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대 업적중 하나로 꼽는 이민개혁이 좌초됐다. 11월 8일 대선을 앞두고 불법 이민자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민개혁 무산으로 히스패닉 표심이 어디로 움직일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연방대법원은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말 불법 이민자 추방유예를 골자로 한 2014년 이민개혁 행정명령 실행에 제동을 건 항소법원 결정에 반발해 상고한 사건을 찬성 4, 반대 4 결정으로 기각했다. 지난 2월 앤서니 스캘리아 대법관 사망으로 8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연방대법원은 ‘5대3’의 결정을 내기 위해 판결을 미루며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현행 보수와 진보 대법관 대결 구도대로 4대 4 판결을 내놨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린 이민개혁 행정명령은 미국 시민·영주권 소지자 부모지만 불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400여만명의 불법이민자에 3년간 미국에 체류, 취업허가증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방대법원 결정으로 이민개혁 행정명령은 유명무실화됐고 지난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시작한 ‘이민개혁’ 행정명령 프로그램중 하나인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DACA) 프로그램 확장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이와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가장 큰 법적 패배로 기록될 것”이라며 “중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미국 시민과 합법적인 가족적 유대를 갖고 있더라도 2010년 이래 미국에 머물러온 400여만명의 불법체류자 신분이 어정쩡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연방대법원이 이민개혁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상당한 타격을 받게됐다. 다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 입장에서는 불법이민자 추방을 반대하는 히스패닉 유권자와 진보진영을 결집할 수 있는 계기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WP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후보 등 민주당원들은 이번 판결때문에 올해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추방 위기에 놓인 히스패닉 결집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이민개혁에 대한 지지를 기반으로 히스패닉 선거참여 열기가 4년전 대선때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애리조나주는 과거에는 공화당 텃밭이었지만 히스패닉 인구 증가로 올해 선거에서는 경합주로 분류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애리조나 표심이 민주당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나섰을 때도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유권자로부터 70%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히스패닉 유권자 수는 2730만명으로 4년 전보다 약 400만명 늘어난 상태다.
보수 4대 진보 4로 팽팽하게 엇갈린 연방 대법관의 이념 지형에 대한 문제의식도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월 보수 성향 대법관 앤서니 스캘리아가 사망한후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은 “대법관 지명권이 차기 대통령에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후임 대법관 지명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공화당의 아집이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유권자에게 대법관 임명을 맡기자는 공화당의 무모한 주장이 진보 유권자들의 결집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불법 이민자 일시 입국금지’라는 트럼프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판결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는 성명에서 “연방대법원의 4대 4 결정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역대 가장 불법적인 행동중 하나에 제동을 걸었다”며 “이처럼 판단이 반으로 나뉜 것에서 볼수 있듯 11월 대선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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