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여행하다 국가전복음모죄로 붙잡혀 결국에 사망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여만에 또 다시 자국 학생이 이란에서 억류된 후 징역형을 선고받자 미국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간)"이란 정권이 계속 미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을 날조된 국가안보 관련 혐의로 억류한다"며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란이 이번에 징역형을 선고한 미국인은 명문 프린스턴대 대학원생인 중국계 미국인 시웨 왕(37)이다. 이란은 지난 16일 왕이 학자로 위장해 입국한 뒤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을 위해 일했다며 간첩죄로 체포해 10년형을 선고했다. 4500개의 문서를 디지털 파일로 보관했다는 게 그의 죄목이다.
하지만 미국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며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의 가족과 친지,학교 등은 왕의 석방을 요구하며 공개적인 활동에 나섰다.
실제 공개된 이력을 보면 스파이 혐의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인다.
왕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인 스티븐 코트킨은 "왕이 테헤란서 읽고 수집한 문서들은 이미 100년도 더 된 것"이라며 간첩죄라는데 어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왕은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19살 때 미국에 유학을 왔다. 현재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박사과정 4년차로, 이란에서 카자르 왕조를 집중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적십자 국제위원회 활동을 하며 현지어인 파슈토어 통역을 하기도 했다. 왕은 미국과 중국 국적을 모두 가진 이중국적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왕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치 않다. 왕의 문제가 단순한 스파이 사례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2015년 오마바 전 대통령과 이란이 맺은 핵 합의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인준 여부를 앞두고 나온 이란의 행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이 문제가 양국의 정치적 이슈로 비화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실제 미 국무부는 왕의 사건이 터진 다음날인 17일 이란이 핵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면서도 탄도미사일 개발·확산, 테러단체 지원, 시리아 내전 개입 등을 거론하며 이란이 핵 합의의 기본정신을 이행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 국무부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시험 발사와 관련된 혁명수비대(IRGC) 산하 우주항공 관련 기관 2곳(ASF SSJO·RSSJO) 등 개인과 단체 총 18곳에 대해 신규 제재한다고 밝혔다.
이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유엔본부를 방문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이번 제재를 "(트럼프 정부의) 나쁜 습관"이라며 "이란은 핵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브루스 캐러터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버핏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은 "식은땀이 나는 사건"이라며 "이란 방문자가 여전히 협상 카드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왕의 석방에 오바마 전 정권에 비해 더 열정적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문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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