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 제8마당. → 바다와 바다를 잇는 수에즈운하 개통.
2016.06.21 황효상
▣ 이집트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 제8마당. → 바다와 바다를 잇는 수에즈운하 개통.
이집트의 역사는 위대하며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다.
로마제국이 395년에 분열이 되어 두 아들에게 동로마와 서로마로 갈라졌다.
이때에 동로마제국을 만든 제국이 바로 비잔틴제국(동로마 교회=그리스 정교회)이다.
이러한 시대에 이집트는 곧 395년에 비잔틴제국에 넘어갔다.
로마제국인 비잔틴제국에서 아랍 이슬람 시대가 열리면서 이집트는 서기 642년에 이슬람제국 에 넘어갔다.
이러한 역사에서 서로마가 476년에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서로마 멸망 후에 유럽을 휩쓴 게르만족 가운데 최고 실력자로 떠오른 종족은 프랑크족이었다.
프랑크족을 이끈 샤를마뉴가 별세한 후 그의 왕국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기 870년에는 서프랑크, 동프랑크, 남프랑크로 분할되었다. 즉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분할되었다.
프랑크족이 생기면서 서유럽에서 가장 타격을 준 것은 바이킹족의 침입이었다.
역사는 프랑크인과 영국인은 나중에야 바이킹 습격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갖게되어 바이킹족을 물리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나중에 강력한 해군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1798년에 침입하였으나 영국군에 패하여 그 후 영국이 이집트 점령과 보호통치 시기는 1822년~1922년이다.
영국이 이집트를 보호통치하는 시기에 프랑스는 1854.11.30일에 수에즈운하 건설을 허가 받았다.
이집트와 프랑스 사이에 수정협정 등으로 1869년 11월에 수에즈운하 개통식이 화려하게 거행되었다.
이에 이집트 정부는 무리한 강제노역의 결과로 수많은 이집트 노동자들을 영양실조 과로 전염병 등으로 죽게 만들었고 정부는 재정이 거의 파산 상태에 빠졌다.
1875년에는 그들이 소유했던 주식을 결국 수에즈운하를 탐내고 있던 영국에게 팔아넘겨야 했다.
영국은 힘 않들이고 수에즈운하의 경영권을 장악했으며 이집트 내정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 했다.
이집트는 수에즈운하건설에 수백만 파운드와 수많은 인력을 투입하고서도 열강들이 이집트 내정을 간섭할 수 있는 기회만 만들어준 셈이 되어 결국에는 순이익금의 15%인 그 권리도 포기하여야 했다.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던 서기 1869년은 우리나라 역사로 보면 26대 고종(高宗)시대이며 재위는 1863년~1907년이며 재위기간은 43년이다.


□ 고종시대에 주요한 역사는 다음과 같다.
- 1882년 6월 임오군란(군대 급료미지급으로 인한 사건)
- 1884년 12월 4일~6일 갑신정변(민비의 청나라정책으로 개화파의 불만 사건)
- 1894년 1월 동학혁명(외세의 영향 없이 자주적으로 근대국가를 형성하여 민족부강을 꾀한
시민혁명이다. 그러나 이후 나라를 자립 못하고 을사늑약 등이 일어나고 결국 나라를 매국
하여 조선이라는 나라는 막을 내렸다.)
- 1894년 7월 청일전쟁.
- 1895년 8월 을미사변(일본이 무자비하게 민비시해 사건)
- 1897년 10월 대한제국으로 결정하였다.
- 1897년 10월 연호는 광무(光武).
- 1904년 2월 러일전쟁.
- 1905년(고종 42년) 2월 22일에 일본은 독도(獨島)를 강탈하고 죽도(竹島)라 하고 시마네현
즉 도근현(島根縣)에 편입하였다.
- 1905년 11월 을사늑약.
- 1907년 고종은 강제퇴위 당하였다.
- 1909년 10월 안중근의사 이또오 히로부미 즉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사살.(마지막 27대 순종시대.)
- 1910년 8월 조선나라 매국 당함.(매국 이후 임시정부가 이루어짐)


□ 6.25전쟁과 독도(獨島)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란 일본이 세계대전에 항복하고 이집트의 카이로선언과 독일의
포츠담선언을 이행할 것과 세계2차대전 종식을 위한 평화조약이다.
