여 젊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고 숲 속의 땅을 사서 아카데메이아를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의 대학과 같다.
아카데메이아에 들어온 학생은 수업료를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것은 많은 재력가들이 플라톤의 교육사업을 도왔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주로 학생들과 서로 대화를 통하여 모르는 것을 배우고 깨닫게 했다.
그중에 아리스토텔레스는 18세 때 그리스에 유학하여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하여 플라톤의 수제자가 되었다.
플라톤 그는 평생 혼인(결혼)도 하지 않고 학문연구와 글 쓰는 일과 학생을 가르치는 데에만 전념했다.
BC 347년에 글을 쓰다가 펜을 쥔 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44세 때 국가론(훌륭한 철학자가 왕이 되어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편찬 했다. 그 외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트 향연 등이 있다.
즉 역사는 소크라테스 - 풀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이며 그 후 역사로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의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맞이하여 대왕이 갖추어야할 지식을 배웠다.


➜ 44대 단군이신 구물(丘勿)단군 시대에 업적 < BC 425년~BC 397년 >
■ 국호를 대부여(大夫餘) 즉 진조선(辰朝鮮)으로 고침. 장당경[藏唐京: 고구려의 도읍지인 졸본성(신의주 북쪽) 북동쪽의 위치인 국내성 부근]으로 수도를 옮김. 영고(迎鼓) 즉 삼신을 섬기는 삼신영고(三神迎鼓) 구서(九誓) 등의 역사가 있다.

丙辰元年三月(병진원년삼월): 병진년이며 원년에 즉 BC 425년 3월에 재위를 시작하였으며 이때는 중국의 춘추시대이다. 즉 주(周)나라 29대 고왕(考王: BC 440년~BC 425년)과 30대 위열왕(威烈王: BC 425년~BC 402년) 때이다.
중국의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주(周)나라 13대 평왕(平王)인 BC 770년부터 시작하여 30대 위열왕(威烈王) 때인 BC 403년까지의 전란시대를 말한다.
大水沒都城 賊大亂(대수몰도성 적대란): 이때에 큰물이 도성을 휩쓸어 버리니 도적의 무리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丘勿率兵一萬往討之(구물솔병일만왕토지): 구물단제께서는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들을 정벌하니
賊不戰自潰(적불전자궤): 도적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저절로 괴멸하니
遂斬于和沖(수참우화충): 장당경(藏唐京)을 점령한 구물단군은 마침내 우화충(于和沖)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도성을 송화강의 백악(白岳)으로부터 장당경으로 옮겼다.
즉 장당경은 고구려의 도읍지인 졸본성(신의주 북쪽) 북동쪽의 위치인 국내성 부근을 말한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에서 말하면 5경 중에서 중경인 현덕부의 위치를 말한다.
於是丘勿爲諸將所推(어시구물위제장소추): 이에 구물단제는 여러 장수들의 추앙을 받는바 되어
乃於三月十六日(내어삼월십육일): 마침내 재위 원년인 BC 425년 3월 16일에
築壇祭天遂卽位于藏唐京(축단제천수즉위우장당경):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곧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改國號爲大夫餘(개국호위대부여): 이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고 고치고
改三韓爲三朝鮮(개삼한위삼조선): 삼한(三韓)은 삼조선(三朝鮮)이라고 바꿔 불렀다.
즉 진조선(辰朝鮮)을 대부여(大夫餘)라 하고 옛 백악산에 있는 단군조선은 그대로 진한(辰韓)으로 하였다.
삼한을 진조선(辰朝鮮)=진한조선. 번한조선=번조선(番朝鮮) 마한조선=막조선(莫朝鮮)으로 하여 삼조선(三朝鮮)이라고 하였다.
自是三朝鮮雖奉檀君(자시삼조선수봉단군): 이때부터 삼조선은 단군을 받들어 모시게 되었으며
爲一尊臨理之制(위일존임리지제): 통치는 한 분에 의해 통제를 받게 되었다.
而惟和戰之權不在一尊也(이유화전지권부재일존야): 그러나 전쟁의 권한에 있어서는 애오라지(마음이 부족하나마 즉 넉넉하지는 못하나마) 한 분에게만 맡겨 두지는 않았다.
七月命改築海城爲平壤(칠월명개축해성위평양): 재위 원년인 BC 425년 7월에 명령하여 해성(海城)을 개축하도록 하여 평양(平壤)이라 부르도록 하였다.
즉 지금의 개원(開原)을 말한다.

발해고(유득공의 저서)에서 발해시대에는 중경의 현덕부에 평양이 있으며 곧 평양성이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지금의 평안남도에 있는 평양이 아니다.)
사마천 사기 중 송미자세가에서 이곳에 옛날 은나라 말기에 나라가 망하자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으나 조선에서는 그를 신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고 한 곳이 바로 이곳의 땅이다.

□ 영고(迎鼓) 즉 삼신영고(三神迎鼓)의 역사에 대하여
단군조선 44대 구물(丘勿)단군 때 대부여(大夫餘)와 영고(迎鼓) 즉 삼신영고(三神迎鼓)의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고(迎鼓)=삼신영고(三神迎鼓)란?
영고(迎鼓)란 즉 삼신영고(三神迎鼓)란 하늘의 삼신의 큰 가르침과 삼신을 섬기는 제사를 말한다.
단군조선에서 대부여(大夫餘)로 나라 이름을 즉 국호를 대부여로 고쳐 부르기를 44대 구물(丘勿)단군께서 병진년(丙辰年)이며 원년에 즉 BC 425년 3월에 재위를 시작하였으며 이때에 단군조선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쳐서 부르게 하였다.
BC 425년 이때는 중국의 춘추시대이다. 즉 주(周)나라 29대 고왕(考王: BC 440년~BC 425년)과 30대 위열왕(威烈王: BC 425년~BC 402년) 때이다.
중국의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주(周)나라 13대 평왕(平王)인 BC 770년부터 시작하여 30대 위열왕(威烈王) 때인 BC 403년까지의 전란(戰亂)시대를 말한다.

