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2차 정권 들어 4년 동안 경제운용의 핵심 매커니즘은 일본은행(BOJ)을 통한 대규모 양적완화와 이에 따른 엔저 유도, 기업수익 증가, 임금인상에 따른 소비촉진과 설비투자증대, 이를 통한 물가상승으로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이 매커리즘에서 볼때 가장 중요하고 관심이 큰 것은 엔화값의 움직임이다.
과거 민주당(현 민진당) 시절 때처럼 달러당 엔화값이 75엔 안팎에 이르는 초강세로 돌아서버리면 경제운용 매커니즘 자체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 2차 정권 이후 3년 동안 꾸준히 진행된 BOJ의 양적완화와 엔저가 진행됐지만 2016년에는 전혀 예상밖의 움직임이 진행됐다. 연초 BOJ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130엔대까지 갔던 달러당 엔화값은 강세로 돌아섰고,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때에는 100엔이 깨지는 강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서 BOJ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장기금리 상승으로 미일간 금리차이가 커지면서 2016년말 달러당 엔화값은 117엔대 안팎을 오가는 약세로 돌아섰다. 상반기 엔고 분위기를 감지한 기업들이 엔화값 전망치를 105~110엔 수준으로 맞췄지만 이를 크게 뛰어넘는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엔화 약세기조는 2017년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이 2017년에도 금리인상을 이어갈 것이 분명하고, 제로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 상태인 일본과의 금리차이가 커지면서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도, 달러 매수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과의 금리차이가 크게 벌어질 경우 BOJ 입장에서는 추가 양적완화가 아니라 양적완화 축소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변수는 있다.
엔화값은 글로벌 안전자산의 대명사다. 매년 금융시장이나 지정학적 위기요인이 불거지면 엔화값은 여지없이 강세로 돌아섰다. 2017년에도 글로벌 시장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블랙스완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100엔이 깨지는 초강세나 130엔을 뛰어넘는 초약세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엔화값 약세는 평균 엔화값 전망치를 105~110엔 수준으로 잡고 있는 상장기업에는 가장 큰 호재다. 현재와 같은 엔화값이 지속될 경우 도요타를 비롯한 자동차와 전자 기계 등 수출기업들의 수익은 급증하고, 설비투자와 임금인상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7년도 가장 큰 관전포인트는 일본 경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인 소비부진과 저물가에서 탈출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일본은행(BOJ)은 2016년도에 실질GDP 성장률을 1.0%, 소비자물가(신선식품제외)는 -0.1%로 보고 있고, 2017년도에는 실질GDP 성장률 1.3%, 소비자물가 1.5%를 예상하고 있다. 2016년에 비해서는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예상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0%초반인 점을 감안할 때 1.3% 성장은 꽤나 경기가 호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BOJ의 전망처럼 2017년도에 경제상황이 호전되기 위해서는 GDP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매년 정부 주도의 관제 춘투가 벌어지며 재계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침체된 소비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다. 소비가 살아야 물가가 오르고 궁극적으로 아베 정권의 최대 목표인 디플레 탈출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2016년 11월까지 소비자물가는 무려 9개월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비 부진이다. 구인자와 구직자의 비율을 보여주는 유효구인배율이 1.41배로 1991년 버블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중이고, 실업률도 3.1%로 완전고용에 가깝지만 소비가 늘지 않는 것은 미스테리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젊은이들의 소비욕망이 사라졌다는 분석도 있고, 매년 30만명씩 줄어드는 인구구조 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아베 정권 들어 4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여성등용과 일하는방식 변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어 분위기가 호전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취업률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중에 '구직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아베 정권이 2016년 하반기에 밝혔던 300조원에 달하는 경기대책도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만큼 공공인프라투자 등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인프라 정비에 총력전을 펴고 있는 만큼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미 도쿄의 부동산 대출 등은 과거 버블기 못지 않은 활황을 보이고 있다. 다만 연 30만명에 달하는 인구감소가 지방에 집중되면서 약 820만채가 빈집으로 남아있는 지방과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대도시권의 부동산과 각종 경기지표는 확연한 양극화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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