곧 세계2차대전을 일본이 종식하기 위하여 1951년 9월 8일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48개 나라와 이루어졌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한국이 6.25전쟁 중일 때인 즉 세계2차대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인천상륙작전을 승인 받는 날로부터 꼭 1년 후인 1951년 9월
8일에 이루어졌다.
- 이 조약 참가국은 51개 나라에서 48개 나라가 서명하였다. 이 조약은 1차에서 13차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에 가장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남북한은 참석시키지 않았다.
- 이 조약은 6.25전쟁 중에 일어났으며 일본은 야비하게 국제뇌물과 국제사기로 강탈한 독도
를 일본영토로 넣을려고 간특하고 간악한 짓을 하였다. 즉 일본은 세계대전에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 놓고 반성은 않하고 또 침략을 할려고 하는 간악한 무리들이다. 반드시 응징하여야
한다.
- 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13차나 열렸다. 5차까지는 독도가 한국 땅으로 되었다.
그런데 6차 이후로는 일본의 간악하고 추악한 짓으로 국제뇌물을 써 일본의 영토로 할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13차에는 독도의 문구를 한국에 넘어왔다가 또 독도의 문구를 제외하고 있다.
이는 맥아더장군 앞에서 서명한 것을 무시하는 처사로 일본의 간악한 짓으로 일본나라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
- 일본은 1955년~1958년까지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남베트남에게는 피해보상을 해주었
다.
- 그 외 다른 나라에게는 경제원조 무상경제협력 등이 이루어졌다.
- 한국은 한일기본조약 문제로 남았다.
한일기본조약도 1사람의 피해보상도 않되는 3억 달러만 무상원조로 끝맺고자 하는 짓은
6년간의 세계2차대전의 피해보다도 우리나라는 36년간의 피해보상을 받아내야 하는 것으로
이러한 처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물론 나라를 빼앗긴 것은 모두가 우리나라의 책임이다.
다만 일본이 2차대전에서 무조건 항복을 한 나라이므로 이에 대한 강제위안부 등 피해
보상을 받아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꼭 받아내야 하는 것은 일본이 더러운 무기로 또 남의 나라를 침략을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아아 역사여 역사여 역사학을 더 나라 정책에서 중요히 여겼다면 침략자들을 가감히
물리쳤을 것이었다고 봅니다.
- 강제위안부에 끌러간 우리의 언니 누나들이여 그들에게 피해보상을 한사람에게 적어도
나라를 매국한 이완용에게 준 은사금 32억원 정도는 우리가 요구하여야 한다.
사죄와 피해보상을 못 받고 돌아가신 할머니들에게는 2배로 요구를 하여야 한다.
곧 이완용에게 준 은사금인 32억원 정도를 한사람당 피해보상을 받아내야 한다.
이정도의 피해보상을 않내놓으면 역사가 흐르는 이상은 태양이 없어지는 날까지 우리
단군자손이 없어지는 날까지 선량하고 죄없는 고귀한 생명을 포학한 짓과 죽인 것에 대한
피해보상과 또 이자를 포함하여 영구히 받아내야 하는 것이 남아있다고 봅니다.
- 역사를 알 때 우리의 화랑도(花郞道) 여랑도(女娘道)들은 힘차게 나라를 튼튼히 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바(所=事)입니다.
화랑도 여랑도들이여 그대의 지혜를 발휘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상기의 글은 홍익역사단지(弘益歷史團誌) 천자문(千字文)의 본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현재 13마당 까지는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열심히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곧 역사와 교훈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역사란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많은 지적과 많은 격려를 바라옵니다.
그 외 등을 전자책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학문과 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桓紀 9213년 神市開天 5914년 檀紀 4349년 丙申年(병신년) 西紀 2016년
6월 21일 화요일.
삼라만상을 좋아하는 心操彿山(심조불산) 庸史(용사)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자료실 또는 홍보실) 첫 글인
천지인(天地人)방으로 http://blog.naver.com/hhs0203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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