44대 구물단군께서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고 그 다음해인 BC 424년에 삼신영고(三神迎鼓) 즉 영고(迎鼓)를 시작하였다.
즉 이 삼신영고가 시작할 때의 나라는 단군조선의 44대 구물(丘勿)단군 시대이며 부여(夫餘) 라는 나라의 이름은 그때는 없었고 44대 단군시대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 라고 하였으며 그 후 47대 단군시대를 지나서 북부여라는 나라를 해모수가 나타나서 세웠다.
즉 44대 단군을 지나서 마지막 47대 단군 이후에 부여(夫餘)의 시조 해모수(解慕潄)가 부여 나라를 일으켰다. 즉 북부여(北夫餘) 라는 나라를 일으켰다.

즉 부여의 영고(迎鼓)란 말은 역사를 정확히 모르는 소치로 잘못 말하고 있다.
역사에서 정확히 말한다면 부여가 아니라 대부여(大夫餘)의 영고(迎鼓) 라고 하여야 한다.
부여(夫餘)나라는 그때는 없었으며 단군조선의 44대 구물(丘勿)단군 즉위 원년에 단군조선에서 국호를 개명하여 대부여로 하였던 시대이다.
부여(夫餘)라는 나라는 44대 구물단군이 삼신영고로 즉 영고로 하늘에 제사를 BC 424년에 시작한 후 185년이 지나서 부여(夫餘)라는 나라가 부여의 시조 해모수(解慕潄)가 부여=북부여를 BC 239년에 건국하였다.

그러므로 영고(迎鼓)에 대하여 정확히 말한다면
44대 구물단군 정사년(丁巳年)이며 재위 2년에 즉 BC 424년에 예관(禮官)이 청하여 삼신영고(三神迎鼓)의 제사를 지냈다. 즉 영고(迎鼓)라는 의식인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지냈다. 라고 단군세기(檀君世紀)의 역사서에서 기록하고 있다.
곧 정확히 말한다면 44대 구물(丘勿)단군시대에 대부여에서 영고(迎鼓)=삼신영고(三伸迎鼓)의 제사를 지냈다. 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역사서를 정확히 알고 난 후 다시 재정립하여 바로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분의 참 지혜를 기다립니다.

역사를 정확히 알면은 동서남북의 이해관계가 풀리게 되어있다.
세상만사의 사건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여(大夫餘: 단군조선의 44대 구물단군 때 국호를 대부여로 고침)의 영고제도로 이는 삼신의 큰 가르침과 삼신을 섬기는 제사를 지내는 것을 영고(迎鼓)라고 했다.

즉 우리나라의 요천(繞天: 하늘을 극진히 섬김 즉 하늘의 삼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에는
대부여=단군조선=진조선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마한의 소도(蘇塗: 단군조선 11대 도해단군 때 시작함) 고구려의 동맹(東盟) 신라의 화랑(花郞)과 같은 큰 교훈과 하늘의 삼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민족종교와 즉 민족신앙과 같은 삼신을 섬기는 제사의식 등을 말함이다.

□ 구서(九誓)의 역사에 대하여
44대 구물(丘勿)단군 때 대부여(大夫餘)와 삼한(三韓) 삼조선(三朝鮮) 구서(九誓)의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구물단군 즉위 다음해인 BC 424년 3월 16일이었는데 단제(임금)께서 친히 행차하시어 경배하시니
첫 번째 절하며 3번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째 절에 6번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째 절에 9번 머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그리고 무리를 거느리고는 특별히 10번 머리를 조아렸다.
이를 삼육대례(三六大禮) 라고 한다.
임신년(壬申年)이며 재위 17년에 즉 BC 409년에 감찰관을 각 주와 군에 파견하여 백성들을 살펴보아 효도를 잘하는 자와 청렴결백한 백성과 관리를 천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44대 구물(丘勿)단제(임금)께서 즉 단군께서 9가지를 맹세하면서 말씀하신 구서(九誓)가 있다.
이 말은 즉 선업(善業)을 권하고 과실(過失)을 바로잡아 주어 올바름의 도리(道理)를 밝혀 주신 국가관이 있는 고귀한 교훈이며 우리나라의 훌륭한 역사서(歷史書)입니다.

■ 구서(九誓)를 요약(要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勉爾孝于家(면이효우가): 너희들은 집에서는 효도함에 힘쓰라.
2. 勉爾友于兄弟(면이우우형제): 너희들 형제엔 우애 있기를 힘쓰라.
3. 勉爾信于師友(면이신우사우): 너희들은 스승과 벗에 있어서는 믿음이 있기를 힘쓰라.
4. 勉爾忠于國(면이충우국): 너희들은 나라에 충성하기를 힘쓰라.
5. 勉爾遜于群一云卑下(면이손우군일운비하): 너희들은 뭇사람에게 겸손하기를 힘쓰라.
6. 勉爾明知于政事(면이명지우정사): 너희들은 일을 바르게 함에 있어 밝게 아는 것에 힘쓰라.
7. 勉爾勇于戰陣(면이용우전진): 너희들은 싸움터에서는 용맹할 것을 힘쓰라.
8. 勉爾廉于身行(면이렴우신행): 너희들은 행동함에 있어서는 청렴하기를 힘쓰라.
9. 勉爾義于職業(면이의우직업): 너희들은 직업에 있어선 의로움에 힘쓰라.

그리고 현재 국사책에 기록하고 있는 삼한의 역사도 다시 밝혀 바로 세워야 한다.
역사를 아는 자 그대가 바로 애국자이며 애향애족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자이다.
역사만이 방책을 세울 수가 있다.

아아 역사의 위대함이여 ........
아아 위대한 홍익역사를 만들어 주신 단군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아 위대한 역사를 연구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45대 여루(余婁)단군 시대에 업적 < BC 396년~BC 342년 >
■ 요서(遼西)지방의 성을 찾았다. 등의 역사가 있다. ≪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보면 요서(遼西)요 중국역사에서 보면 요동(遼東)이라고 본다. ≫
■ 세계역사는 여루단군 재위 13년에 그리스의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BC 384년에 태어나서 BC 322년에 운명하였다.
■ 여루단군 25년에 맹자가 BC 372년에 태어났다.

