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 경선에서 승리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는 지난 10일 흑인 표심을 잡기 위해 뉴욕에서 흑인 민권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와 조찬을 했다. 마침 이날은 미국 상원에서 대북제재 법안 표결이 있던 날이었다. 샌더스측 선거운동본부는 대선 준비를 위해 법안 표결 불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곧장 된서리를 맞았다. 민주당내 경쟁상대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측에서 “안보에 대해 무능과 무관심이 드러낸 것”이라며 집중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힐러리 캠프의 제시 퍼거슨 대변인은 “스스로 북한이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나라라고 해놓고 제재 투표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러한 질책에 샌더스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불참했다”며 두 손을 들었다. 실제 상원 전체회의를 통과한 대북제재법안은 상원의원 100명중 96명이 참석해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을 정도로 미국 정가의 주목을 받는 이슈였다.
반면 네바다.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을 앞두고 유세에 열을 올리던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과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은 이날 만사를 제치고 상원 대북제재 법안 표결에 참석해 한표를 행사했다.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작된 경선 초반전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로 대북제재가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정치권 주장이 대선 현장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해 가장 과격한 발언은 막말과 기행의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나왔다.
그동안 트럼프는 유세 현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미치광이(maniac)’에 비유하며 비난해왔다. 트럼프는 11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 방송에 출연해 “미치광이에게 미사일을 줘서는 안된다. 이를 막으려면 중국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며 김정은을 상대할 힘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세 일정을 미루고 지난 10일 미국 상원의 대북제재 법안 표결에 참석했던 마르코 루비오 후보는 “과거 북한이 일부 국가에 무기와 부품을 팔아온 증거들이 있다”며 “북한이 진전된 핵과 미사일을 이란에 팔려고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테러조직이나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에 판매하는 것을 서슴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사전에 강력 제재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후보도 “북한 때문에 미국의 안보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로 북한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밝히고 대북제재 법안 통과를 지지했다.
민주당에서도 북한 제재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이달초 열린 TV토론에서 샌더스는 “북한이 미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며 러시아나 중국보다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독재자에 의해 운영되는 고립된 국가로서 매우 걱정된다”며 “북한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중국이 북한에 많은 압력을 가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 초대 국무장관을 지내며 대북정책 근간을 마련했던 힐러리 후보는 “북한은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한다”며 “북한이 핵을 실질적으로 포기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상원은 지난 10일 세컨더리보이콧과 방코델타아시아식 제재를 근간으로 하는 초강경 대북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이 대북제재 법안 하원 심의를 12일로 앞당기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르면 내주중 대북제재 법안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고 즉각 발효될 가능성이 커졌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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