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지키고 싶은 오늘의 행복
세 식구가 지내는 반지하 방이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럽습니다. 부엌에 서 있는 손녀 최차연(26) 씨는 일터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챙기느라 분주합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단출하게 계란 프라이라도 하려는데 오래된 프라이팬에 요리하느라 그마저도 성치 않아 보입니다. 도시락을 싸다 말고 방으로 향하는 차연 씨는 할아버지 최종문(94) 씨의 이마에 손을 대보는데요. 며칠 전, 비가 많이 오는 날에 밖에 나갔던 할아버지는 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배와 허리 통증만 호소하고 있습니다. 열이 나는지, 두통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차연 씨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껏 묻어 있는데, 마음과 달리 출근해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옵니다. 과연 차연 씨와 할아버지 종문 씨, 할머니 박귀덕(85) 씨의 오늘 하루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요?
“열아홉 살부터 가장으로 살아왔어요”
적은 월급으로 세 식구 생활을 책임지는 차연 씨는 식비와 교통비라도 아껴보겠다는 생각에 매일 도시락을 챙기고 자전거를 이용해 출근합니다. 힘겨운 출근 준비 끝에 다다른 곳은 번화가에 위치한 카페였는데요. 열아홉 살부터 가장 역할을 하게 된 차연 씨는 벌써 7년째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출근한 차연 씨는 혼자 카페 문을 열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씩씩하게 청소를 하는데요. 이내 무리가 됐는지 가쁜 숨을 내쉬며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에 주저앉고 맙니다. 심장 부근을 쓸어내리며 진정해보려고 노력하는 차연 씨는 13살 때부터 부정맥을 앓고 있습니다. 증상이 가장 심했던 때는 심장이 1분에 300번을 뛸 정도여서 병원에 다니느라 고등학교를 자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던 차연 씨입니다. 사실 차연 씨가 어린 나이부터 부정맥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더는 삼촌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요“
그 원인은 바로 어릴 때부터 차연 씨에게 폭력을 일삼던 삼촌 때문인데요. 생후 100일 때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님 손에 거둬진 차연 씨는 알코올 중독자인 삼촌과도 함께 살며 오랜 시간 폭력을 당해왔습니다. 삼촌은 어린 차연 씨에게 돈을 요구하기 일쑤였고, 차연 씨가 돈을 주지 못하면 술에 취한 삼촌은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할아버지 종문 씨와 할머니 귀덕 씨 또한 아들의 폭력 앞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가족들이 갈비뼈가 부러질 만큼 맞는 날도 있어 차연 씨는 여러 번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세 식구는 삼촌의 가정 폭력 속에서 자그마치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결국 살인미수죄로 징역을 받을 만큼 할아버지 종문 씨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한 삼촌은 교도소에 수용되었지만, 불과 2년 후면 집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저한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님이라 보답해 드리고 싶어요”
아들이 출소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할머니 귀덕 씨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기가 힘듭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을 매몰차게 외면하기도 어렵지만, 오랜 시간 의지해온 손녀 없이 사는 삶도 너무나 두렵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 아들도 교화되어 나오길 바라는 귀덕 씨는 교도소에서 보내진 편지를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런 귀덕 씨를 내심 원망했던 차연 씨지만, 요즘 들어 건강을 잃어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흘러만 가는 시간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 치매 초기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는 새벽 3시가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더니 지하철역에서 잠든 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차연 씨는 두 분이 돌아가셨을 때 후회만큼은 남기지 않기로 하고 가까운 미래보다는 세 식구의 오늘, 이 순간의 행복을 챙기고 싶습니다.
조부모님을 위해 행복을 찾아가는 손녀 차연 씨와
손녀 덕에 웃을 수 있다는 할머니 귀덕 씨,
일찍 가장이 된 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할아버지 종문 씨의
소중한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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