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건축에는 혁신의 정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담겨있다"
프레드 스쿨 네덜란드 왕립 건축연구소 소장은 이달 초 로테르담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 항구도시이자 혁신적 디자인과 기능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건축의 '성지'다. 1940년대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지만 이는 오히려 로테르담을 건축 도시로 성장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로테르담 시청 사무실이 있는 '티메르하우스'가 그러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티메르하우스는 1952년 네덜란드 정부가' 로테르담 복구 프로젝트'의 중심으로 잡은 건물이다. 디자인과 건축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리움미술관 건축가 램 콜하스의 OMA가 도맡았다. 과거 로테르담 시청 청사와 우체국 사이에 있는 티메르하우스는 모던과 전통이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네덜란드 건축의 혁신적인 특성을 잘 드러낸다.
건물의 1~4층은 시청 사무실로 사용되고, 그 위로는 아파트로 활용된다. 도시 복구와 함께 주거 문제도 해결하려던 네덜란드 정부의 고민의 결과물이다.
시청 사무실 곳곳에는 과거 시청 청사에서 쓰이던 조형물들이 배치돼 있어 과거 로테르담의 역사를 보여준다. 전형적인 사무실과 달리 개개인에 특정 자리를 부여하지 않고 언제든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유화'를 막고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목표를 현실화시킨 것이다.
로테르담 마켓홀 외부 전경. 말발굽 모양의 외관이 눈에 띈다. <사진=김하경 기자>
로테르담의 랜드마크 '마켓홀'도 독특한 디자인과 기능성을 동시에 갖춘 건축물이다. 마켓홀이 생기기 전 그 부지는 야외 시장이 들어서던 곳이었다. 하지만 비바람이 치는 변덕스러운 네덜란드의 날씨 때문에 야외 시장은 여러 제약을 받야만 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시장의 활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대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그때 선정된 곳이 바로 서울로 디자이너 비니 마스의 MVRDV 사무소다.
마켓홀 내부. 천장에 있는 네모난 창문들은 거주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사진=김하경 기자>
MVRDV는 건축물의 전체적인 형태를 말 발굽 모양으로 만든 뒤 중간 부분에는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이, 그 주위에는 아파트가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이 있는 공간의 외벽은 전면 유리로 설계해 마치 야외에 있던 시장을 실내로 그대로 들여온 것만 같은 효과를 낸다.마켓홀 건축 프로젝트는 대성공적이었다. 2014년 완공된 마켓홀에는 현재 총 23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로테르담의 관광 명소가 됐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유리로 된 외벽 바깥에는 대형 트리 모양의 빛이 환하게 마켓홀을 밝히고 있었다.
암스테르담 곳곳에서도 네덜란드 건축의 DNA를 찾아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 북부의 항구 NDSM(New Dock activities Stories Members)은 과거 조선소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다. 하지만 조선 산업의 쇠퇴에 따라 이 지역도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게다가 공업 폐기물 등으로 토양도 많이 오염돼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지역은 암스테르담의 '아트 디스트릭트'로 거듭나고 있다. NDSM 지역의 면적은 축구장 10개를 합친 규모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삶의 공간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NDSM의 쿤스탄트 아티스트 스튜디오 <사진=김하경 기자>
NDSM의 매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바로 쿤스탄트 아티스트 스튜디오다. 이 공간은 원래 NDSM 중심에 위치한 광대한 산업건물이었다. 하지만 조선사들이 모두 떠나자 빈 공간으로 남겨져 있었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이 건물을 일종의 문화유산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재건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이때 아티스트들은 뜻을 모아 건물을 아트 스튜디오로 탈바꿈시켰다. 정부의 도움으로 값싼 임대료를 내며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쓰지 않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사무실로 개조했다. NDSM 건축 투어를 맡은 아넥 보컨 씨는 "이 건물은 예술을 사랑하는 네덜란드와 감성과 실용적인 네덜란드 건축의 특성을 잘 담은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의 드 홀렌 센터. 바닥에는 트렘이 지나가던 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김하경 기자>
네덜란드 도심을 누비는 '트렘'의 첫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센터로 변신했다. '드 홀렌' 센터 안에는 트렘이 지나가던 철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도서관, 음식점, 옷가게 등 누구나 와서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들이 가득하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로 주로 이동하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을 위해 자전거 전용 지하주차장도 갖춰져있다.네덜란드가 미래의 건축을 위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지속가능성'이다.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스쿨 소장은 "네덜란드 건축은 세 가지 'P'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 (People),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Planet), 이윤 (Profit). 사람을 위한, 친환경적이고, 실용적인 건축을 항상 추구한다"고 말했다.
[로테르담·암스테르담 =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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