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제난으로 인한 시위로 대통령이 물러난 스리랑카에서 대통령궁이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AP통신이 1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대통령궁 점거가 사흘째를 맞는 가운데 호화시설을 보고 직접 체험하기 위해 대통령궁으로 더 많은 스리랑카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처음에는 격분한 시위대가 이곳을 장악했다면 이제는 광대한 저택이 관광지가 된 것이다.
대통령궁의 개인 체육관에는 수백명의 스리랑카인들이 헬스를 즐기고 있다. 대통령의 전유물이었던 역기를 들고, 러닝머신을 달리면서 대통령 체험을 하고 있다.
넓은 침실은 이곳을 찾은 스리랑카인들의 셀카 명소로 부상했다. 또 호화로운 연회장, 수영장, 정원 등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맑은 푸른색이었던 수영장 물은 흙탕물로 변했다. 정원에서는 도시락을 싸온 시민들이 소풍을 즐기는 모습도 포착되고 있다.
[AP 연합]
대통령궁 안팎에는 수십명의 경찰이 있지만 이들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시설 훼손을 막고 있다.지난 9일 수천명의 스리랑카 시위대가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며 대통령궁으로 진입해 점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난입 직전 라자팍사 대통령은 다른 곳으로 대피했고 당일 저녁 그는 사임의사를 밝혔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외곽에서 온 64세의 한 농부는 "이런 것들을 직접 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치 못했다"라며 "우리 가족이 먹을 것이 없어 고통 받는 동안 대통령이 이곳에서 얼마나 호화로운 삶을 누렸는지 알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주말 시위대는 대통령궁으로 강제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총리 관저까지 습격하고 사저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지난 몇달간 지속된 시위에서도 가장 격렬한 날이었다.
시위 지도자들은 대통령과 총리가 실제로 사임하기 전까지는 대통령궁과 관저를 떠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AP 연합]
사임을 선언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을 대신할 스리랑카 차기 대통령은 20일 선출될 전망이다. 고타바야 대통령이 예정대로 13일에 물러나면 의회가 15일 소집되고, 19일 대통령 후보를 등록한다. 이튿날 의회에서 새 대통령이 결정된다.스리랑카는 주력인 관광 산업이 무너지고 대외 부채가 급증한 가운데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연료와 식품 부족 등으로 민생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정부는 지난 4월 '일시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고득관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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