乙酉元年(을유원년): 을유년이며 원년에 즉 BC 396년에 재위를 시작하였으며
이 시대는 중국의 전국시대이다. 즉 전국시대는 BC 402년(주나라 30대 위열왕 재위 말기)부터 시작하여 BC 221년 진시황제(秦始皇帝)까지를 말한다.
築城長嶺狼山(축성장령낭산): 장령의 낭산에 성를 쌓았다.
즉 장령(長嶺)은 만주 길림성 영길현의 동쪽에 있는 산이며 별명이 장광재령(長廣才嶺) 숭령(崇嶺)이며 소백산맥의 한 갈래이다.
세계역사는 여루단군 재위 13년에 그리스의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BC 384년에 태어나서 BC 322년에 운명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이며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의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맞이하여 대왕이 갖추어야할 지식을 배웠다.
辛丑十七年(신축십칠년): 신축년이며 재위 17년에 즉 BC 380년에
燕人侵邊郡守(연인침변군수): 연나라 사람이 변두리의 군을 침범하매
將苗長春擊敗之(장묘장춘격패지): 장수 묘장춘(苗長春)이 이를 쳐부수었다.
이러한 때 여루단군 25년에 맹자가 BC 372년에 태어났다.
丙辰三十二年(병진삼십이년): 병진년이며 재위 32년에 즉 BC 365년에
燕人倍道入寇(연인배도입구): 연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와서
陷遼西逼雲障(함요서핍운장): 요서를 함락시키고 운장에 가까이 왔다.
番朝鮮命(번조선명): 번조선(番朝鮮: 번한조선)에서 명령하여
上將于文言禦之(상장우문언어지): 대장군 우문언(于文言)에게 이를 막도록 하고
眞莫二朝鮮亦派兵來救(진막이조선역파병래구): 진조선(眞朝鮮: 진한조선)과 막조선(莫朝鮮: 마한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어 이를 구원하게 하여 오더니
設伏夾攻破燕齊之兵 於五道河(설복협공파연제지병 어오도하): 복병을 숨겨두고 공격하여 연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五道河)에서 쳐부수고
遼西諸城悉復(요서제성실복): 요서의 여러 성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 제45대 여루(余婁)단군 때에 세계사에서 이 당시에 주요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 맹자(孟子): BC 372년~BC 289년 이름은 가(軻) 자(字)는 자여(子輿)이다. 즉 맹자는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의 문하생에게 배웠다.
■ 장자(莊子)=장주(莊周): BC 369년~BC 289년 중국 고대의 사상가 철학자.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몽읍 근처 출생하였다. 제자백가 중 도가의 대표자이다.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으로 보았음. 맹자와 거의 비슷한 시대인물이다.
초나라 위왕이 그를 재상으로 맞이하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천자문(千字文)에 임공자(任公子)가 큰 낚시를 하였다. 란 말이 나온다. 즉 장자의 저서에 임공자(任公子)란 말은 잡편(雜篇) 중의 외물편(外物編)에서 나오는 글이다. 즉 임공자의 말은 깊은 학문을 많이 배워서 시공을 초월한다면 세상의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며 나아가 유유자적하게 즉 평범한 무위로 살 수가 있다는 뜻이다.
■ 순자(荀子): BC 3세기경 전국시대 말엽의 유가(儒家)이다. 이름은 황(況)이며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대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제창함. 법가적 색채가 있다. 순자(荀子)의 제자에 한비자(韓非子)와 이사(李斯: 진시황제의 재상)가 있다.
■ 굴원(屈原): BC 343년경~BC 277년경이며 초나라의 우국지사이다.
굴원에 대하여 나오는 글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 중에서 24번째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에서 나오며 이는 굴원(屈原)과 가생(賈生)의 이야기이다.
굴원은 BC 343년경~BC 277년경이며 전국시대의 초(楚)나라의 우국지사(憂國之士)이며 시인 이다.
초사(楚辭)라고 하는 운문형식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굴원은 맹자가 BC 372년에 태어나고 약 30년 후에 굴원이 태어났으며 이 시대는 소진(蘇秦)의 합종책(合從策)과 장의(張儀)의 연횡책(連衡策)을 주장하던 전국시대의 사람이다.
굴원(屈原)은 이름이 평(平)이며 즉 굴평(屈平)이며 자(字)가 원(原)이다. 그는 자로 더 잘 알려져 굴원(屈原)이라고 하였다.
굴원은 이소(離騷)를 지었다. 이소(離騷)란 근심스런 일을 만났다는 뜻이다.
즉 왕이 신하의 말을 가려들을 줄을 몰라 거짓 간하고 아첨하는 말이 왕의 총명을 덮어서 그릇됨이 공정함을 해치고 있으며 정직한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이소(離騷)를 지었다. 그리고 회사(懷沙)의 부(賦: 시나 산문의 글을 말함) 등을 지었다.
굴원은 부(賦)를 짓고 마지막에는 돌을 안고 마침내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역사는 굴원이 죽고 난 45년이 지나서 초나라의 유명한 항우(項羽)가 BC 232년에 태어났다.
■ 손빈(孫臏): 출몰(出沒)미상 BC 341년에 제(齊)나라의 병법가 장군 전기(田忌)의 참모가 되어 함께 병법을 배웠던 방연(龐涓)이 이끄는 위(魏)나라 군대를 책략으로 무찔렀다.
손빈은 동문인 방연(龐涓)의 모함으로 누명을 쓰고 두 다리를 절단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손빈(孫臏)은 손무(孫武)의 후손이며 손빈병법(孫臏兵法)으로 그후 삼십육계를 정립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전국시대(BC 402년~BC 221년) 사람이다.
≪ 즉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손자병법 손빈병법, 역경, 각 역사 등을 인용하여 여러사람이 만든 것으로 청나라 때에 만들어 졌다고 말하고 있다. ≫

☞ 방연은 비열한 모략(謀略)으로 자기보다 뛰어난 손빈을 월형(刖刑: 발굼치를 베는 형)과 경형(黥刑: 얼굴에 죄명을 쓰는 형)을 가해서 병신을 만들었다. 때는 BC 341년이다. 그러나 제(齊)나라 사신에게 구출된 손빈은 마침내 위(魏)나라를 대파하고 방연을 자결케 했다.

■ 상앙(商鞅): 출생미상~BC 338년 법가(法家)의 학을 배우고 진(秦)나라 25대 효공(孝公)을 섬겨 부국강병을 위한 변법(變法)을 단행하여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음.
■ 아리스토텔레스: BC 384년~BC 322년이며 그리스의 대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이며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의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맞이하여 대왕이 갖추어야할 지식을 배웠다. [즉 소크라테스 - 풀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한비자(韓非子)=한비(韓非): 출생미상~BC 233년이며 전국시대에 경세가이며 순자의 성악설(性惡說)과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받아들여 법치주의를 주장한 법가의 학설을 대성함. 저서는 한비자(韓非子)가 있다.
BC 233년에 한비(韓非)는 훌륭한 저술을 많이 남겼지만 결국에 이사(李斯: 진시황제의 재상)는 자기의 직위가 위태로움을 느껴 한비를 비방하여 독약을 먹게 하고 한비는 진(秦)나라에서 죽었다.

