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폄하하는 내용의 외교 문서를 본국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난 킴 대력 주미 영국대사가 10일(현지시간) 끝내 사의를 밝혔다.
영국 정부는 당초 미국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대력 대사의 경질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거세게 그를 비판하면서 이번 사태가 미·영 간 외교 갈등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대럭 대사는 사직서에서 "외교 기밀문서가 유출된 뒤 내 직위와 임기에 대해 많은 협의가 있었다"며 "이제 이런 추측들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금 상황은 내가 주어진 역할을 하기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7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대럭 대사가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전문에서 대럭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서툴고 무능하다" "대통령이 분열을 조장한다"고 평가했다. 또 "백악관은 전례 없이 망가졌다. 대통령은 불명예스럽게 임기를 끝낼 것"이라며 "이 정부가 더 정상화되고, 덜 무능하고, 덜 예측 불가하고, 덜 분열되고, 외교적으로 덜 서툴게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다"고 적었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온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멍청한 사람"이라며 "우리는 그의 열혈 팬이 아니다"고 사실상 영국에 대럭 대사의 경질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전문의 내용은 대사의 개인 의견이지 영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면서도 "솔직한 보고는 대사의 정당한 직무"라고 경질 요구를 거부했다.
이런 영국 정부의 반응에 트럼프는 격분했다. 그는 이튿날 트윗에서 "나는 그 대사를 모르지만, 미국은 그를 좋아하지도 않고 평판도 좋지 않다"며 "우리는 더는 그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폭탄 선언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최고 동맹국인 영국의 자국 주재 대사를 '외교상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는 퇴임을 앞둔 메이 총리도 공개 비난했다. 그는 "나는 영국과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다루는 방식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며 "메이 총리가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메이 총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해줬지만, 그는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는 "영국이 유럽연합(EU)과 공정한 합의를 못 한다면 이혼 합의금(EU 분담금) 390억 파운드(약 58조 원)는 내지 않고 그냥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공방이 있고 나서 미국 정부는 대럭 대사를 사실상 찬밥 취급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대럭 대사는 미 재무부가 주최한 카타르 국왕 환영 만찬 행사에 초대받았지만, 당일 갑작스럽게 초청 취소 통보를 받았다. 대럭 대사는 사직서에서 "내 임기는 올해 말까지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책임감 있는 행보는 신임 대사 임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토로했다.
[디지털뉴스국 이세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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