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둘 수 없는 내 딸 순영이
서울특별시 강서구, 중년이 되어도 여전히 아이 같은 딸을 둔 어머니가 있습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딸이 어머니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란다는데요. 연로한 나이에 다리 골절 수술까지 받아 성한 곳 하나 없지만, 아픈 딸에게 유일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이정숙 씨의 이야기입니다.
”여든이 넘어서 다리 수술만 수차례... 앞으로 못 걸을 수도 있다네요.“
쌀쌀해진 가을 아침, 정숙(83) 씨는 가구를 붙잡고 천천히 걸음을 뗍니다. 행여 넘어질까 조심조심 걷느라 방 옆에 딸린 주방까지 가는 데 한참이 걸립니다.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밥 한 숟갈을 뜨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정숙 씨. 아직 낫지 않은 다리 때문에 밥상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어 좁은 주방에 앉아 대충 끼니를 때웁니다. 두 달 전, 정숙 씨는 집에서 낙상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대퇴골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고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얼마 전, 집으로 돌아왔는데요. 금속판을 끼우는 대수술은 여든이 넘은 정숙 씨에겐 몸과 마음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반복된 다리 수술로 이제는 휠체어 없이 간단한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황. 또 다칠까 봐 겁이 나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다 보니 회복은 더디기만 합니다. 그런 정숙 씨에게 아픈 다리보다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존재가 있는데요. 바로 딸 순영(56) 씨입니다. 순영 씨는 정신장애 진단을 받고 현재 조현병약을 먹고 있습니다. 오십을 훌쩍 넘겼지만, 어린아이처럼 어머니에게 생활 전반을 의존하는데요. 간병은커녕 어쩌다 한 번씩 어머니 식사를 챙겨드리는 게 전부고, 설거지, 분리수거 등 집안 살림은 전혀 살피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뇨 때문에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는 정숙 씨에게 매일 믹스커피를 건네기도 합니다. 찬물에 탄 믹스커피는 순영 씨가 어머니를 챙기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돈이 하나도 없는데 줄 때까지 저를 괴롭혀요...
오십이 넘었는데 아이 같은 우리 딸을 어떡할까요?”
딸 순영 씨는 하루 대부분을 좁은 방 안에서 보냅니다. 음식과 쓰레기로 가득 찬 방에 겨우 몸을 누이는데요. 무기력한 순영 씨의 마음 안에는 나름의 상처가 있습니다. 순영 씨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똑똑하기로 소문난 학생이었습니다. 졸업 후 번듯한 직장 생활도 했었는데요. 극심한 스트레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더니 그만 병이 나고 만 겁니다. 정숙 씨가 가장 힘이 드는 순간은 딸이 돈을 달라고 투정 부릴 때입니다. 수급비와 장애수당만으론 빠듯한 형편이지만, 무작정 떼쓰는 딸을 이길 도리는 없습니다. 돈을 받아들고는 말도 없이 나가버리는 순영 씨. 아파트 근처 마트로 향하는데요. 먹지도 않을 간식거리를 한가득 사 와서는 냉장고에 밀어 넣고, 자리가 없으면 방에 산처럼 쌓아둡니다. 철없는 딸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는 걱정이 앞섭니다. 한때 딸을 시설에 보냈었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 정숙 씨. 언젠가 딸이 혼자 남게 될 날을 생각하며, 하루빨리 순영 씨의 증세가 나아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죽어도 괜찮은데, 혼자 남겨질 딸이 걱정이에요.”
골절 이후 거동이 더욱 어려워진 정숙 씨와 자기 자신을 어린아이로 인식하는 순영 씨. 두 사람 모두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들 곁에는 의지할 가족도 마음을 나눌 친구도 하나 없는데요. 사정을 알게 된 복지관에서 정숙 씨 가정에 찾아와주었습니다. 특히나 순영 씨에겐 이웃 주민들과의 소통, 프로그램 참여가 큰 도움이 될 거라는데요. 아직은 어색한지 어머니 품을 찾는 순영 씨. 하지만 정숙 씨는 이번 기회가 딸이 홀로서는 첫걸음이 되기를 꿈꿉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아픈 손가락 같은 딸 순영 씨, 허락된 시간 동안 딸에게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은 어머니 정숙 씨. 과연 두 모녀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제 몸 하나 보살피기 힘들어도 항상 함께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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