□ 장자(莊子)의 저서 중에서 임공자(任公子)에 대하여
단군조선 45대 여루(余婁)단군시대에 장자의 저서에 나오는 임공자(任公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자(莊子)=장주(莊周)는 BC 369년~BC 289년 중국 고대의 사상가 철학자이며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몽읍 근처 출생이다.
자(字)는 자휴(子休)이며 스승은 장상공자(長桑公子)이다.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이며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으로 보았다.
맹자(孟子: BC 372년~BC 289년)와 거의 비슷한 시대인물이며 초나라 위왕이 그(장자)를 재상으로 맞이하려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인 즉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가 지배하던 전란과 고통의 시대였다.
현실세계의 끝없는 고통의 함정 속에서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현자(賢者)는 위대한 인물인가 아니면 보잘것없는 존재인가 이에 장자의 시선(視線)은 그때부터 인간 세상에서 자연으로 옮겨져 무궁한 시공(時空)을 향하게 되었다.

장자(莊子)의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다. 생명을 무한의 시간과 공간에 삼투(滲透)시켜 체험하는 철학인 것이다. 장자(莊子)의 학문은 매우 광범위하여 미치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러나 노자(老子)의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장자는 도덕(道德)에 깊은 뿌리를 두고 현묘(玄妙)를 중시하였으며 평범한 무위(無爲)로 스스로의 밝음과 지혜를 밝혔다.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을 껴안고 모든 학식을 포용하였다. 그 속에서 지극한 가르침을 깨달았기 때문에 모든 현상을 초월한 심오한 논리가 가능 하였던 것이다.

전국시대의 초이며 주(周)나라 말엽에 도덕이 극도로 타락(墮落)한 사회상을 보고 심히 개탄(慨歎)하여 저술을 시작하였다.
즉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에 맹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장자(莊子) 그는 삼라만상을 초월하여 즉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은 출세의 길을 걸었지만 장자(莊子)는 평범한 무위(無爲)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살면서 노자(老子)의 취지에 따라 책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가 언급한 것은 순박하고 뜻이 깊어 보잘것없는 무리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천박한 지식으로는 탐구할 수가 없는 성격의 이야기였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유세(遊說)를 하고 다녔지만 장자(莊子)만은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을 하며 노자의 취지(趣旨)에 따라 10만 여자(餘字)의 저술을 남겼다.
즉 자연을 즐기며 평범한 무위(無爲) 즉 아무런 행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사물과 함께하였을 뿐이다.

그의 저술은 대부분이 우언(寓言: 비유적인 우화의 이야기)이다. 즉 논리를 대신하였기 때문에 글로써 비판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저술은 52편이 있다. 내편(內篇) 외편(外篇) 잡편(雜篇)으로 구성되어있다.

임공자(任公子)란 말은 잡편(雜篇) 중의 외물편(外物編)에서 나오는 글이다.
즉 임공자의 말은 시공을 초월한다면 세상의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며 나아가 유유자적 하게 즉 평범한 무위로 살 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공자(孔子)의 제자들을 비판하면서 노자(老子)의 학술을 낱낱이 들어내고 있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당나라 6대 현종(玄宗: 서기 712년~756년) 때에 이르러서야 경서(經書)의 서열에 들게 되었다. 이때 남화선인(南華仙人: 백성을 편안히 다스리는 태평도의 저술자) 이라는 호를 받기도 하였다.

◉ 장자(莊子)의 저서 중 임공자(任公子)의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任公子 爲大鉤巨緇(임공자 위대구거치): 임공자는 굵은 밧줄과 거대한 낚시에
五十犗以爲餌(오십개이위이): 거센 소 50마리를 미끼로 삼아
蹲乎會稽(준호회계): 회계산(會稽山)에 걸터앉아
投竿東海(투간동해): 동해에 긴 낚시대를 던졌다.
旦旦而釣(단단이조): 매일 아침마다 고기를 낚았다.
期年不得魚(기년부득어): 그러나 1년이 지나도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
已而大魚食之(이이대어식지): 드디어 큰 고기가 물었다.
牽巨鉤錎沒而下(견거구함몰이하): 큰 낚시대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騖揚而奮鬐(무양이분기): 뛰어오르면서 등지느러미를 떨치니
白波若山(백파약산): 산더미 같은 흰 물결이 솟아오르면서
海水震蕩(해수진탕): 큰 파도를 내며 바닷물을 쓸어버렸다.
聲侔鬼神(성모귀신): 그것은 귀신의 울부짖는 소리와 같아서
憚赫千里(탄혁천리): 천리나 되는 곳까지 들렸다.
任公子得若魚(임공자득약어): 임공자는 이러한 큰 고기를 잡아서는
離而腊之(리이석지): 썰어서 포를 만들었다.
自制河以東(자제하이동): 제하(制河) 동쪽에서
蒼梧以北(창오이북): 창오(蒼梧)의 북쪽까지에 있는 사람들이
莫不厭若魚者(막불염약어자): 모두 배불리 먹었다.
已而後世輇才諷說之徒(이이후세전재풍설지도): 뒤에 세상에 소문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皆驚而相告也(개경이상고야): 모두 놀라며 이러한 이야기를 알렸다.
夫揭竿累(부게간루): 손으로 들고 잡는 작은 낚시대로
趣灌瀆(취관독): 냇물이나 도랑에 가서
守鯢鮒(수예부): 잔고기나 붕어를 잡는 사람으로서는
其於得大魚難矣(기어득대어난의): 이러한 큰 고기를 잡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飾小說以干縣令(식소설이간현령):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를 꾸며서 현령의 자리를 구한다 해도
其於大達亦遠矣(기어대달역원의): 크게 출세나 큰일을 하는 데는 거리가 먼 것이다.
是以未嘗聞任氏之風俗(시이미상문임씨지풍속):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은 출세의 길을 걸었지만 임공자는 평범한 무위(無爲)로 유유자적하게 살았다는 즉 시공(時空)을 초월 하여 살았다는 그러한 인물이라는 풍물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其不可與經於世亦遠矣(기불가여경어세역원의): 세상을 크게 경영하지 못하며 또한 대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것이다.
곧 장자(莊子)가 말하는 바는 임공자(任公子)의 이야기는 대지식이나 대지혜를 알게되면 만물과 같이 움직일 수 있고 걸림이 없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수가 있으며 나아가 유유자적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대업(大業)이며 천업(天業)이며 덕업(德業)이라는 것이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 46대 단군이신 보을(普乙)단군 시대에 업적
■ 번한조선 왕이 시해를 당한 등의 역사가 있다.
≪ 세계역사는 그리스를 점령한 필립포스 왕이 암살당하자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BC 336년에 20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

