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저녁 11시 30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시신이 안치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병원에 강철 주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가 검정 제규어를 몰고 갑자기 나타났다. 대부분의 언론이 철수하고 일부 현지 언론만 남아있던 상태에서 예상 밖의 돌출 행보였다.
이날 강철 대사는 영어로 된 언론 성명서를 격한 목소리로 직접 읽어가며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 적대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 말레이 정부가 우리의 참관과 허락 없이 (김정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노골적 불만을 표출했다.
화난 목소리로 돌출 기자회견에 나선 강철 대사의 심경을 드러낸 듯한 정황도 있었다. 매일경제신문은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 강 대사와의 접촉을 수차례 시도하던 중 강철 대사의 명함을 19일 단독 입수해 연락을 시도해봤다. 명함에 나와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자 그는 받자마자 끊었다. 한국의 전화 번호인 것을 아는 듯 했다. 이후 추가 통화 시도에는 받지조차 않았다. 강 대사의 전화연결음은 영국 가수 캘빈 해리스의 '블레임'이었다. 노래에서는 "날 탓하지마(Don't blame on me)"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해 나왔다. 말레이시아와 북한 당국 사이에서 어려움에 처한 강 대사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리는 노래였다.
강철 대사의 명함에는 영어로 Kang Chol이라은 이름 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말레이시아 대사라고 영문으로 적혀 있다. 대사관 주소와 그의 핸드폰,사무실, 팩스 번호와 구글 지메일 주소가 적혀있다. 명함에 적힌 북한 대사관의 주소는 실제 북한 대사관 주소와 일치했다.
또한 강 대사는 다른 국가들의 공관장들과 달리 정부 이메일이 아닌 지메일을 사용하고 있었다. 보안을 철저히 여기는 북한 당국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현지 소식통은 "북한 당국의 정부 이메일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듯 하다"며 "강 대사가 만약 선불폰을 사용한다면 그의 의도와 달리 팝송이 설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현지 소식통은 "김정남의 시신 인도가 예상외로 지연되고 북한 국적의 용의자가 체포되자 강철 대사가 본국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듯 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현지 소식통은 "북한이 김정남의 시신 인도 혹은 화장을 당국에 요구했지만 거절 당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쿠알라룸푸르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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