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과연 그 당시의 배경은 어떠하였나?
박정희대통령이 김영삼을 그 당시 시민당총재직과 의원직을 박탈함으로서 1979년 10월 16일에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이 부마항쟁으로 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인 유신체제이며 곧 제4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부마항쟁이 공수부대 투입으로 1979년 10월 20일에 즉 5일만에 끝나자 6일 후 김재규가 1979년 10월 26일에 박대통령을 시해(弑害: 총으로 사살함)하였다.
그러나 김재규는 정권을 잡지도 못하고 사회혼란만 일으키고는 1979년 10월 27일인 그 다음날 체포되어 5.18사건 기간인 1980년 5월 24일에 심판을 받아 사형을 당하였다.
김재규가 체포되고 2달 후에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을 체포하는 12.12사건이 일어나고 전두환의 새로운 군인집단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다.
전두환은 박대통령이 시해당한 후 무정부의 공백상태와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상태에서 서울에서 학생시위가 일어나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 후 또 광주에서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확산되자 이때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실시하면서 김대중을 포함한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게 되자 전라남도 광주에서 그 다음날 5월 18일에 광주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박대통령이 시해당한 이후 전두환과 야당지도자들의 정권을 잡기 위한 배경이다. 곧 안정된 정부를 수습하기 위한 그 당시의 배경이다.
제목: 1980년 5.18.사건 그 당시 배경.
➜ 헌법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정해져 있다.
➜ 유신헌법(維新憲法)이란 곧 박정희대통령의 재임기간으로 제4공화국을 말하고 있다.
유신헌법(維新憲法)이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제3공화국헌법 일부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비상조치를 선포하였다.
그 뒤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유신헌법안을 의결하여 그해 11월 21일에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확정됨으로써 제4공화국의 유신체제가 출범하게 되었다.
유신체제는 통치체제의 통치능력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기여하였으나 국민의 정치참여 요구를 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역사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만든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그 당시 신민당총제이며 국회의원인 김영삼에게 자격을 박탈하므로 해서 박정희대통령 시해하기 전에 1979년 10월 16일에 부마항쟁이 터지므로 해서 이를 무리하게 공수부대 투입하여 5일만인 10월 20일에 진압을 했으나 이로 인하여 6일 후 1979년 10월 26일에 김재규에 의해 시해 당하므로 해서 장기집권인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1979년 10월 16일에 일어난 부마항쟁에 대하여 위대한 문구를 넣고자한다. 즉 부마항쟁이 아니라 위대한 부마항쟁 이라고 말하고 싶다.
곧 이 위대한 부마항쟁으로 인하여 장기집권인 유신체제는 막을 내리고 민주화의 발걸음을 걷게 만든 시초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박정희대통령은 위대한 부마항쟁으로 인하여 1961년 5.16혁명으로 따지면 19년간의 재임기간으로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 성공한 쿠데타(정변)는 세계역사가들은 모두가 혁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정권 즉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 당시 혁명에 가담도 않하고서 지금의 잣대에서 혁명을 쿠데타로 고치는 자는 역사를 모독하는 처사로 능지처참해야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
1963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므로 대통령의 재임기간으로는 17년간의 임기로 유신체제 즉 제4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으로 인하여 모든 계획을 안정되게 추진하여 완성하는 데는 좋은 성과를 가져 국제무대에 진입하는 데 업적도 많이 있다고 봅니다.
➜ 전두환의 헌법은 제5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통령 재임기간은 7년간이며 노태우의 헌법은 제6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통령 재임기간은 5년간으로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근대사의 정치역사다.
모든 사건은 임금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5.18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배경으로 역사의 보고(寶庫)에서 기록하고 간직하고 있는 사건의 순서로 아래에 부마사건과 박대통령 시해사건과 12.12사건과 5.18사건을 올리옵니다.
여러분의 학문에 사업에 직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1979년 10월 16일 부마사건. = 위대한 부마항쟁.
부마사건은 1979년 10월 16일~20까지 5일간 일어난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반정부인사들을 연행, 체포, 고문, 연금 등 야당 인사인 김영삼 신민당 총재직과 의원직 박탈로 인한 반정부를 외친 반정부민주항쟁사건이다.