庚辰元年十二月(경진원년십이월): 경진년이며 재위 원년 12월에 즉 BC 341년 12월에
番朝鮮王解仁(번조선왕해인): 번한조선의 왕 해인(解仁)이
爲燕所遣刺客所害(위연소견자객소해): 연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당하니
五加爭立(오가쟁립): 오가가 다투어 일어났다.
戊戌十九年正月(무술십구년정월): 무술년이며 재위 19년 정월에 즉 BC 323년 정월에
邑借箕詡以兵入宮(읍차기후이병입궁): 읍차 기후(奇詡=箕詡)가 병력을 이끌고 입궁하여
自以番朝鮮王(자이번조선왕): 자칭하여 번조선왕이라 하고
遣人請允(견인청윤): 사람을 보내 윤허를 구하매
帝許之使堅備燕(제허지사견비연): 단제께서는 이를 허락하시고 굳게 연나라에 대비토록 하였다.
辱帝崩無嗣(욕제붕무사): 46대 보을단제께서 BC 296년에 붕어하였는데 수치스럽게 후사가 없으매
高列加以檀君勿理之玄孫(고열가이단군물리지현손): 고열가(高列加)가 43대 물리 단군의 현손으로서
爲衆愛載(위중애재): 무리의 사랑으로 추대 받게 되었으며
且有功遂卽位(차유공수즉위): 또 공도 있었던지라 마침내 47대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즉 BC 336년에 알렉산더 대왕은 20살의 나이에 왕이 되었다. 이때의 역사는 우리나라는 BC 336년은 46대 단군이신 보을(普乙)단군 재위 6년이다.
46대 보을단제(단군=임금)께서 재위 46년 BC 296년에 붕어하였는데 수치스럽게 후사가 없으매 고열가(高列加)가 43대 물리(勿理)단군의 현손으로서 무리의 사랑으로 추대 받게 되었으며 또 공도 있었던지라 마침내 47대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이러한 역사가 단군조선사인 단군세기에 기록 보존하고 있다.

☐ 제46대 보을(普乙)단군 때에 세계역사에서 이 당시에 주요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 알렉산더대왕: BC 336년~BC 323년 재위함. BC 336년에 20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역사는 기록하기를 BC 1300년경에 트로이 전쟁에 승리한 그리스는 그 후 약 800년이 흘러서 페르시아전쟁(BC 492년~BC 448년까지 2차례의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여 즉 페르시아(이란) 전쟁 이후 세력이 커진 그리스는 서로 권력다툼으로 그리스의 자국의 나라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으로 그리스의 북쪽에 있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의 아버지인 필립포스에게 BC 338년경에 넘어갔다.
■ 소진(蘇秦): 출생미상~BC 317년 합종술(合從術)로 연(燕) 조(趙) 한(韓) 위(魏) 초(楚) 제(齊)나라 6국을 합종책(合從策)으로서 진(秦)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여 BC 333년에 6국의 재상이 됨. 제(齊)나라 귀곡선생(鬼谷先生)의 제자이다.
동주(東周) 낙양(洛陽) 사람이다. 조(趙)나라에 등용되어 합종책을 폈으나 제나라에서 거열형(車裂刑)으로 죽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재주가 있다고 본 그는 장의(張儀)를 격분시켜 진(秦)나라에 보내어 진나라의 재상이 되게 하였다.
■ 장의(張儀): 출생미상~BC 309년 종횡술(從橫術) 연횡책(連衡策)을 주장함. 위(魏)나라 사람.
진(秦)나라 26대 혜왕(惠王)의 신하가 되고 6국을 설득하여 진(秦)나라를 섬기게 함으로써 소진(蘇秦)의 합종책을 파하게 하고 연횡책을 받아들여 천하통일에 큰 전략을 폈음.
귀곡선생(鬼谷先生)의 제자이다. BC 328년에 연횡책(連衡策)을 주창하면서 진(秦)의 재상이 됨. 위(魏)나라 사람이다. 그 후 역사가 207년이 지나서 진시황제가 BC 221년에 천하통일을 하였다.

□ 알렉산더 대왕과 헬레니즘 문화의 역사는 BC 336년에 일어났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의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BC 384년~BC 322년)를 스승으로 맞이하여 대왕이 갖추어야 할 지식을 배웠다.
페르시아(이란)전쟁 이후 세력이 커진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서로 권력 다툼을 하였다.
그 틈을 타 그리스 북쪽에 있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점령하여 필립포스가 다스렸다. 필립포스 왕이 암살당하자 아들 알렉산더는 BC 336년에 20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 BC 336년 이때는 제46대 보을(普乙)단군 재위 6년이며 그리고 마지막 단군은 고열가(高列加)단군이며 BC 295년에 재위 시작함. ≫
그는 BC 334년에는 페르시아(이란)외 이집트와 인더스 강을 넘어 인도까지 동방원정을 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한 곳마다 자신의 이름을 따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웠다.
그 중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무역과 학문의 중심도시로 발전하여 인구 50만 명의 대도시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업적은 동 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를 합쳐 그 속에 그리스 문화를 전파 하므로써 헬레니즘문화를 만들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부터 페르시아(이란) 공주와 혼인(결혼)하였으며 부하들도 페르시아 사람과 혼인(결혼)을 시켰다.
동양의 종교는 원래 불상이 없었으나 그리스의 조각의 영향으로 이때부터 불상이 만들어 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술양식을 간다라미술이라 하며 즉 이를 헬레니즘문화 라는 것을 만들었다.


➜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 시대에 업적 < 재위기간 BC 295년~BC 238년 >
■ 단군왕검의 사당을 백악산에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나라를 주나라가 망하고 난후 10년 후에 진시황제에게 장당경[藏唐京: 고구려의 도읍지인 졸본성(신의주 북쪽) 북동쪽의 위치인 국내성 부근]으로 도읍을 옮긴 데는 망하고 백악산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북부여를 해모수가 일으키고 나라를 북부여가 이어갔다고 하는 등의 역사가 있다.

