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 흑인 출신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64) 전 장관이 미국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는 9일(현지시간) 출간을 앞둔 신간 '민주주의(DEMOCRACY)'에서 라이스 전 장관은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신념을 고스란히 담았다. 라이스 전 장관은 민주주의 확산 정책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미국의 도덕적 책임"이자, 장기적으로 미국 안보의 잠재적인 보호막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운 신(新)고립주의 전략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라이스 전 장관은 실패의 경험을 전하며 "(민주주의 확산이) 어렵다. 정말 정말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확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긴 줄을 선다"며 민주주의 가치의 보편성을 역설했다. 책에서 라이스 전 장관은 2004년 수용소에서 벌어진 이라크인에 대한 미군의 가혹 행위 등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했다.
라이스 전 장관은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정부 시절의 '신(新) 세계질서' 정책을 구상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깊숙이 관여해서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자유로운 자본주의를 확산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이스 전 장관이 주창한 '신세계질서' 노선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여러 차례 미국은 더는 '세계 경찰'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문가로 스탠퍼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던 그는 '아버지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에 발탁된 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정부에서는 NSC 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두 보수 정권의 외교·안보를 사실상 책임지는 자리였다.
한편 라이스 전 장관이 민주주의를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그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1960년대 민권운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65년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인정됐다. 고향 버밍햄에서 펼쳐진 민권운동은 어린 라이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우리 국민'을 뜻하는 미국 헌법의 첫머리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의 의미가 마침내 나 같은 사람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이는 제2의 미국 건국이었다"고 회고했다.
[박의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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