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아메리카 대륙을 휩쓸며 피해를 키우는 가운데 주요 3국 대통령이 '노(No) 마스크'를 고집하다가 체면을 구기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북미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멕시코 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 회동을 가졌지만 '미국 3대 자동차' 최고경영자(CEO)들이 두 대통령과의 만찬(저녁식사)을 거부했다. 남미에선 코로나19에 감염된 '열대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리던 중 이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어보였다가 '보건 위해 행위'로 치부돼 고발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노 마스크 3총사' 대통령들은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건재를 강조하며 경제 재개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포브스멕시코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농업 부문을 대표하는 CEO들이 '미국-멕시코 정상 간 만찬' 자리에 줄줄이 불참했다. 에너지·농식품 등 다른 부문도 만찬 참석에 소극적으로 나왔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포드의 짐 해켓·GM의 매리 바라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마이크 맨리 CEO가 '코로나19 전파 우려'를 이유로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암로 대통령의 백악관 만찬 참석을 거부했다. 또 미국 핵심 이익집단이자 최대 농업인 조직인 미국농업인연맹(AFBF)의 지피 듀발 회장은 코로나19 양성(감염)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 되면서 자동적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로이터통신은 에너지 등 다른 주요 업계 기업들도 CEO대신 다른 고위급 관계자를 참석시켰다고 전했다. 에너지 업계 셈프라에너지·로열더치쉘·카봇오일앤가스, 방산업계 록히드마틴, 농식품 업계 데어리푸드, 금융 업계 블랙스톤 등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밥 스완 CEO 정도를 제외하면 미국 측 주요 CEO들이 줄줄이 불참한 가운데 멕시코 측에서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이 트럼프 대통령과 암로 대통령 만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정상 회동과 이에 따른 만찬 자리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가 지난 1일 발효된 것을 기념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자리이지만, 정상회동 차원에서는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불참했다. USMCA와 관련해 미국과 캐나다간 철강·알루미늄 관세 갈등이 또 다시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암로 대통령의 만남은 전반적으로 두 대통령의 야심찬 정치적 공약을 따르지 못했다는 평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 이후 기존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폐지하고 USMCA를 체결한 것을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삼아왔고, 지난 2016년 대선을 계기로 줄곧 자동차 등 제조업과 농업 분야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해왔다. '89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암로 대통령도 원유 증산과 정유 시설 투자를 통해 '에너지 산업'을 키우고 이를 통해 나온 수익으로 빈곤을 뿌리뽑겠다고 공언해왔다.
다만 8일 정상 회동은 불편한 관계였던 미국·멕시코 대통령이 나란히 '노 마스크'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일부러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과 암로 대통령은 첫 만남에서 '밀접 접촉 금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악수는 하지 않았지만 나란히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백악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두 대통령은 '양국의 번영과 안보와 미래에 이바지 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한 후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멕시코는 소중한 협력자이며 미국으로의 이주민 제한 노력을 잘 해주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가 지금보다 더 가까운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암로 대통령은 스페인어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를 식민지처럼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방문을 결심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존경을 표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두 대통령은 불편한 관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을 전후로 줄곧 멕시코 이주민과 캐러밴(미국 입국을 희망하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중미 3국 출신 이주민)을 향해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넘어 들어와 미국 국경을 침략하는 강간범·마약 판매상들"이라고 비난하면서 "멕시코가 국경 장벽 건설비용을 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암로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난 적은 있어도 국경을 맞댄 미국 대통령은 만나지 않아 전임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8일 백악관 방문은 지난 2018년 12월 암로 대통령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이다.
같은 날 8일 남미 브라질에서는 '열대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가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국제 사회 눈길을 끌었다. 전날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8일 관저에 격리된 상태에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나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먹고 아주 빠르게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다른 대안(치료제)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먹고 열이 내리는 등 매우 좋아졌으며 신의 은총으로 오래 살 것같다"면서 자신이 건강한 상태이며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의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효과를 극찬하면서 "나도 먹어봤다,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도 먹는다"고 밝혀 유명해진 말라리아 치료제다. 다만 앞서 2일 브라질 연방 대법원은 에두아르두 파주엘루 보건부 장관 대행에 대해 "클로로퀸과 클로로퀸 계열 유사 약물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용을 굳이 강행하면서 사용 확대 방침을 결정한 이유를 닷새 안에 해명하라"고 명령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 사용에 제동을 건 바 있다.
브라질 전국보건노동자연맹(CNTS)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 사용에 반발해 제기한 데 대한 법원 판결이다. 앞서 5월 네우손 타이시 전 보건부 장관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 사용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갈등을 겪다가 한 달만에 장관직을 사임한 바 있다. 브라질 주 정부도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용을 기피하고 있다. 전세계 의료계가 해당 약물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가운데 지난 5월 15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로나19 치료 목적으로 허용했던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긴급사용을 취소했고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도 '안전상 우려'를 이유로 코로나19 치료제 실험에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제외한 바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 후 기자회견에서 마스크를 벗어 기자들로부터 고발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7일 브라질 언론협회(ABI)는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행동은 심각한 질병을 전파해 취재진의 생명과 건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엄연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면서 고발 의향을 밝혔다. 협회는 또 "대통령인데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범죄 행위를 계속한다.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도 의료진 권고를 무시하고 기자들을 가까이 불러모아 회견을 진행했고 돌발적으로 마스크를 벗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브라질리아 언론인조합(SJP-DF)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온 뒤 대통령실 취재 중단을 권고했고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 중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오면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브라질 법원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방역 무시 행동을 보다 못해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하루에 47만원씩 벌금을 물리겠다고 판결했다. 지난 6월 23일 브라질 법원의 헤나투 코엘료 보렐리 판사는 "공화국 대통령은 자국에서 시행 중인 법률을 지켜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는데 오히려 무례하고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올해 4월 말부터 마스크 착용은 의무 사항이다. 대통령은 다수가 모인 곳에 나서는 경우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판결문에서 "대통령이 이를 어기고 계속 마스크를 벗고 다니면 하루에 2000헤알(약 47만원) 씩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면서 "간단히 구글 검색만 해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마스크를 안쓰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진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6월 말을 기점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명·사망자가 5만명을 돌파했고 현재는 미국에 이어 전세계 2위 코로나19 피해국이다. '남미 최대 시장'인 브라질의 인구는 전세계 6위 정도에 해당해 인구 규모 대비 피해가 큰 편이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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