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잇따라 흑인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뒤 촉발된 ‘검은 분노’의 표적이 백인 경찰에 맞춰지면서 미국 사회 흑백갈등이 다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댈러스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 조준사격으로 경찰 5명이 살해당한데 이어 테네시와 미주리, 조지아주에서도 백인 경찰에 대한 흑인들의 공격이 계속돼 당국을 바빡 긴장시키고 있다.
경찰 5명이 사망한 지난 7일(현지시간) 댈러스 사태 직전 테네시에서는 흑인 래킴 키언 스콧이 고속도로에서 백인 경찰과 백인 주민들을 겨냥해 총기를 난사, 1명이 사망하고 경찰 1명을 포함한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용의자 스콧은 댈러스 사건과 마찬가지로 지난 5일과 6일 루이지애나와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경찰의 흑인 총격 사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댈러스에서 경찰을 향해 조준사격을 했던 저격범 마이카 제이비어 존슨도 백인과 백인 경찰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낸것으로 밝혀졌다.
8일에는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외곽 볼윈에서 흑인 남성이 검문을 위해 순찰차 밖으로 나오던 경관에게 3발의 총격을 가해 중상을 입혔다. 같은 날 조지아 남부 밸도스타에서는 스티븐 폴 벡이 경찰을 유인하기위해 911에 자동차 도난신고를 한뒤 매복했다가 출동한 경찰에 총격을 가했다. 또 조지아 애틀랜타 인근 로즈웰에서는 20대 청년이 차를 타고 가다 순찰 중이던 백인 경관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흑백갈등속에 경찰을 겨냥한 충격적인 총격사건이 잇따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현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예배를 보던 흑인을 총기로 살해한)찰스턴 저격범이 백인을 대표하지 않듯이, 댈러스에서 공격을 자행한 미치광이가 흑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흑백갈등 확산 방지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미국인 모두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경찰에 대한 공격에 분노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이런 생각에는 분열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을 겨냥한 저격 움직임이 확산되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오바마 대통령은 폴란드에 이어 스페인을 방문하고 11일 귀국 예정이던 순방 일정을 하루 앞당겨 10일 귀국하기로 했다. 사건 현장인 텍사스 댈러스도 직접 방문해 수습책 마련을 서두를 방침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흑인 사회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8일에도 워싱턴DC,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애틀랜타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 경찰의 흑인 총격 살해를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흑인이 경찰을 조준사격한 사건 여파로 평화행진이 대부분이었지만 ‘손들었으니, 쏘지 마(Hands up, don’t shoot)’ ‘정의 없이 평화 없다(No justice, no peace)’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등의 반(反)경찰구호는 여전했다.
흑인 시위에 대한 경찰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다. 댈러스 습격으로 사망한 경찰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면서 경찰 내부에서 흑인들의 과도한 폭력에 대한 공분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시건의 제임스 크레이그 디트로이트 경찰청장은 “댈러스 습격은 경찰 전체에 대한 공격과 똑같다”며 엄중한 법 집행을 예고했다. 윌리엄 브래튼 뉴욕 경찰국장도 “45년 경찰 인생에서 이렇게 경찰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엄격하고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주리 경찰국은 경찰관이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이고, 의무적으로 방탄조끼를 착용하도록 했다. 애리조나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이례적으로 후추 스프레이와 최루가스를 사용해 강제 해산을 종용했다.
9일에는 댈러스와 같은 텍사스 주에 속한 휴스턴에서 총을 든 흑인 남성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됐다. 일각에서는 댈러스 저격범 살해에 경찰이 사상 처음으로 ‘폭탄 로봇’을 사용하면서 경찰의 군대화 또는 중무장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4년 퍼거슨시 소요사태로 경찰 과잉 진압이 논란이 되자 경찰의 군대화 또는 중무장 정책에 제동을 건 바 있다. 실제로 미국 경찰은 지금까지 폭탄 탐지나 제거에 로봇을 사용한 적은 있지만 폭탄이나 총기를 장착해 용의자 사살에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지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무력한 시민들에 대해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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