부마사건=부마사태=부마항쟁의 시작은 부산대학교 학생 500명이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지하라는 반정부를 외치고 시작되었다. 18일에는 마산 경남대학생이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18일에 계엄령선포와 공수부대 투입으로 20일 진압되었다.
그러나 일주일도 않되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대통령은 5.16군사혁명 이후 19년간에 막을 내리고 시해 당하므로 유신체제 즉 제4공화국은 종식을 맞이했다.
저는 1979년 10월 16일에 일어난 부마사건을 위대한 부마항쟁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왜냐하면 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인 유신체제를 종식 하게하여 민주주의의 시발점을 만든 시초가 되었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1979년 10월 16일~20일까지 5일간 일어난 위대한 부마항쟁 이후 6일 후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대통령은 김재규가 주최한 연회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김재규와 측근들이 박정희와 경호원 5명을 사살해버렸다. 이로 인하여 장기집권인 유신체제 즉 유신헌법 즉 박정희의 제4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 1979년 12.12사건.
1979년 10.26.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이 터지고 그 다음날 김재규는 27일 0시 40분에 체포되고 정권도 잡지 못하고 나라만 혼란스럽게 만들고 2개월 이후 12월 12일에 소장이던 전두환은 자신의 부대에 행동개시 명령을 내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을 체포하고 전두환의 새로운 군인집단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다.
미국은 누가 정권을 잡느냐보다는 한반도의 안정에 더 관심이 있었던 미국은 재빨리 전두환을 지지하고 나섰다.
◉ 1980년 5.18.사건
위대한 부마항쟁이 터지고 난 뒤 5개월 후인 1980년 5월 18일~27일까지 10일동안에 일어난 5.18사건이다.
1980년 5월 1일 수 백명의 학생들이 계엄령과 강압정치의 종식을 요구하면서 광주시내를 행진했다. 곧 점차 서울과 다른 도시들로 퍼져나갔다.
5.16군사혁명을 기점으로 19년간 재위동안의 박정희대통령의 시해로 사회혼란과 나라안정을 위해 전두환은 1979년 12.12사건이후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확대실시하면서 김대중을 포함한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시켜 10일 후인 5월 27일에 5.18사건은 막을 내렸다.
이 5.18사건은 한마디로 박정희대통령이 시해 당하는 사건 이후 자국민끼리의 정권쟁취싸움이며 또한 무장싸움으로 자국내의 동족에게 총을 겨누는 비극을 발생하게 했다.
즉 신군부는 광주시민을 학생을 총을 쏘았고 반면 광주시민과 학생들은 군인과 경찰을 쏘았다.
아아 이것은 국가의 비극이며 슬픔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과정이라 어느 누가 이를 말릴 수가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후 인간의 도리와 리치인 천지리치(天地理致)에도 어긋나는 많은 법을 소급하여 보복정치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진정 미래를 열고 갈 일은 즉 앞으로 할 일은 보복정치를 종식하는 위원회를 만드는 일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재조명하여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
즉 홍익학(弘益學)을 연구하는 홍익학연구소(弘益學硏究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관건(關鍵)이다. 즉 문이며 열쇠며 핵심이다. 곧 정치보복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는 지혜가 들어있는 역사를 가르치는 홍익학연구소를 만들어서 미래를 슬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남아있다. 라고 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정권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다 보면 좋은 대안, 대책, 방책을 세워서 국익을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홍익학연구소를 만든다면 가능하리라. 라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다음에는 5.18사건 제3탄 ➜ 그 당시 과정. 에 대하여 올리겠습니다.
마지막 4탄에서는 5.18사건 총평을 올리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아아 역사를 나라를 영구히 이어가야 한다.
아아 인간이면 모두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진시황제보다 더 지독하다고 보며 이 지구상에 어느 임금도 황제도 모두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마음속에는 더 교만한 자로 역사를 폐기하라는 말이 나왔는데 과연 이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마지막 총평에 올리겠습니다.
우리지혜 우리슬기 우리역사 우리가 지어보세.
桓紀 9214년 神市開天=雄紀 5915년 檀紀 4350년 丁酉年(정유년) 西紀 2017년
6월 5일 월요일. (음력 5월 11일)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삼라만상을 좋아하는 心操彿山(심조불산) 庸辭(용사)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자료실 또는 홍보실) 첫 글인 천지인(天地人)방으로 http://blog.naver.com/hhs0203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