己卯十四年(기묘십사년): 기묘년이며 재위 14년에 즉 BC 282년에 ≪ 이때는 주(周)나라 37대 마지막 왕 난왕(赧王) 재위 33년이다. ≫
立檀君王儉廟 于白岳山(입단군왕검묘 우백악산): 단군왕검의 사당을 백악산에 모시고
令有司 四時祭之(영유사 사시제지): 유사에게 명하여 사계절에 제사를 지내게 하고
帝歲一親祭(제세일친제): 단제께서는 일 년에 한번 친히 제사를 지냈다.
己酉四十四年(기유사십사년): 기유년이며 재위 44년에 즉 BC 252년에
燕遣使賀正(연견사하정):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새해 인사를 올렸다.
癸丑四十八年十月朔 日蝕(계축사십팔년십월삭 일식): 계축년이며 재위 48년 10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즉 BC 248년에 일식이 일어났다.
是勢冬 北漠酋 阿里當夫(시세동 북막추 아리당부): 이해 겨울 북막(北漠)의 추장 아리당부가
請出師伐燕(청출사벌연): 군사를 내어 연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했으나
帝不從(제부종): 단제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自是怨不朝貢(자시원부조공): 이로 말미암아 원망하며 조공을 받치지 않았다.
壬戌五十七年四月八日(임술오십칠년사월팔일): 임술년 4월 8일이며 고열가 단제 재위 57년 4월 8일에 즉 BC 239년 4월 8일에 진시황제에게 멸망하고 백악산 아사달로 망명했다.
곧 고열가단군은 북부여를 일으킨 해모수에게 BC 239년에 넘어갔다.
이때는 진시황제(秦始皇帝)인 정(政)이 즉위(BC 247년에 즉위함)한지 8년이다.
즉 주나라는 BC 249년에 진(秦)나라에 멸망하였다. 그 후 2년 후에 BC 247년에 진나라 영정(嬴政)이 진나라 31대로 즉위하여 BC 221년에 천하통일을 하여 진시황제가 되었다.
즉 주나라가 BC 249년에 멸망한 후 10년이 지나서 단군조선도 수도를 장당경에 옮긴 이곳은 진(秦)나라에 멸망하였다. 이때 고열가단군은 백악산 아사달로 망명했다.
解慕潄降 于熊心山(해모수강 우웅심산):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起兵 其先槀離國人也(기병 기선고리국인야): 군대를 일으켜 단군조선 즉 44대 구물(丘勿)단군 때에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고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로 고친 단군조선의 즉 대부여(大夫餘)인 진조선(眞朝鮮)은 진(秦)나라에 멸하고 단군조선의 옛 도읍지인 백악산이며 송화강의 아사달에 있는 진한(辰韓)의 뒤를 이어 북부여(北夫餘)를 열었다.
해모수의 선조는 고리국(槀離國)사람 이었다. 즉 해모수가 북부여를 일으켰다.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는 고리국왕(藁離國王) 고진(高辰)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며 옥저후(沃沮侯) 불리지(弗離支)는 고진(高辰)의 손자로서 모두 도적을 토벌한 공이 많아 봉함을 얻은 것이다. ≪ 역사는 고진의 손자인 불리지는 유화와 만나 고주몽을 졸본(卒本: 신의주 북쪽)에서 BC 79년 5월 5일에 탄생하였다. 이것이 진정 고주몽의 탄생 역사다. ≫

우리나라에 설날과 추석과 개천절과 한글 등이 있는 이상은 어떠한 나라라도 우리나라를 영구히 지배를 못한다.
곧 인생 삶에 우리의 한(桓)얼=환얼이 즉 한국(桓國=韓國)의 정신이 유구(悠久)하게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렸던 이러한 위대한 문화와 역사를 우리가 살려야 한다.

□ 단군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역사와 북부여를 일으킨 해모수 역사
단군조선의 마지막 고열가(高列加)단군께서는 장당경[藏唐京: 고구려의 도읍지인 졸본성(신의주 북쪽) 북동쪽의 위치인 국내성 부근]에서 BC 239년에 진시황제에게 망하고 백악산(白岳山)으로 망명하였으나 북부여(北夫餘)가 일어난 그 다음해인 계해년(癸亥年)이며 BC 238년에 마침내 왕위를 버리고 단군조선의 삼한인 진한(辰韓) 번한(番韓) 마한(馬韓) 중에서 진한(辰韓)의 아사달(阿斯達)에 있는 백악산(白岳山)에 들어가셨다. 즉 신선이 되었다. 이 말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단군은 목숨을 다하여 막을 내렸다.

다시 말하면 단군조선의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 대부여(大夫餘)로 고친 삼한(三韓) 즉 삼조선(三朝鮮) 중 장당경에 도읍을 한 대부여(단군조선)는 오가(五加)와 함께 진시황제 정(政)에게 멸망하였다. 즉 중국 진(秦)나라에 멸망하였다.
BC 238년 이때는 진(秦)나라 진시황제인 영정(嬴政: 성은 영이며 이름은 정이다)이 즉위한지 9년이다.

결국 44대 구물(丘勿)단군이 나라를 대부여(大夫餘)로 고치고 도읍을 송화강(松花江)의 아사달(阿斯達)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고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로 개명하고 대부여 중 즉 삼한 진한(辰韓) 번한(番韓) 마한(馬韓) 중 진한인 진조선(眞朝鮮)은 44대 구물단군을 이어 45대 여루(余婁)단군 46대 보을(普乙)단군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즉 송화강에서 장당경으로 옮기고 대부여로 개명한 단군조선은 멸망하고 마지막 단군은 삼한 중 진한 즉 송화강에 있는 아사달로 다시 들어갔으며 곧 진한조선(辰韓朝鮮)으로 옮겼으나 그 후 북부여 시조 해모수에게 넘어갔다.
이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사는 BC 2333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을 시조로 하여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으로 BC 238년까지로 총재위기간은 2,096년간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군조선 즉 진한(辰韓)의 옛 도읍지인 송화강과 백악산의 아사달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解慕潄)가 단군조선의 역사를 이어갔다.
이후 해모수의 북부여 역사는 총 6대를 지나서 고구려가 이어가는 역사가 우리나라의 역사다.


