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물가상승률이 3년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디플레이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은행(BOJ)은 추가 양적완화 카드를 뽑아들지 않았다.
BOJ는 28일 이틀간에 걸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끝낸뒤 ‘현상유지’를 결정했다. 현재 BOJ는 연 80조엔(836조원)의 통화량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와 상장지수펀드(ETF)를 연간 3조3000억엔(34조원)어치씩 매입하는 통화완화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또 시중은행이 BOJ에 맡긴 당좌예금 일부에 -0.1%의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 은행대출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BOJ가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하지 않은 것은 지난 1월말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결정한 지 석달 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좀더 시간을 갖고 마이너스 금리 시행 효과를 지켜본뒤 움직여도 늦지 않다는 신중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완화가 효과를 내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필요하다면 마이너스금리를 포함한 질적·양적완화 3가지 수단으로 주저없이 완화에 나설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구로다 총재는 그러나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직접 정부와 개인에 돈을 뿌리는) 헬리콥터 머니는 현행법 제도에서는 시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대했던 추가 양적완화조치가 나오지 않자 달러당 엔화값은 장중 108엔대 후반까지 폭등했다. 엔화가 급등세로 돌아서자 닛케이 지수는 이날 3.6% 급락, 또다시 심리적 지지선인 1만7000선 아래로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다. 도시마 이쓰오 도시마어소시에이츠 대표는 “달러당 엔화값은 105엔, 닛케이 지수는 1만6000선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골든위크기간 중 유럽·미국 시장에서 엔화 매수세가 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현상유지 정책을 발표한 이날 BOJ는 디플레이션 탈출 목표로 내걸었던 ‘물가 2%’ 달성 시기를 또다시 늦췄다. BOJ는 ‘경제·물가정세 전망보고서’를 통해 물가 2% 달성시기를 ‘2017년도 전반’에서 ‘2017년도 중(中)’으로 수정했다. 올해 1월 전망보고서에서 ‘2016년도 후반’에서 ‘2017년도 전반’으로 수정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또다시 달성시점을 뒤로 미룬 셈이다. 2016년도와 2017년도 예상 물가상승률도 각각 0.5%와 1.7%로 하향조정했다. 실질 경제성장률도 각각 1.2%, 0.1%로 낮췄다. 디플레 탈출 시기를 늦춘 것은 원유가격 하락과 소비감소가 계속되면서 기존 목표 달성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총무성이 발표한 3월 물가상승률(신선식품 제외)은 전년 동기 대비 -0.3%로 5개월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마이너스폭도 BOJ가 첫 양적완화를 단행했던 지난 2013년 4월 -0.4% 이후 3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첫 양적완화후 3년간 통화량(본원통화 기준)을 233조엔(2437조원)이나 가파르게 늘렸지만 물가상승률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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