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근 씨의 시린 겨울
경기도 안양시, 서로에게 따스한 쉼터가 되어주는 가족이 있습니다. 9년 전,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 부부는 선물처럼 찾아온 딸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딸은 태어날 때부터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아 이제는 척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요. 하나뿐인 딸이 움츠린 허리를 펴고 힘차게 걸을 날을 기대하는, 이우근 씨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선아 과자랑 반찬 사주려고 추운 날씨지만 나왔어요.
당뇨 때문에 눈이 흐릿하고, 손가락에 금도 가서 많이 아파요.“
첫눈이 하얗게 덮인 주택가, 우근(55) 씨는 눈밭을 헤치며 빈 상자를 찾습니다. 평소엔 파지 줍는 사람이 많아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거리로 나왔다는데요. 그런 우근 씨의 오른손엔 흰 붕대가 감겨 있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하다 넘어져 새끼손가락에 금이 갔다는데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이 나빠진 탓입니다. 한쪽 눈이 흐릿하게 보이고 초점도 맞지 않는 상태.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눈에 잘 띄는 안전 조끼까지 챙겨 입었습니다.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돌아간 집, 아내 현숙(39) 씨와 딸 선아(9)가 우근 씨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선아의 등이 혹처럼 툭 튀어나왔는데요. 척추 한 마디가 없이 태어난 선아. 뼈가 한쪽으로 심하게 휘어 결국 척추측만증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휜 척추가 장을 눌러서 장폐색 등의 위험도 안고 있는데요. 허리를 숙이지 못해 서서 머리를 감아야 합니다. 게다가 오른쪽 발가락이 6개인 다지증까지 앓고 있는데요. 기울어진 몸 때문에 선아는 중심을 잃고 자주 넘어집니다. 아픈 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우근 씨. 모든 게 부모 잘못 같아 마음이 아려옵니다.
”선아가 크면 척추가 무너질 수 있어서, 더는 수술을 미룰 수 없대요.
비싼 수술비를 전부 부담해야 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아파요.“
다가오는 봄, 선아는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키가 자라면 척추가 무너질 수 있어 더는 수술을 미룰 수 없습니다. 딸의 수술을 애타게 기다린 우근 씨. 하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천만 원대의 수술비를 전부 부담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뼈가 더 휘지 않도록 척추 보조기를 채울 때면 집안은 땀범벅 눈물범벅이 됩니다.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선아는 말 대신 몸으로 부모의 손길을 밀어내는데요. 만약 수술 후, 고통에 몸부림이라도 치면 수술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밀착 보호가 더욱 중요한데, 우근 씨는 선아를 돌보기가 점차 힘에 부칩니다. 치료를 미룬 탓에 당뇨 상태가 상당히 위험 단계에 있는데요. 손을 다친 뒤로는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아내의 도움을 받는 신세입니다. 어렵게 임대주택을 얻었지만, 살림살이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세탁기가 고장 나 손빨래를 하고, 가스레인지 살 돈이 없어 휴대용 버너를 쓰는 형편. 거기에 사업 실패와 오랜 노숙 생활로 생긴 빚까지. 아빠 우근 씨의 근심은 눈처럼 쌓여만 갑니다.
“선아는 저희한테 하나뿐인 보물이에요.
선아가 걷고 뛰는 날까지 열심히 아빠 노릇 할 거예요.”
아직 눈이 녹지 않은 밤, 우근 씨는 파지를 주우러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부족한 살림에 딸 생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뿐인데요. 수술비에 한 푼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못할 게 없습니다. 몸도 맘도 시린 겨울이지만, 우근 씨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내 현숙 씨를 만나 비슷한 아픔을 나누었고, 선물처럼 찾아온 딸 선아 덕분에 새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우근 씨는 매일같이 다짐합니다. 사랑하는 딸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히 걷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요.
다가오는 봄, 다시 삶의 걸음마를 떼려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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