▣ 이집트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
■ 이집트역사에서 BC 3500년에 시간과 달력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시대가 바로 5대 한웅(환웅)시대에 복희씨(伏羲氏)가 활약하던 시대이다.
■ BC 3200년에 이집트에서 문자를 사용하던 시대가 바로 8대 한웅시대에 염제신농씨가 활약하던 시대이다.
■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건설된 BC 2650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제14대 자오지(慈烏支)한웅(환웅)=치우(蚩尤)천왕시대이며 재위는 BC 2707년~BC 2598년이며 재위기간은 109년간 하였다. 신시(백악산)에서 청구국(지금의 중국 산동반도)으로 도읍을 옮겼다. 청구국(靑邱國)은 14대 치우천왕시대인 한웅(환웅)시대의 국호였다.
이러한 치우천왕시대가 바로 중국에서 사마천이 사기에서 말하고 있는 처음으로 중국의 역사가 시작되는 황제헌원 시대이다.
곧 이러한 이집트의 위대한 역사가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도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곧 역사의 위대함은 수 천년 수 만년의 역사도 밝혀내는 데 있다.
진실의 역사는 불태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럴수록 더 진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역사다.
아아 이제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찾아내고 밝히고 연구하여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관건(關鍵: 문을 여는 열쇠다. 곧 문을 여는 핵심이다)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단군의 위대한 홍익역사는 소련과 대련의 3년상의 역사와 하나라 은나라 멸망, 제사의 참뜻, 소도(蘇塗) 일본서기가 36대 매륵단군 때에 도용했는 것과 주나라가 진시황제의 아버지 진나라 장양왕에게 멸망 후 10년 후에 마지막 47대 단군이 일부가 진(秦)나라 진시황제에게 멸망한 것 등을 기록하고 있는 위대한 단군의 역사는 세계역사를 통하여 위대한 단군역사 이전인 한웅국(桓雄國)=환웅국 즉 배달국(倍達國)=신시국(神市國)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곧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보면 한인(환인)-한웅(환웅)-단군-북부여-고구려의 역사가 이어가고 있다.
여러분의 지식과 슬기를 기대합니다. 지식과 슬기가 있을 때 즉 역사를 알 때 용기도 도전도 나온다고 봅니다.

우리농사 우리가 지어보세.


▣ 제47대 마지막 고열가(高列加: BC 295년~BC 238년)단군 때와 그 이후에 세계역사에서 주요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 여불위(呂不韋): 출생미상~BC 235년 대무역 상인이며 BC 249년에 진(秦)나라 재상이 됨.
BC 256년에 서주가 멸망하고 BC 249년에는 동주의 왕조도 멸망하여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곧 BC 249년 이때 진(秦)나라 30대 장양왕(莊襄王) 1년에 동주를 멸하고 주(周)나라는 서주(西周)와 동주(東周)가 망하였다.
식객들에게 제학설(諸學說)을 집대성케 하여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함.
■ 정(政)=영정(嬴政)=시황제(始皇帝)=진시황제(秦始皇帝): BC 259년~BC 210년 진시황(秦始皇) 또는 시황제(始皇帝) 곧 진시황제(秦始皇帝)이다.
진(秦)나라는 주나라를 BC 249년(진나라 장양왕 1년)에 멸하고 2년 후인 BC 247년에 영정은 진나라에 즉위하여 중국을 BC 221년에 천하를 통일하였다.
■ 이사(李斯): 년도미상~BC 208년에 순자(荀子)에게 배우고 시황제의 승상으로서 법치주의에 의한 통일정치를 강행했음.
BC 214년에 이사(李斯)가 진(秦)나라 재상이 됨.
후에 환관 조고(趙高)의 모함으로 2세 황제 호해(胡亥)에 의하여 처형됨.
이사(李斯) 죽음은 BC 208년에 환관인 조고(趙高)가 이사(李斯)를 살해함.
■ 호해(胡亥): BC 210년에 천하를 순시 중 시황제 병사함. 진시황의 둘째 아들 호해가 조고(趙高) 이사(李斯) 등의 모사(謀事)로 첫째 아들 부소(扶蘇를 제외시키고 둘째 아들 호해(胡亥)를 임금으로 앉힘.
■ 진승(陳勝): 출생미상~BC 208년 진(秦)나라 말의 농민 반란의 지도자. 자(字)는 섭(涉)이다.
진(秦)나라의 2세 황제 1년(BC 209년)에 오광(吳廣)과 함께 만리장성 축성하는 노역에 차출되었으나 가는 도중에 장마로 도저히 목적지에 닿을 수 없게 되자 당시의 법이 너무 혹독하여 목이 달아날 터였다. 이에 반란을 일으켜 BC 209년에 왕이 되었으나 6개월 만에 패하여 죽음.
그러나 그는 진(秦)나라 일족을 멸망시켰다. 이러한 천하 대사의 발단은 자(字)가 진섭(陳涉)이며 즉 진승(陳勝)으로부터 란(亂)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사마천은 진섭세가(陳涉世家)를 사기(史記)에 올렸다.
■ 조고(趙高) 죽음: BC 207년에 환관인 조고가 제2세 황제 호해를 죽이고 진시황의 첫째아들인 부소(扶蘇)의 아들 자영(子嬰)을 3세 황제에 앉혔으나 도리어 자영에게 살해됨.
■ 유방(劉邦): BC 247년~BC 195년이며 한(漢)왕조 창업함. 즉 BC 206년 진(秦)나라 수도 함양을 함락함. 이때 항우가 서초패왕이 되어 유방을 한왕으로 봉하고 BC 202년에 항우를 물리치고 한왕에서 황제자리에 오름.
BC 206년에 진(秦)나라의 수도 함양을 멸하고 즉 마지막 3세 황제인 영자영(瀛子嬰)을 항우가 죽였고 서초패왕이 되었으나 그 후 유방이 서초(西楚)의 패왕이 됨.
자(字)는 유계(劉季) 자 보다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BC 202년에 유방(劉邦)이 한고조(漢高祖)로 황제자리에 오름.
유방은 패현 풍읍 산골 마을 중양리(中陽里)에서 태어났다. 강소성(강소성 패현 - 상하이 북서쪽: 구글지도 검색)의 북부 서주의 북서쪽에 지금도 패현(沛縣)이란 곳이 있다. 진나라 시대에 이 패현은 사수군(泗水郡)에 속해 있었다.
■ 여태후(呂太后)=여후(呂后)=여황후(呂皇后)=고황후(高皇后): 출생미상~BC 180년이며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부인(夫人)이며 조강지처(糟糠之妻)이며 황후(皇后)이다. 한고조가 죽은 후 권력을 쥐고 휘둘러 여씨의 란(亂)의 원인이 됨. 집정 8년 만에 병으로 죽음.
이름은 치(雉)이며 자는 아후(娥姁)이다. 자식은 1남 1녀이다.
여후(呂后)는 유방의 천하 쟁패(爭覇)에 큰 공헌을 했다.
중국 3대 악녀(惡女)이며 한편으로 탁월한 여장부(女丈夫)였다.
중국의 3대악녀이며 즉 3대여장부로는 한고조의 여태후(呂太后) 당나라의 무측천(武則天)=측천무후(則天武后) 청나라의 서태후(西太后)이며 여태후는 최초의 황태후(皇太后)이다.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劉邦)의 애첩 척희(戚姬) 즉 척부인(戚夫人)을 천천히 놀리다가 죽이면서 원한을 풀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즉 처참한 보복(報服)을 했다. 척부인의 아들을 침독(酖毒)을 마시게 하여 죽였다. 먼저 척부인의 양손과 양다리를 절단했다. 다음에는 눈알을 도려내고 귀를 짤라 귀머거리로 만들었다. 다음에는 약을 먹여서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변소에 놓고 인체(人彘: 사람 돼지)라고 이름 지었다.
여후(呂后) 즉 여태후(呂太后)는 자기 아들 혜제(惠帝: 전한 2대 황제)가 자식을 못 놓자 5명의 가짜 아들을 만들었다.
고후(高后) 즉 여태후(呂太后)는 4대까지는 독재(獨裁)로 다스렸다.
여태후가 죽자 여씨(呂氏) 일족은 멸망했다. 그리고 여씨 일족은 주살되었다.
한(漢)나라는 결국 유방(劉邦)의 4째 아들인 유항(劉恒: 생모는 박씨)이 보위에 오름.
이가 5대 황제인 문제(文帝)이다.
그 후에 7대 무제[武帝: 이름 유철(劉徹)] 때에 여태후(呂太后)의 고황후(高皇后) 칭호를 박탈하고 5대 문제(文帝)의 생모 박씨(薄氏)를 유방(劉邦)의 정실(正室)부인으로 하여 고황후(高皇后)로 추증(追贈)함.
■ 항량(項梁): 출생미상~BC 208년 항우(項羽)의 숙부이며 진(秦)나라 말의 초나라 장군이다.
■ 노관(盧綰): BC 247년~BC 194년 한나라 유방(劉邦)을 도운 장군이다.
한(漢)나라 고조(유방)와 동향인 노관은 고조가 패(沛)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함께 종군하여 장군이 됨. 그 후 장안후(長安侯)가 되었다가 고조가 연나라를 점령한 후 연왕(燕王)이 되었다.
한고조 유방(劉邦)과 노관은 같은 고향에서 같은 날에 태어났다. 한신(韓信)이 죽는 것을 보고 흉노로 도망하였으나 1년 후에 죽었다.
■ 한니발: BC 247년~BC 183년이며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영웅이다.
카르타고와 로마는 BC 264년에 지중해의 지배권을 놓고 싸움을 시작함. 이것이 제3차에 걸쳐 일어난 포에니전쟁이다.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시칠리아 섬을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한니발은 이탈리아로 쳐들어가려면 피레네 산맥보다 더 높은 알프스를 넘어야 했다.
한니발은 군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으면서 험준한 알프스를 9일 만에 산 정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오는 길은 더욱 힘들고 어려워서 15일이 걸려서 군사들을 절반을 잃었으나 내려왔다. 이에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은 로마군을 무찌르고 승리했다.
BC 202년 가을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과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 결과는 한니발 군사들이 패배했다. 한니발은 여러 나라를 떠돌다 비티니아(터키 북쪽)에 머물게 되었는데 비티니아 국왕은 위협을 느껴 한니발이 숨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 로마군들이 비티니아에 찾아와서 한니발을 포위하자 미리 준비해 둔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때가 BC 183년이며 64세였다. ≪ 한니발이 운명한 BC 183년은 중국 역사로는 진시황제가 타계한 후 전한 4대 소제홍(少帝弘) 유홍(劉弘)은 여태후가 남의 아들을 태자로 삼음(BC 184년~BC 180년)의 역사가 이루어졌으며 우리나라의 역사로는 북부여(北夫餘)의 시조 해모수를 지나서 제2대 모수리(慕漱離: BC 194년~BC 169년)시대의 역사의 이야기이다. ≫
■ 여불위(呂不韋) 자살: BC 235년에 여불위 자살함.
■ 항우(項羽): BC 232년~BC 202년 초(楚)나라 무장이며 진(秦)나라 말엽의 무장이다.
초(楚)의 명문에서 태어남. 이름은 적(籍) 자(字)는 우(羽) 항우(項羽)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방과 5년간 싸우다가 해하(垓下)에서 패하고 오강(烏江)에서 자살함.
해하(垓下)의 싸움은 BC 202년이며 한 고조가 한신(韓信)에게 명령하여 항우를 포위하고 무찔러 천하의 패권을 잡은 싸움이며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오강(烏江)으로 도망했으나 자살했음.[해하(垓下)는 안휘성(安徽省)에 있음]

◉ 항우의 유명한 말인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산을 뽑을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세상을 덮을 기세. 라고 하는 항우는 BC 202년에 해하(垓下)의 전투에서 유방에게 패하고 자살함.
항우는 초(楚)나라가 망하기 11년 전에 태어났다. 20살에 키가 8척 즉 184cm 이상이 넘었다.
제(齊)나라의 땅을 평정하고 발해(渤海) 지방으로 진출하여 파괴와 살육을 많이 했다.
정도를 잃은 진(秦)나라 마지막 3세 황제 자영(子嬰)이 항복하였으나 그를 죽였음.
초(楚)나라 의제(義帝)를 양자강 상류에서 의제(義帝)를 살해하고 초패왕(楚覇王)이라고 하였음.
항우의 애첩(愛妾)은 우미인(虞美人)이며 애마(愛馬)의 이름은 추(騅)라고 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나오게 되었다.
항우는 동성(東城)에서 죽었으며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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